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인은 누구인가? 지난해와 지지난해 독립영화를 조금이라도 주목했던 사람이라면 이 이름은 익숙할 것이다. <재능있는 소년 이준섭> <그의 진실이 전진한다>라는 단 2편의 단편영화로 독립영화계의 일대 파란을 일으켰던 이 문제적 감독에 대한, 조금 늦게 날아온 보고서.
이 사람은 신재인이다. 70년 대전 출생,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한국영화아카데미 17기다. 혹자는 그를 “영화천재”라고 부르기도 하고 혹자는 “약간 사이코라며?” 되묻기도 한다. 본명은 신미경. 재인(才人)이란 이름은 지난해 투병하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이름을 물려받은 것이다. ‘재능있는 인간’이기도 하고 ‘영화 만드는 광대’이기도 하다. 바쁜 와중에도 사진기자에게 “왼쪽 얼굴이 잘 나오니까 사진은 왼쪽으로 찍어달라”는 주문을 잊지 않는 걸 보니 꽤나 까다로운 성격임에 분명하다. 하나 이런 사실이나 추측들은 그를 설명하지 못한다. 그는 유독 상 복, 상금 복 많은 감독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런 번쩍이는 트로피 역시 신재인을 설명할 수 없다.
… 이 기괴한 순환. 또는 술래를 알 수 없는 숨바꼭질. 그래서 번번이 불려가야 하는 지옥의 영겁회귀. 여기에 이 도착증에 빠진 채 물구나무를 선 신재인의 종잡을 수 없는 묘기가 있다. 제임스 카메론의 <타이타닉>과 루이스 브뉘엘이, 혹은 스즈키 세이준과 마리오 바바가 뒤죽박죽으로 앞서거나 뒤서면서 등을 떠밀거나 발을 걸어 시종일관 휘청거리면서 우리가 잘 알고 있던 상징적 법의 인과성을 교란시킨다. 말 그대로 그것이 담론의 목에 꽂혀서 삼켜질 수 없는 형상-원인이 되어 결국 토해내게 만든다. 여기서는 아무것도 환원되지 않는다. 익사할 만큼 넘쳐나는 담론의 토사물. 이 영화 안에 들어서는 것은 말 그대로 신재인 월드에로 다이빙하는 것이다….” - 영화평론가 정성일
“<재능있는 소년 이준섭>은 기발한 이야기 소재에 엉뚱하고 성숙한 유머를 천연덕스럽고 솜씨있게 비벼놓아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모든 감독들을 한방에 보내버렸다. 뒤에 알았지만 그에게 매료당한 영화인들이 꽤 있었던 걸로 안다.” - 영화감독 김지운
이미 눈치챘겠지만, 이 글은 순전히 신재인이란 감독에 대한 소개글이다. 그러니 잠시, 콸콸 쏟아져 흘러내리는 극찬들과 단명한 진실을 거두고 다음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물론 이 흥미로운 ‘중독의 역사’ 역시 신재인이라는 인간을 아는 데는 작은 단서밖에 안 되겠지만.
신재인이 대학에 입학한 해는 1988년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누군가 분신을 했고, 거리는 화염병과 피로 뒤덮였다. 매일 매일이 전쟁 같은 시기였다. 그는 혼란에 빠졌다. 대의명분을 강요하는 사회에도 신물이 났고, 대의명분에 따라 살지 못하는 스스로에게도 자괴감이 밀려왔다. 결국 그는 정반대로 사랑에 탐닉했다. 중독에 가까운 연애였다. 1학년 때 만난 남자친구(지금의 남편)와, 당시만 해도 너무 파격적으로, 애정행각을 벌였고, 그를 “똘아이로 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루는 기숙사에 남자친구를 불러들였다가 들켜서 전 기숙사 생도들이 보는 앞에서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한 여성지에서는 ‘요즘 대학생들의 문란한 성생활’이라는 기사로 그를 다루기도 했다.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인터뷰가 실렸고, 기사는 마치 그를 ‘새시대의 자유부인’이라도 되는 양 보도하고 있었다. 캠퍼스를 걷다보면 학생들이 “이런 시국에 사사로운 연애질이 웬말이냐!”는 증오 담긴 쪽지를 돌에 묶어서 던지고 가곤 했다. 결국 기숙사에서 쫓겨났고 2학년 때부터 학교 코앞에서 본격적으로 동거를 시작했다.
화학과를 다니다 “너 같은 아이는 철학을 해야 해”라는 말에 다시 시험을 쳐서 철학과에 입학했지만 동·서양철학은 알아듣지도 못할 말들이었다. 대신 수학처럼 명료했던 논리학에만 빠져들었다. 결국 하루라도 빨리 이 혼란에서 빠져나오고 싶다는 생각에, 아무런 계획도 없이 4학년1학기 만에 조기졸업했다. 그러나 연애와 논리학으로만 버틸 수 있었던 대학 4년이 준 정신적인 외상은 꽤나 컸다. 졸업은 했지만 목표없이 헤매기는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자괴감에 허우적대며 심한 데카당이 되었다. 돈을 벌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렇게 인생을 “낭비하면서” 살던 중 별 생각없이 고시준비를 시작했다. 원래 “안 자고, 안 씻는 걸 잘하고, 시험운도 좋은 편이라” 사시, 행시 1차는 몇달 만에 붙어버렸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금세 2차도 붙겠거니 기대했다. 그런데 문제는 비디오방이었다. 그 당시 신림동 고시촌 주변에 비디오방이 우후죽순 불어나면서 가게 사이 경쟁이 붙어 한편에 500원까지 가격이 떨어졌다. 어느 날부터 그는 비디오에 중독되었다. 닥치는 대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시네마테크에 빠져든 영화광처럼 하루에 5편은 기본이었다. 공포영화, 액션영화, 멜로영화 등 가리지 않고 보았다. 결국 2차 시험일, 그는 비디오방에서 실베스터 스탤론 주연의 <어쌔신>을 보고 있었다. 그냥 그 영화가 좋아서라기보다 중독이란 다 그렇듯, 이유없이 그 영화를 오늘 안 보면 못견딜 것 같아서였다. 아버지는 화가 나서 장롱을 부수셨고, 거의 죽이기 일보직전으로 노여워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그 길로 고시공부를 때려치웠다. 대학원도 가고, 이런저런 직장도 다녔다. 1년 동안은 모 대학 법대교수 비서로 들어갔는데, 이 생활은 정말 가관이었다. 강남의 으리으리한 멤버스술집 문 앞에서 양복 들고 기다리는 일은 양반이었다. 썩어문드러진 인간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적나라하게 보는 기회였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미쳐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98년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