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격돌! 2004 할리우드 최강 프로젝트 [3]
2004-01-02
글 : 박은영
배우들의 앙상블, 최고의 스펙터클

<트로이>

영웅담 전문 감독 볼프강 페터슨, 트로이 전쟁터에 브래드 피트를 불러내다.

“전쟁은 가장 고결하고 또 가장 추악한 인간의 본성이 드러나는 현장이다. 결과적으로 전쟁에 연루되는 이들은 모두 불행할 수밖에 없다. 이 영화가 수만명의 병사가 동원되는 전쟁 스펙터클을 자랑하긴 하지만, 이야기의 핵심은 승리와 패배에 관한 호머의 기록, 즉 만고불변의 인간 본성에 관한 것이다.” 무려 3천년 전에 쓰여진 호머의 작품 <일리아스>를 ‘지금’, ‘굳이’ 영화로 만들고 있는 이유를 볼프강 페터슨 감독은 이렇게 밝힌다. 이제는 관용구가 돼버린 ‘트로이의 목마’나 ‘아킬레스 건’을 통해서만 환기되는 트로이 전쟁의 환부를 정면으로 응시하자는 것이다.

사랑과 명예와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라지만, 세상의 모든 전쟁은 비극으로 귀결되게 마련이고, 그 비극성을 가장 극적으로 묘사해낸 작품이 바로 <일리아스>다. <트로이>는 명백히 <일리아스>에 영감을 받은 작품이긴 하나, 각색과정에서 원작에 그리 충실하지는 않았다. <트로이>는 오히려 “다시 쓰는 트로이 전쟁사”라는 편이 맞다. 트로이 함락 수세기 뒤인 기원전 8세기에 쓰여진 <일리아스>는 신화에 깊이 기댄 판타지어드벤처이지만, 감독 볼프강 페터슨과 작가 데이비드 베니오프()는 신의 이야기가 아닌 인간의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 기본 설정과 인물을 불러오되, 신화적 요소를 걷어내고 ‘인간’의 ‘역사’에 집중하는 것이 각색의 포인트였다. 헬레네에 대한 파리스의 사랑, 아킬레스와 숙적 헥토르의 대결, 그리고 오디세우스의 덫과 트로이의 멸망이 <트로이>의 핵심 사건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 트로이와 스파르타가 오랜 반목을 청산하는 자리,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올란도 블룸)는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와 사랑에 빠지고 만다. 파리스가 헬레네를 그의 남편인 메넬라오스 왕에게서 빼앗아 달아나자, 메넬라오스와 그의 형 아가멤논(브라이언 콕스)은 실추된 명예와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대트로이 전쟁을 선포한다. 용맹스런 전사이자 왕자인 헥토르(에릭 바나)가 버티고 있는 트로이에 대적할 만한 인물은 초인적인 전투력을 지닌 아킬레스(브래드 피트)뿐. 전적과 명예를 귀중히 여기는 아킬레스는 아가멤논의 소환에 응해 수천명의 군대를 이끌고 트로이로 진격하고, 이로써 참혹하고 지난한 전쟁이 이어진다. 이 와중에 브리세이스라는 여인을 사랑하게 된 아킬레스는 그녀를 지켜주고자 하지만, 탐욕스러운 아가멤논은 브리세이스를 빼앗아간다. 이에 격분한 아킬레스는 더이상 아가멤논을 위해 싸우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운명은 전장의 피바람 속으로 그를 다시 불러들인다.

<트로이>를 기대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 가장 강력한 스펙터클은 배우들이 빚어낼 앙상블이다. 아킬레스, 오디세우스, 헥토르 등 고대 그리스의 신화적 인물들이 떼로 등장하는 영웅담답게 <트로이>의 제작진은 이 “아이콘적인 캐릭터”들을 담아낼 배우들을 불러모으는 데 공을 들였다. 반신반인이라는 출생의 비밀이 드리운 신비로운 그늘, 강철 같은 파이터의 위용 뒤로 감춘 유약한 본성 등 아킬레스의 복잡다단한 내면을 묘사하기에 브래드 피트는 여러모로 제격이다. 불장난 같은 사랑에 빠지는 미소년 파리스 역의 올란도 블룸, 철없는 동생의 선택을 지키려 독불장군이 되고 마는 헥토르 역의 에릭 바나도 어울리는 캐스팅이다. 노장 피터 오툴과 줄리 크리스티도 반가운 얼굴들.

예고편에서 푸른 바다를 가로지르며 트로이를 향해 진격하는 전함 수백척을 상공에서 비추는 위압적인 스펙터클은 <트로이>의 전쟁신 규모를 가늠케 한다. 10만 대군이 10여년간 맞붙은 전쟁이니만큼, 멕시코에서 촬영한 전쟁신은 꼬박 2개월 보름을 투자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스파르타와 트로이의 도시 전경을 드러내야 하는 만큼 세트도 많이 지었는데, 여기 쓰인 회반죽은 <글래디에이터>와 <해리 포터>의 세트를 짓고도 남는 140t에 달한다고. 특히 아폴로 신전과 트로이 성, 그리고 전설의 목마 등은 주요한 볼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가장 중요한 질문은 <트로이>가 현재 제작 진행 중인 일련의 시대극의 첫 테이프를 멋들어지게 끊어낼 수 있을지다. 일단, 재난에 대처하는 영웅 이야기(<에어포스 원> <퍼펙트 스톰>)로 일관하는 볼프강 페터슨 감독의 소신, 그리고 오랜만에 블록버스터로 돌아온 브래드 피트의 안목에 믿음을 걸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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