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격돌! 2004 할리우드 최강 프로젝트 [1]
2004-01-02
글 : 이지연 (런던 통신원)

<알렉산더> <해리 포터3> <트로이> + 7편 엿보기

더이상 <반지의 제왕>과 <매트릭스>는 없다. 2004년부터는 무슨 낙으로 살까, 막막해질 법도 하다. 이제 웬만한 스펙터클은 눈에 차지도 않을 것이고, 웬만한 상상력, 웬만한 테크놀로지엔 가슴이 뛰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여전히 올 한해 스크린에 펼쳐질 신천지를 기대하게 된다. 그 절반의 가능성에 표를 던진 <씨네21>은 현재 제작 중이며 새해에 선보이게 될 할리우드 대작들을 일별했다.

올해는 유난히도 역사책과 만화책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들이 많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시대극 제작 붐으로, 연내에 완성될 할리우드의 시대극은 여기 소개된 <알렉산더>와 <트로이> 이외에도, 안톤 후쿠아 감독의 <킹 아서>, 키아누 리브스의 <콘스탄틴>, 빈 디젤의 <한니발> 등 여러 편이다. 이중 <알렉산더>의 런던 세트를 방문해 올리버 스톤 감독과 주연배우 콜린 파렐을 만나고, 시대극 제작 열풍을 체감할 수 있었던 것은 크나큰 행운이다. 그들과의 유쾌한 대화를 이 자리에서 함께 나누려 한다.

또한 한해를 걸러, 팬들을 애타게 했던 세 번째 해리 포터 이야기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에 대한 이런저런 궁금증을 풀어보고자 한다. 이 밖에도 코믹북을 원작으로 한 액션어드벤처물 <스파이더 맨2>와 <헬보이>를 소개하고, 할리우드 파워 피플 스티븐 스필버그와 톰 행크스의 합작품 <터미널>의 면면을 조명하며, <슈렉2>를 통해 슈렉-피오나 부부의 신혼생활도 공개한다.


강력한 디테일로 뒷받침된 알렉산더의 욕망과 신화

<알렉산더>

현대물에서 빠져나온 올리버 스톤, 고대의 영웅 알렉산더에 사로잡히다.

제국의 성장과 몰락. 알렉산더 대왕. 누구나 한번쯤은 역사 수업 시간에 마주쳤을 인물이지만, 어쩌면 잘 모르고 있는 영웅 알렉산더. 그가 살았던 시대에 대한 영화가 2004년에 우리를 찾아온다. 정확히 말하자면, 현재 두개의 알렉산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하나는 올리버 스톤 감독과 콜린 파렐의 프로젝트. 다른 하나는 바즈 루어만 감독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프로젝트. 이중 올리버 스톤의 <알렉산더>가 절반 정도 촬영이 이루어진 상태로, 먼저 개봉될 전망. <알렉산더>는 지난 10월 모로코에서 상당 부분의 전투장면을 촬영했고, 현재는 영국 파인우드 스튜디오 내의 아름답고 웅장한 세트에서 촬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세트 촬영이 끝나면 타이로 옮겨가 다른 전투장면들을 찍은 뒤 곧 CG 작업을 포함한 후반작업에 들어갈 예정. 영화의 내레이터로, 알렉산더의 일생을 회상하며 우리를 영화 속으로 이끌어가는 프톨레미 역은 앤서니 홉킨스,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 역에는 발 킬머, 어머니인 올림피아스는 안젤리나 졸리, 친구이자 연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헤스파이스톤으로는 자레드 레토가 출연한다.

‘디테일! 디테일! 디테일!’

<알렉산더>의 전투신과 세트는 스케일이나 리얼리티 면에서 <글래디에이터>를 능가하는 역사전투드라마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고대 바빌론, 인디아, 알렉산드리아 등을 재현한 세트들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은 말할 것도 없다. 콜린 파렐에 따르면, 올리버 스톤이 현장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이 ‘디테일! 디테일! 디테일!’이다. 스톤은 정확한 고증을 위해 옥스퍼드대학의 고대사 교수인 로빈 레인 폭스를 영입하기도 했다. 폭스 교수는 1974년 출간 당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던 알렉산더 대왕의 전기 작가로, 쟁쟁한 할리우드 감독들의 러브콜을 받아왔다. 그러나 그는 알렉산더를 단순히 현재의 시각에서 로맨틱한 영웅이나 할리우드 스타일의 록스타 캐릭터로 접근하려는 방식에 강한 거부감이 있었다(<알렉산더>의 각본은 스톤 자신이 직접 쓴 것으로, 폭스 교수의 책을 바탕으로 쓰여진 것은 아니다). 폭스 교수에 따르면, <글래디에이터>류의 영화는, “역사적 사실성을 완전히 무시한, 캘리포니아 분위기의 세트영화”인 반면 <알렉산더>는 세심한 역사적 고증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모든 의상, 전투 장비와 전술 등도 더할 나위 없이 정확하다”고 한다. 촬영에 따라 그리스 역사 전문가, 바빌론 역사 전문가 등이 초빙되었다고 하니, 상상력과 테크놀로지에 의지해 또 하나의 허구를 창조하지 않겠다는 감독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고대를 배경으로 한 <대부> 같은 영화

언뜻 보면, 올리버 스톤의 필모그래피에서 <알렉산더>는 무척 다른 성격의 영화로 여겨진다. <플래툰> <도어즈> <내추럴 본 킬러> <닉슨> 등 그의 영화는 대부분 현대의 사건들과 인물들을 다루어왔다. 미국사회가 꺼리는 이야기들, 혹은 영화라는 드라마트루기 안에서 다루기에는 벅찬 이야기들을, 그는 누구보다 지적이고 흥미롭게 들려주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기원전의 세계로, 그리고 당시 32살의 나이로 세계를 정복하고 거대한 제국을 세웠던 인물의 이야기로 빠져들었다. 올리버 스톤은 <알렉산더>가 부시 정부의 중동 정치와는 관계가 없다고 강조하면서, 이 영화를 역사대하드라마, 역사전투드라마, 스펙터클영화 등의 용어로 규정하고 싶어했다. 비유를 하자면, 고대를 배경으로 한 <대부> 같은 영화라고. 강한 부모 틈에서 부대끼며 자라나, 19살에 왕위에 오르고, 전투 영웅이었으며, 관대한 독재자였고, 다른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강한 탐험가이자 정복자였고, 당시의 관습대로 남자와 여자를 모두 사랑한 복합적인 섹슈얼리티를 가졌던 인물, 알렉산더의 심리를 따라가는 이야기.

<알렉산더>의 마케도니아 사람들은 아이리시 악센트의 영어로 말할 참이다. 그리스 변방의 사람들이었던 만큼 굳이 영어를 써야 한다면, 거친 느낌이 나는 변방의 영어를 쓰게 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 변방의 영어가 아이리시 영어라는 것은, 주연을 맡은 콜린 파렐이 아일랜드 출신의 배우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콜린 파렐의 주연 결정은, 2년 전, 콜린 파렐이 지금처럼 할리우드의 스타 반열에 오르기 전에 이루어졌다. 당시 인지도가 낮은 배우였던 콜린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하는 것은 모험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정작 올리버 스톤이 우려했던 것은 당시 콜린이 연약한 꽃미남 분위기였던데다 검은 머리와 검은 눈 때문에 알렉산더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블론드로 염색하고 나타난 콜린은 카메라 테스트에서 스톤을 놀라게 했고, 준비 기간이었던 지난 2년 사이 강인한 남성적 캐릭터를 소화하는 배우로 성장해왔다. “콜린은 반골 정신과 전사 및 지도자로서의 확신을 동시에 갖고 있으며, 바로 지금, 알렉산더 역을 하기에 딱 맞는 나이에, 딱 맞는 체격 조건, 그리고 딱 맞는 시기에 있다. 그의 모든 것이 지금 정말 딱 맞는다.”

올리버 스톤은 이 영화의 촬영과정을 3막의 서사극에 비유했다. 현재 진행 중인 세트 촬영은 그중 2막에 해당한다. 올해 초 타이에서의 촬영까지 3막을 마치고, 후반작업을 거쳐, 다시 겨울이 다가올 때쯤, 우리는 <알렉산더>의 거대한 세계로의 초대장을 받게 될 것이다.

올리버 스톤 인터뷰

“콜린은 대담하고 헌신적인 최고의 알렉산더”

올리버 스톤은 아침 7시경부터 시작해 밤 9시가 넘어서야 끝난 강행군의 촬영을 마치고 조금 지쳐 있었다. 촬영 내내 배우들에게 연기를 지도하면서 시종 환하게 웃던 얼굴은, 피곤함으로 붉게 상기되어 있었지만, 차분한 목소리로 영화의 현재까지의 여정을 설명해주었다.

-왜 지금 알렉산더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가? 폭스 교수의 알렉산더 전기가 나온 것은 한참 전의 일이다.

=글쎄, 내 인생의 지금 이 시점에서 그것과 마주쳤기 때문이라고 할까. 왜 2003년이나 2004년이 1969년이나 1979년보다 더 중요한지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알렉산더를 조지 부시와 견주어보려고들 하지만, 이 영화에 그런 요소는 전혀 없다. 이 세계는 지금과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현재의 기준으로 판단하려고 든다면, 당시에 세계를 탐험하고 정복하는 것이 숭고한 숙명으로 여겨졌다는 사실을 놓치게 된다. 나는 그의 방대한 세계 탐험에 방점을 두고 싶다. 알렉산더는 지금까지 탐험가로서는 인정받지 못해왔다. 조지 부시가 전쟁에 오명을 끼치고 있는 현재의 관점에서 보자면,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전쟁이 존재하지 않았었다. 당시에는 전쟁보다는 전투가 존재했고, 거기에는 오늘날과 달리 영웅적인 무엇이 있었다.

-각본을 쓰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어떻게 톤을 맞추느냐였다. 기원전 300년경의 세계가 어땠는지를 알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말하고, 어떻게 느꼈는지, 말할 때 어떤 제스처를 취했는지, 목소리는 어떤 식이었는지. 최대한 이 모든 것을 진짜처럼 하려고 노력했고, 제대로 하기 위해서 아무것도 없는 상태부터 시작해야 했다. 각 분야의 역사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지만, 거기에는 생각해야 할 것들이 수천 가지도 더 있었다. 가령 이 사람들은 포크를 사용했는가? 손수건은? 그냥 땅바닥에 대고 재채기를 했는가? 의약품, 노예제도, 음악… 정말 끝이 없었다. 우리는 역사학자들이 궁금해하는 모든 것들을 다루어야만 했다.

-콜린 파렐이 알렉산더 역에 적합하다고 생각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내가 콜린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다소 긴장해 있었다. 긴장해서 물건들을 바닥에 쏟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정말 알렉산더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스크린 테스트에서 그는 날 놀라게 했다. 검은 머리의 알렉산더를 만들 수는 없었기 때문에, 블론드 머리를 해달라고 했는데, 블론드의 콜린은 알렉산더로서 손색이 없어 보였다. 지금까지 일을 해오면서 느낀 것은, 그가 알렉산더 역에 꼭 맞는 배우라는 것이다. 아무나 알렉산더 역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알렉산더 역을 맡는 거부터가 어느 정도의 대담함을 요구한다. 그 역을 연기한다는 것은, 그 역을 연기하기 위해 매일 아침 일어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콜린은 여러 가지 면에서 놀라운 배우다. 그는 준비 기간 동안 몸값이 치솟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젝트에 헌신적이었고, 매일 준비가 돼 있는 프로페셔널한 배우였다. 모로코에서 촬영할 때는, 자기 분량의 촬영이 끝나도, 촬영장에 머물며 다른 배우들을 도와주고, 어떤 때는 나를 격려하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그는 알렉산더 같은 지도자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래, 나는 알렉산더가 아니라 알렉산더를 연기하는 배우다. 그렇지만 여전히 당신들의 지도자다’ 하는 태도 말이다.

-이 영화를 당신의 다른 영화들과 비교한다면.

=이번 영화는 현대물이 아니다. 잘 알겠지만, 내 영화들은 언제나 가장 현대적인 이슈들을 다루곤 했다. 그렇지만, 이런 역사극을 하기 위한 첫 번째 규칙은 여기는 완전히 다른 규칙들이 적용되는 분야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배우는 것이다. 너무 현대적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모던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알렉산더라는 인물의 심리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심리는 좀더 깊고, 비참한 결말로 이끄는 욕망 같은 것에 이끌린다. 그는 정말 어려운 게임을 계속해서 하고, 강력한 경험을 추구한다. 그는 일종의 신화를 믿었으며, 그것을 자신의 인생으로 살아냈다.

콜린 파렐 인터뷰

“알렉산더는 질문 많고 외로운 인간이다”

그는 페르시아 전투에서 이기고 그의 동료들과 함께 바빌론 성에 입성하는 장면을 촬영 중이었다. 황금빛 갑옷에 하얀색 짧은 치마(?). 구릿빛 피부와 피가 흐르는 상처 등의 피부 분장을 한 채로 콜린 파렐은, 친근한 아이리시 악센트를 섞어가며 시원시원하게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알렉산더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보는가.

=외롭고, 상실감을 느끼는, 젊은 친구다. 굉장히 많은 대답들을 갈구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 다가가는 만큼 도망간다. 언제나 자신의 운명을 질문한다. 다른 문화들에 굉장히 호기심이 많다. 나는 그가 굉장히 슬프고 외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원래의 자신의 집에서 고립되어 있고, 그렇지만, 굉장히 용감하고 지적인, 위대한 인간이다. 문제는 그가 무엇을 대가로 그 많은 영광을 얻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자신이 찾아 헤매던 사랑을 결코 발견하지 못했고, 자신의 전쟁 동료와의 사랑이나 결혼도 그를 돕지 못했다.

-알렉산더 역을 연기하는 데 가장 어려운 점은.

=많은 장면들이 꽤 강하고 감정적으로 격앙되어 있다. 오늘 찍은 신은, 그중에서 가장 가벼운 신이다. 그래서 그렇게 우리가 많이 웃은 것이다. 전체 영화에서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때다.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최고의 성취를 이룬 순간이다.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합법적인 왕으로 바빌론에 입성한다. 더이상 영광스러울 수 없는 순간이다. 그렇지만, 바로 이것이, 안에서든 밖에서든, 무엇인가가 틀어지기 시작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알렉산더의 양성애적인 측면은 이 영화에서 어떻게 다루어지는가.

=많이들 기대하고 있는가? (웃음) 그 시대는 양성애라는 말이 아예 없었던 때다. 이성애라는 말도 없었던 때고. 그건 그저 사회의 일부분이었다. 모든 남자들이 하는. 그렇지만, 오늘날의 기준에서 볼 때 그가 양성애자인 것은 사실이다. 글쎄, 그가 어느 쪽으로 더 끌렸는가는 잘 모르겠다. 그와 술 한잔 같이 기울이면서 이야기해볼 수 없으니 말이다. (웃음) 그렇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건 그저 캐릭터의 일부분이고 극히 정상적이다.

-이런 체격을 만들려고 특별 훈련을 받았는지.

=모로코에서 촬영하기 전에 일종의 군사 훈련 캠프에 갔었다. 기초 체력 훈련부터 말타기, 검술 등을 배웠다. 그렇지만 그 캠프가 좋았던 것은, 그 경험이 우리 배우들 모두를 하나로 묶어줬다는 것이다. 그 모든 사람들이 별이 빛나는 밤하늘 아래 텐트에서 3주를 보냈으니 말이다. 같이 밥을 먹고, 매일 아침 조깅을 하고, 매일 밤,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전투 전략과 전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말이다.

-올리버 스톤 감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자기 비전이 강한 사람이다. 그렇게 열정적인 사람은 내 생애 처음 보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그는 정말 알렉산더 같은 사람이다. 그리고 그 역시 질문이 많은 사람이다. 역사 속의 그 많은 질문들, 사람들에게서 숨겨진 이야기들, 사회와 휴머니티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지적인 사람이다. 이 영화의 안팎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며, 언제나 디테일을 엄청나게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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