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영웅담 전문 감독 볼프강 페터슨, 트로이 전쟁터에 브래드 피트를 불러내다.
사랑과 명예와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라지만, 세상의 모든 전쟁은 비극으로 귀결되게 마련이고, 그 비극성을 가장 극적으로 묘사해낸 작품이 바로 <일리아스>다. <트로이>는 명백히 <일리아스>에 영감을 받은 작품이긴 하나, 각색과정에서 원작에 그리 충실하지는 않았다. <트로이>는 오히려 “다시 쓰는 트로이 전쟁사”라는 편이 맞다. 트로이 함락 수세기 뒤인 기원전 8세기에 쓰여진 <일리아스>는 신화에 깊이 기댄 판타지어드벤처이지만, 감독 볼프강 페터슨과 작가 데이비드 베니오프()는 신의 이야기가 아닌 인간의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 기본 설정과 인물을 불러오되, 신화적 요소를 걷어내고 ‘인간’의 ‘역사’에 집중하는 것이 각색의 포인트였다. 헬레네에 대한 파리스의 사랑, 아킬레스와 숙적 헥토르의 대결, 그리고 오디세우스의 덫과 트로이의 멸망이 <트로이>의 핵심 사건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 트로이와 스파르타가 오랜 반목을 청산하는 자리,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올란도 블룸)는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와 사랑에 빠지고 만다. 파리스가 헬레네를 그의 남편인 메넬라오스 왕에게서 빼앗아 달아나자, 메넬라오스와 그의 형 아가멤논(브라이언 콕스)은 실추된 명예와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대트로이 전쟁을 선포한다. 용맹스런 전사이자 왕자인 헥토르(에릭 바나)가 버티고 있는 트로이에 대적할 만한 인물은 초인적인 전투력을 지닌 아킬레스(브래드 피트)뿐. 전적과 명예를 귀중히 여기는 아킬레스는 아가멤논의 소환에 응해 수천명의 군대를 이끌고 트로이로 진격하고, 이로써 참혹하고 지난한 전쟁이 이어진다. 이 와중에 브리세이스라는 여인을 사랑하게 된 아킬레스는 그녀를 지켜주고자 하지만, 탐욕스러운 아가멤논은 브리세이스를 빼앗아간다. 이에 격분한 아킬레스는 더이상 아가멤논을 위해 싸우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운명은 전장의 피바람 속으로 그를 다시 불러들인다.
예고편에서 푸른 바다를 가로지르며 트로이를 향해 진격하는 전함 수백척을 상공에서 비추는 위압적인 스펙터클은 <트로이>의 전쟁신 규모를 가늠케 한다. 10만 대군이 10여년간 맞붙은 전쟁이니만큼, 멕시코에서 촬영한 전쟁신은 꼬박 2개월 보름을 투자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스파르타와 트로이의 도시 전경을 드러내야 하는 만큼 세트도 많이 지었는데, 여기 쓰인 회반죽은 <글래디에이터>와 <해리 포터>의 세트를 짓고도 남는 140t에 달한다고. 특히 아폴로 신전과 트로이 성, 그리고 전설의 목마 등은 주요한 볼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가장 중요한 질문은 <트로이>가 현재 제작 진행 중인 일련의 시대극의 첫 테이프를 멋들어지게 끊어낼 수 있을지다. 일단, 재난에 대처하는 영웅 이야기(<에어포스 원> <퍼펙트 스톰>)로 일관하는 볼프강 페터슨 감독의 소신, 그리고 오랜만에 블록버스터로 돌아온 브래드 피트의 안목에 믿음을 걸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