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한국 최초의 산악영화 <빙우> 제작일지 [1]
2004-01-16
글 : 이영진

영하 40도, 그래도 카메라는 돈다

1월16일 개봉하는 <빙우>는 지난해 캐나다 로키산맥에서 촬영을 감행해 주목을 끌었던 영화다. 40여일 정도의 해외 로케이션이 이제 와서 무슨 대단한 화제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촬영을 둘러싼 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스탭들과 악조건 속에서도 몸을 날린 배우들의 모습을 대하고 나면 그리 잘라 말할 일이 아님을 느낄지도 모른다. 2002년 9월 크랭크인했지만 CG 등 후반작업 분량이 많아 이제야 관객을 만나게 된 <빙우>의 비하인드 스토리 중 캐나다 현지 로케이션을 중심으로 일부를 도려내 여기 싣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참고로 아래 글은 이성재, 김하늘, 송승헌 등 세 배우를 포함하여 김은숙 감독, 최귀덕 프로듀서, 윤홍식 촬영감독의 구술을 바탕으로 하고 메이킹필름 등을 참조하여 현장 관찰자 형태로 재구성했음을 미리 밝혀둔다.

2002. 2

지도로만 탐사했던 뉴질랜드 남섬의 마운트 쿡을 찾았다. <버티칼 리미트>의 로케이션 장소로 잘 알려진 곳이다. 흰눈으로 덮여 있지만 땅은 온기를 뿜어내는 듯하다. 그게 마음에 든다. 필름 커미션도 촬영에 호의적이다. 예산에 비추어 물가 또한 적절하다. 한국 시간으로 여름에 촬영이 들어가서 한달 뒤에 해외 로케이션을 간다고 하면 여긴 남반구니까 겨울. 더없는 조건이다.

조난을 피하는 법? 훈련과 운!

2002. 3

무턱대고 설산을 찾아들어갈 순 없다. 그동안 산악 촬영을 감행했던 방송, 광고쪽 사람들을 만나 경험을 들어야 했다. 그들로부터 보이지 않는 현장의 크레바스를 피할 묘책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대부분 “직접 부딪치는 수밖에 별수가 없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영화쪽 사람이라면 혹시? 일본 후지산에서 악전고투 끝에 단편 〈8849m〉를 완성했던 고영민 감독을 만났다. 그는 조난까지 당했단다. 우리한테도 조난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과한 허풍 아닌가. 넘겨짚을 순 없다. 누군들 중현과 우성의 처지가 되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을 것인가. 연이어 <남극일기> 팀으로부터 조언을 구한다. 한편, 산행을 마치고 돌아온 정승권씨가 합류하기로 했다. 히말라야와 알프스를 수십번 넘나들었던 전설의 클라이머다. 그가 우리에게 온 것이 큰힘이 된다.

2002. 5

시나리오 수정이 늦춰지고 있다. 크랭크인 시기를 늦출 수밖에 없다. 지금 상태로라면 뉴질랜드 촬영은 포기해야 한다. 훈련도 채 마치지 못한 배우들을 무리하게 빙산에 올려보낼 순 없으니까. 다음 후보지는 알프스? 관광지라 원시적인 느낌이 부족하다. 어디가 좋을까. 북미의 굵직한 쇄골격인 로키산맥은 어떤가. 인터넷부터 뒤진다. 캐나디안 로키산맥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국립공원이 여러 개라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밴쿠버 등 인근 대도시도 가깝다. 할리우드쪽 촬영도 많았을 테니 제반 조건이 나쁘지 않을 것이다. 물어 알아보니 우리 크랭크인 시점이 스키 시즌이다. 촬영허가를 내줄 리 없다.

2002. 8

현지쪽과 섭외 끝에 로케이션 후보 중 하나였던 알래스카와 경계한 화이트 패스를 낙점할 수 있었다. 이어 한여름 폭염과 함께 배우들의 강행군도 시작됐다. 이성재, 송승헌, 류해진 등은 앞으로 주 3회 북한산과 도봉산의 암벽을 타야 한다. 김하늘도 뒤늦게 고창 선운산 등에서 트래버스를 시작했다. 트래버스는 암벽이나 빙벽을 ‘z’자 모양으로 지그재그 오르는 산행법이다. 스승의 엄격함 때문인지 낯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인지 김하늘은 다소 굳어 있다. 본인은 아니라고 도리질한다. 이성재는 드라마 <산>에 출연하면서 배웠던 등반 기본기를 되씹고 있다. 그때보다 무섭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 같다고도 덧붙인다. 송승헌은 타고난 운동신경 덕을 보는 듯하다. 도봉산 인수봉 암벽 등반 훈련을 마치고서는 이미 산악인이 된 듯한 폼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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