[스페셜1]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월드 프리미어 [3]
2003-12-12
글 : 박은영

“내 영화가 어느 날 누군가의 인생에 전환점이 되길”

빗질 한번 안 한 듯한 부스스한 고수머리와 덥수룩한 수염, 크고 작은 동그라미 몇개로 완성된 그의 몸매는 (미안한 말이지만) 정말 호빗을 닮았다. 호빗과 닮은 건 외모뿐이 아니다. 고향과 친구들, 작은 일상에 가치를 두는 삶의 방식도 닮았다. 가장 작고 평범한 족속으로서 중간계를 구해낸 프로도와 그의 호빗 친구들처럼 그 또한 영화사에 커다란 획을 하나 그었고, 자국의 영화산업과 관광산업을 일으켜세웠다. 아침 일찍부터 국립민속박물관 테파파에 모여든 전세계 300여 기자들은 그래서, 엘리야 우드나 비고 모텐슨이나 리브 타일러보다 피터 잭슨에게 궁금한 것이 훨씬 많은 듯했다. 언제나처럼 맨발로 레드카펫을 밟을 것인지, 턱시도는 입을 것인지, ‘포스트-반지’ 효과를 어떻게 실감하는지 등등. 월드 프리미어를 앞두고 긴장과 흥분이 뒤엉킨 피터 잭슨의 얼굴엔 긴 여정의 끝을 실감하지 못하는 듯 당혹스럽고 슬픈 기색도 언뜻 비치곤 했다.

-길고 힘든 여정이었다. 후회는 없나.

=후회하지 않는다. 예전엔 영화를 만들어놓고 이런저런 후회와 아쉬움에 시달리곤 했지만 이젠 더이상 그러지 않는다. 오늘 월드 프리미어를 앞두고 마음이 복잡한 건 사실이다. 전세계의 이목이 쏠려 있다는 사실이 너무 부담스럽고 무섭다. 하지만 오늘의 이 열기와 흥분을 즐기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벌써부터 내년도 오스카 감독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수상을 기대하는가.

=상을 받는다면 물론 기쁠 것이다. 하지만 상을 받기 위해 영화를 만들지는 않는다.

-<반지의 제왕> 3부작의 성공으로 뉴질랜드에 엄청난 경제효과를 가져왔다. 해외 영화인들의 뉴질랜드 로케이션 러시도 그렇고, 중간계를 체험하려는 관광특수 또한 그렇다. 지금 뉴질랜드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 혹시 총리에 출마할 생각은 없나.

=(좌중은 폭소했지만, 피터 잭슨은 웃지 않았다) 나는 지금 내가 하는 일에 만족한다.

-DVD 확장판에 매우 공을 들이는 것 같다. 그 작업이 당신에게 왜 그렇게 중요한가.

=원작은 매우 방대하기 때문에 거기서 다룬 이야기들을 영화에 담자면 러닝타임이 25시간, 아니 30시간이라 해도 부족할 것이다. 3시간 남짓한 극장용 영화로는 스토리의 디테일들을 전할 수 없다. 단순화하거나 압축하는 수밖에는. DVD 확장판은 극장 상영본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처음부터 기획했던 것이다. 포맷상 또는 다른 여건상 극장에서 선보일 수 없는 서브 스토리들을 풍부하게 전달해내고 싶었다. 특히 3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더욱 보여줄 게 많았고, 그래서 1시간이 훌쩍 넘는 분량의 신들을 추가할 예정이다.

-뉴질랜드의 자연 경관을 영화에 담는 과정이라는 것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인상적인 로케이션과 그 일화를 소개한다면.

=이미 톨킨의 원작에 중간계 풍경이 구체적이고도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기 때문에 덕을 많이 봤다. 뉴질랜드의 지형과 경관이 소설 속 묘사와 잘 조화됐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기억에 남는 로케이션은 모르도르의 검은 문 앞 전투신을 찍은 곳이다. 원작의 묘사에 따르면 이곳은 식물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 넓고 황량한 회색 황무지여야 했다. 비슷한 느낌이 나는 곳을 북섬 중부에서 찾아냈지만, 공교롭게도 그곳은 뉴질랜드 육군에서 폭파 실험을 하는 위험한 곳이었다. 엄청난 양의 폭발물이 매설돼 있기 때문에 축구장 2개 규모의 촬영장에 폭탄 제거 전문가들이 드나들곤 했다. 그들은 우리에게 “움직이지 마세요!”, “건드리지 마세요!” 하고 소리쳐서 겁을 주곤 했다. (웃음) 뉴질랜드군은 장소협찬은 물론이고 곤도르 군대와 오크 군대로 엑스트라 출연도 해줬다.

-3부작에 걸쳐 느낀 것은 극중 배역과 배우들의 이미지가 더할 나위 없이 잘 맞는다는 것이다. 캐스팅에 특별한 기준이 있었는지.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좀 괴상한 일이다. 난생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어우러져 함께 생활하다시피 하면서 하나의 공동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하니까. 이번에 배우들을 캐스팅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딱 두 가지였다. 연기력과 친화력. 보통 영화는 기껏해야 8주에서 12주 정도 촬영하지만, <반지의 제왕> 3부작의 경우는 16개월 정도가 걸렸다. 따라서 촬영장에서 다른 배우, 스탭들과 잘 어울리고 또 스스로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어야 했다.

-배우들과 매우 가까워졌을 것으로 안다. <킹콩>에 그들을 다시 불러모을 계획은 없는지.

=모두와 진정한 친구 사이가 됐다. 마틴 스코시즈처럼 몇몇 특정 배우들과 오래도록 작업하는 감독들을 이젠 이해할 수 있다. 영화란 여럿이 함께하는 작업인 만큼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없이는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환상적인 파트너들을 만난 것이고,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 함께하고 싶다.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의 가장 위협적인 괴물 중 하나인 셰롭의 묘사에 당신의 거미 공포증이 반영됐다고 알려져 있다. 사실인가.

=맞다. 난 거미가 무섭고 싫다. 평생 그 공포에서 헤어나지 못할 거다. 어렸을 때 우리집 지하실에는 터널웹이라는 뉴질랜드 토종 거미들이 살고 있었는데, 지하실에서 노는 걸 좋아했던 나는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그 거미들과 마주칠 생각에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곤 했다. 그 공포감을 되짚어가며, 셰롭의 생김새와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대개 영화에 등장하는 타란튤라는 움직임이 둔하다. 하지만 나는 셰롭이 빠르길 바랐다. 거미가 무서운 건 그래서니까. 뛰다시피 종종걸음을 치다가 갑자기 멈출 때나, 털이 부숭부숭 솟은 다리를 천천히 쳐드는 그런 순간들도 으스스하지만 말이다(정말 겁에 질린 듯한 피터 잭슨의 얼굴 때문에 회견장 곳곳에서 웃음이 터진다). 거미에 대한 나의 악몽이 바로 셰롭이다. 이렇게 지하실 거미들에게 복수한 셈이다.

-최근 당신은 <반지의 제왕>이나 <킹콩>처럼 원작소설이나 영화가 있는 작품들을 즐겨 다뤘다. 이와 관련해 어떤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킹콩>에 집중한 뒤에 한동안 좀 쉴 생각이다. 그런 다음엔 좀더 ‘뉴질랜드적’인 프로젝트를 만들어보려 한다. <반지의 제왕>이나 <킹콩>은 뉴질랜드에서 뉴질랜드 인력들과 만들긴 하지만 엄밀히 소재의 성격과 근본을 따지고 들어가보면, ‘국제적’인 영화들이다. <반지의 제왕>을 계기로 무엇보다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들을 만들 자유를 얻었다는 건 귀한 소득이다. 뉴질랜드에는 다른 곳에선 찾아볼 수 없는 특수한 영화적 소재가 많다. 실화를 근거로 만들어낸 <천상의 피조물들>이 그런 예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을 만나고, 리서치를 하고, 시나리오를 써내려가던, 그때 그 시절이 그리워지곤 한다. 아마 <킹콩> 이후로는 그런 초심으로 회귀하게 될 것 같다.

-<호빗>이 영화화된다면, 연출할 것인가. 그렇다면 언제쯤이 될 것인가.

=뉴라인시네마와 구체적으로 논의한 적은 없다. 관심은 갖고 있고 여건만 된다면 연출할 의향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차기작인 <킹콩>에 주력하는 것이 우선이다. 최소한 3년은 <킹콩>에만 전념해야 할 것이다.

-뉴질랜드에 <반지의 제왕>의 기념관을 건립하자는 제안이 나오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실제로 <반지의 제왕> 3부작을 기념하는 박물관을 세우기 위한 이런저런 시도가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반지의 제왕>에 관한 모든 법적 권리가 톨킨의 유가족에게 있다는 것이고, 전적으로 그들의 결정에 달린 일이라는 것이다. 나도, 뉴라인도, 기념관 건립에 대한 그 어떤 결정권이 없다. 아직까지는 별 긍정적인 결과가 없지만, 언젠가는 웰링턴에 <반지의 제왕> 박물관이 들어서길 희망하고 있다. 그래서 그때를 대비해 영화촬영에 쓰인 각종 소품과 장비들을 보존하려고 한다.

-당신은 <반지의 제왕>에 이어 <킹콩>도 뉴질랜드로 가져왔다. 할리우드의 시대가 간 것인가.

=난 뉴질랜드에서 나고 자랐다. 그리고 일곱살 때부터 영화를 만들어왔다. 내가 나고 자라고, 가족이 있는 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뿐이다. 할리우드에 대항한다는 생각 같은 건 없다.

-<반지의 제왕> 3부작 등 당신의 영화가 다음 세대에게 어떤 의미로 남길 바라는가.

=이건 매우 중요한 이야기다. 내가 지금 영화감독이 돼 있는 건 어릴 적 수많은 영화들에 감화되고 영향받았기 때문이다. 내 영화도 어느 날 누군가의 인생에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어느 유망한 청년감독이 은퇴한 내게 다가와 “내가 감독이 된 건 <반지의 제왕> 때문이었다”라고 말해준다면 정말 기쁘고 자랑스러울 것 같다. 내가 할 일은 그들이 좀더 자유롭게 활개를 펼 수 있도록 한계를 깨고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취재지원 주한뉴질랜드 대사관·뉴질랜드 무역산업 진흥청뉴질랜드 관광청 ·이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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