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유하-김성수 감독 <말죽거리 잔혹사> 대담 [2]
2004-01-16
사진 : 오계옥
정리 : 박혜명

김성수 | 난 그게 재미있었어. 현수란 인물에, 물론 감독이 투영돼 있기도 한데, 현수가 이소룡을 닮고 싶어하기도 하지만 현수 안에 이소룡이란 인물을 아예 집어넣었더라고. 이소룡의 영화에서 이소룡은 항상 싸우기 싫어하고 싸우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늘 누가 싸움을 걸어오거나 불의를 보면 결코 참을 수 없어 하고, 그래서 마침내 제일 강한 인물까지 쓰러뜨리잖아. 그런데 또 여자 앞에서는 굉장히 숙맥이고. 그런 면을 넣은 건 의도적인 것 같아.

유하 | 너 영화를 제대로 본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실제로 <당산대형>을 보면 이소룡이 옷걸이 때리면서 분노하고 그러잖아. 그걸 어떻게 넣을까 했었어. 근데 그냥 넣으면 싸구려가 되니까 멜로랑 잘 섞어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고 싶었지.

김성수 | 현수의 가족 얘기는 더 나올 거 같았는데 별로 안 나오더라.

유하 | 더 있었는데,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도 그랬고, 이상하게 한국 가족이 영화에 등장하면 매너리즘적으로 느껴져서 뺐어.

김성수 | 난 현수가 학교에서 애들하고 섞이지 않는 모습이 진짜 현수의 모습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현수가 애들하고 어울리고 거기에 물드는 건 전학생이라서야, 아니면 애들하고 친해지고 싶어서야?

유하 | 둘 다지. 실제로 내가 전학을 많이 다녔거든. 우리 아버지가 공무원이라서 전학을 많이 다녔는데, 전학을 가면 아무래도 그 학교에서 왕따당하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어울리는 측면이 있지. 사실은 내가 상당히 용기가 없고 겁이 많았어. 그래서 우식이처럼 그렇게 우격다짐하거나, ‘깔창’ 날리는, 그러니깐 주먹으로 유리창 팍 깨버리는, 그런 애들에 대한 선망이 있었지.

김성수 | 넌 지금 미화시키고 있는 건데, 그건 그렇지 않아. 그건 진짜 양아치지. 인간이 자기 내면으로 들어가면 나약하고 그런 게 있는 거지.

유하 | 영화 속에서 종훈이가 반에서 휘젓고 다니다가 찍새를 때릴 때 현수가 일어설까 말까 하다가 일어서잖아. 그게 내 경험인데, 옆반 짱이 들어와서 우리반 애를 개패듯이 패는 거야. 그때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잖아. 그런 시험에 많이 들었어. 일어나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

김성수 | 거기서 일어나느냐 마느냐는 자기 ‘가오’하고도 관련이 되는 건데, 여기서는 현수가 일어난다는 거야. 그건 학교에서 인정을 받는다는 거거든. 그런데 현수는 자기가 뭘 성취하고 나서도 그걸 즐기질 않아. 지나치게 훌륭한 거 아니야? 자기 족보가 높아지는 건데.

유하 | 현수가 자기 여자를 뺏긴 것도 용기가 없어선데, 걔가 일어났다는 건 일종의 성장이 있었다는 거지.

김성수 | 현수는 학교 안에서 우식이랑 어울리면서 위치가 격상되거든. 영화 속의 학교는 주먹의 힘이 서열을 만드는 작은 사회 아냐. 거기서 폼나게 행동한 다음에도 걔는 폼내는 게 없어. 대체 왜 그러냐?

유하 | 그렇게 나섰다가 얻어맞잖아. (웃음) 뽐낼 게 뭐 있겠어. 일어나서 멋지게 종훈이를 해치웠으면 폼났을 텐데, 되레 얻어맞잖아. 그러니까 오히려 자괴감에 빠질 것 같은 거지.

김성수 | 약간 아쉬운 게 있다면, 우식이랑 현수의 관계를 보면 다른 친구들보다 친밀하게 묘사되는데 사실상 정서적인 교류는 별로 없어. 그래서 영화를 보다보면 우식이란 인물이 멋있긴 하지만 정서적으로 친근한 인물로 남진 않아. 오히려 약간 부정적으로 보여.

유하 | 의도한 건 아닌데, 내가 현수에게 많은 걸 투영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 같아. 학교 다닐 때도 내가 그런 친구들하고 친하게 지냈지만 속으로 경멸하는 부분들이 있었거든. 그 때문에 영화에서도 내가 그 친구들에 대한 정서적 교류를 이루거나 하는 측면들을 덜 보인 것 같다는 생각은 들어.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