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격돌! 2004 할리우드 최강 프로젝트 [4]
2004-01-02
글 : 박혜명
거미 인간의 화려한 귀환

<스파이더맨2>

복잡하게 꼬이는 거미줄. 맨해튼 마천루에도, 피터의 마음속에도.

2002년 5월, 개봉 주말 1억1400만달러를 벌어들이며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거미 인간’이 화려한 귀환을 준비 중이다. 별볼일 없던 10대 소년 피터가 자신의 또 다른 자아를 발견하고, 주어진 힘에 대한 책임을 생각하기 시작한다는 내용의 성장드라마였던 <스파이더 맨>에 이어, <스파이더 맨2>에선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소중한 이들과의 관계가 어그러지는 등 갈등구도가 좀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성숙한 청년이 된 피터는 평범한 대학생의 삶과 지구 평화 지킴이로서의 이중생활을 지속하고 있다. 그러나 사랑하는 메리 제인은 잘생긴 우주 비행사를 남자친구로 맞고, 단짝친구 해리는 자신의 아버지 노먼을 죽인 스파이더 맨에 대한 복수를 결의한다. 게다가 피터는 새로운 악당 닥터 오토 옥타비우스를 견제해야만 한다.

그해 ‘베스트 키스신’을 연출하는 등 환상의 호흡을 선보인 토비 맥과이어와 커스틴 던스트가 ‘위기의 연인’으로 돌아왔고, <프리다>에서 디에고 리베라를 연기한 앨프리드 몰리나가 옥타비우스로 출연했다. 영화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있는 감독 샘 레이미는 “피터를 난처하게 하는 일이라면, 뭐든 하겠다”고 선언해, 주인공의 수난을 예고한 바 있다.


SF 고전이 살아온다

<아이, 로봇>

윌 스미스, 미래사회를 구원할 비밀경찰.

<아이, 로봇>은 아이작 아시모프가 창안한 로봇공학 3대 원칙에 근거를 두고 있다. 서기 2035년, 로봇 서니는 로봇공학 박사 마일즈를 살해한다. 그는 가장 중요한 제1항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힐 수 없다”를 어긴 것인데,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로봇에 의지하고 있던 사회 전체가 위험에 빠지게 된다. 형사 델 스프너는 로봇 심리학자 수잔 캘빈의 조언을 받으면서 진상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아이, 로봇>은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탄생했다. 원작은 아이작 아시모프의 <아이, 로봇>이지만, 이 책에 수록된 아홉편의 단편과는 다른 이야기다. “그 단편들 모두에 해당되는 이야기이면서, 전사(前史)이기도 하다”는 것이 제작진의 설명. <파이널 판타지>의 제프 빈타가 원안을 내놓았고, <뷰티풀 마인드>의 아키바 골드먼은 시나리오를 썼으며, 그들 외에도 세명의 작가가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다. 정교한 스토리만큼이나 공을 들인 부분은 로봇 서니다. 앤디 서키스가 골룸을 연기한 것처럼, 앨런 터다이크는 디지털 신호로 인식할 수 있는 특수의상을 입고 서니의 연기를 해냈다. <크로우> <다크시티>의 감독 알렉스 프로야스는 음산하고 불길한 영상을 선보였던 인물. 그가 천진한 이미지의 윌 스미스를 만나 어떻게 이 거대한 영화를 끌고 나갔을지 궁금하다.


배신과 복수와 폭력의 연대기

<반 헬싱>

<미이라>를 잠깨워 흥행한 감독, 뱀파이어 킬러 반 헬싱을 어둡고 거친 인물로 소환해내다.

브람 스토커는 드라큘라 백작과 함께 반 헬싱 교수를 창조했다. 냉철하고 지적이면서 언변이 좋은 반 헬싱 교수는 <반 헬싱 연대기>라는 TV물에서 유일하게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미이라> 시리즈로 큰 성공을 거둔 뒤 유니버설스튜디오에서 호러영화를 구상 중이던 스티븐 소머즈 감독은, 프랑켄슈타인과 드라큘라는 식상하고 울프맨은 매력이 없으니 셋을 한데 모아 반 헬싱과 맞서게 하기로 했다. 드라큘라영화들에서 피터 쿠싱이 전담했던 뻣뻣하고 밋밋한 캐릭터 반 헬싱이 <엑스맨>의 울버린, 휴 잭맨에게 넘어가면서 지적이기보다 직관적이고,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뱀파이어 킬러로 부활했다.

서양호러를 주름잡는 이른바 ‘3대천왕’을, 석궁과 철퇴와 말뚝과 은총알이 장전된 총을 소지한 뱀파이어 헌터가 뒤쫓는다. <미이라>처럼 풀리면 또 하나의 어드벤처 액션블록버스터, 그뿐이겠지만 감독은 이것이 단순히 ‘짐승격투기’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보다 어둡고, 그보다 복잡한 이야기이다. 배신과 복수와 폭력이 가득 찬.” 반 헬싱의 캐릭터를 자세히 연구한 감독은 그를 뼛속까지 돼먹지 못한 나쁜 놈이라고 표현했다. <미이라>의 프로덕션디자이너 앨런 카메론이 만든 청회색빛의 고딕풍 마을과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펄의 저주> <마스터 앤드 커맨더>의 그렉 캐넘이 특수분장을 맡은 <반 헬싱>은, 무엇보다 비주얼에 대한 기대가 자연스레 앞서는 영화다.


슈렉, 처갓집 전격 방문

<슈렉2>

기발하고 도발적인 충격 동화 ‘슈렉 월드’를 확장한다. 더 넓게, 더 깊게!

슈렉과 피오나는 결혼하고 슈렉의 숲에는 아름다운 화해가 찾아왔다. 완벽한 결말로 마무리지어진 이 세계에 또 다른 이야기를 연장시킨다는 건 정말로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전편의 시나리오 작가였던 테드 엘리엇과 테드 로시오가 “크리에이티브의 의견차”로 도중 하차하고, <슈렉2>는 유일하게 남은 조 스틸먼의 펜 끝에서 완성됐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슈렉 부부가 피오나의 가족을 만나러 간다는 설정의 이 후속편을 해외 언론은 <미트 페어런츠>의 ‘슈렉’ 버전이라고 부르고 있다.

해롤드 왕과 릴리안 왕비는 그들의 딸이 녹색괴물로 변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슈렉보다 한발 늦게 성에 도착해 헛걸음친 왕자 ‘멋쟁이’가 피오나와 슈렉 사이에 끼어든다. 이 훼방작전의 주모자는 요정들의 대모 ‘다마 포튜나’와 기사 ‘장화 신은 고양이’다.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더빙을 맡은 이 고양이 캐릭터는 여러 면에서 후속편의 주요한 캐릭터가 될 듯 보인다. 많아진 캐릭터로 이야기가 분주해지는 가운데 결혼반지로 <반지의 제왕>을 패러디하는 등 전편의 유머들도 지속된다. 앤드루 애덤슨과 함께 공동연출을 맡은 켈리 애즈버리와 콘래드 버논은 캐릭터의 움직임도 기술적으로 훨씬 자연스러워졌다고 말한다. “1편을 재창조함과 동시에 한 단계 끌어올리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미국 현지에서 이보다 큰 관심을 모았던 건, 인기 코미디언 존 클리스가 해롤드 왕의 목소리를 맡았다는 소식이었다.


만화원작 영화 중 최고를 꿈꾸다

<헬보이>

고딕적 스타일을 입고 만화에서 뛰쳐나오다

<헬보이>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꿈에 그리던 프로젝트다. 1994년 다크 호스 코믹스에서 출판된 마이크 미뇰라의 만화 <헬보이>는, 악마의 자식이란 운명을 가진 ‘헬보이’가 도리어 악에 맞서는 존재가 된다는 아이러니를 담고 있다. 이 만화의 열혈팬이던 델 토로는 각본을 완성한 뒤 캐스팅까지 염두에 두고도 예산문제로 스튜디오를 설득하지 못해 프로젝트를 묵혀놔야 했다. <블레이드2>의 성공으로 마침내 제작 기회가 주어진 이 영화를 두고 감독은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들 가운데 단연 최고가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한다. 해외에서 공개된 특수효과와 액션 일색의 트레일러도 “빙산의 일각”쯤으로 일축됐다.

델 토로 감독의 다른 전작들을 참고하면 <헬보이>의 밑그림을 점쳐보기가 좀더 쉬울 것이다. 뱀파이어를 소재로 한 <크로노스>나 귀신이 등장하는 <악마의 등뼈>, 유전자 조작 괴물을 다룬 <미믹> 등에서 델 토로는 음산하면서도 우아한 고딕풍의 영상을 일관되게 보여왔다. 헬보이 역을 맡은 론 펄먼은, 물론 확정되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감독과 원작자 모두 대안없이 한번에 지목한 캐스트다. 돌로 된 손과 213cm의 장신을 가졌고, FBI 연구원이면서 악에 맞서는 악마 헬보이. 이에 대한 감독의 열정과 자신감 때문인지, 아직 완성도 되지 않은 <헬보이>는 벌써부터 후속편이 이야기되고 있는 중이다.


국적의 소멸과 사랑의 시작

<터미널>

드라마, 로맨스, 액션을 얹은 스필버그 식 달콤한 실화

한 이란인이 여권과 망명증명서를 도둑맞았다.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어떤 것도 없는 까닭에 그는 파리에 내리고서도 드골공항 밖을 벗어날 수 없었다 한다. 메르한 카리미 나세리라고 하는 이 남자가 1988년 실제로 겪었던 일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신작 <터미널>의 소재가 됐다. 애초에 앤드루 니콜이 연출하기로 돼 있었던 이 프로젝트는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작가 제프 네이던슨이 각색했고 톰 행크스와 캐서린 제타 존스가 주연을 맡았다.

스필버그의 이야기는 좀더 극적이고 말랑하다. 주인공이 뉴욕 공항에 도착한 시점과 전쟁 중이던 나라가 소멸해버리는 시점이 교묘히 맞아떨어진다. 졸지에 나라 잃은 국민 신세가 되어 공항에 갇히는 남자. 여기에 아름다운 여승무원과의 사랑, 극적인 공항 탈출기가 가미된다. <터미널>이 관심을 부추기는 또 한 가지는 영화의 주요 배경이 될 공항을 세트로 지어냈다는 사실이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프로덕션디자이너 알렉스 맥도웰은 2만2천 제곱피트 규모의 3층짜리 공항을 지어 레스토랑과 매점 등 온갖 시설을 고스란히 옮겨놓았다. 그러나 드라마틱한 실화와 마법 같은 기술력만으로 어필할 부분은 크지 않다. <캐치 미…>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다시 빙하기가 찾아오면?

<투모로우>

블록버스터 전문가가 예언하는 세기초의 세계 종말론

희망찬 세기초는 세기말의 절망과 어울리지 않는다. 한동안 할리우드가 유행처럼 만들어냈던 재난영화들도 수그러들었지만, <스타게이트> <인디펜던스 데이> <고질라> 등 방대한 블록버스터를 만들어왔던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이 지금 지구의 종말을 조심스레 상상하고 있다. <더 데이 애프터 투모로우>는 온실효과로 인한 지구 온난화 현상이 지속되어 빙하시대가 도래한다는 설정에 기댄 영화다. 해수면이 높아지고 초강풍이 지구를 덮치면서 세계는 황폐화되고 점점 얼어붙어간다. 고(古)기후학자 에이드리언 홀(데니스 퀘이드)은 공부 중인 아들 샘(제이크 질렌홀)을 한파로 뒤덮인 뉴욕에서 끌어내오고자 한다. 모두가 남쪽으로 피난을 갈 때 홀로 북쪽을 향해 올라가는 아버지의 노력이 <더 데이…>의 또 다른 이야기축이다.

일부 공개된 비주얼 가운데 눈과 얼음 속에 갇힌 뉴욕시의 차가운 실루엣이 현지에서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는 <더 데이…>는, <반지의 제왕>의 편당 제작비를 뛰어넘는 1억2500만달러를 들여 완성된다. 이 거대한 프로젝트가 <스파이더 맨2>나 <헬보이>에 뒤지지 않게 하기 위해 에머리히 감독은 매우 고심 중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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