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유하-김성수 감독 <말죽거리 잔혹사> 대담 [3]
2004-01-16
정리 : 박혜명

김성수 | 시나리오 읽었을 때도 한 말이긴 하지만 또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은, 현수가 은주를 사랑하지만 고백도 못하다가 상처를 받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희망을 갖고, 하는 것이 반복되는 것 같다는 거야.

유하 | 그게 너랑은 안 맞았을 수 있어. 너는 여자한테 딱 한번 대시해봐서 ‘아니면 말고’ 그러잖아. (웃음)

김성수 | 그게, 네가 나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이야. (웃음) 그런데 은주는 우식이랑 같이 떠났던 거지?

유하 | 떠났다가 돌아온 거지. 오래 갔겠니. 한 5일 됐겠지. 시나리오상에서는 우식이랑 은주랑 살림을 차려. 지방에서. 그게 그 당시를 보면 리얼한 부분이 있었거든. 근데 다들 비현실적이라 그러더라고. 그래서 뺐지. 우식이가 갑자기 사라져버린 듯한 느낌이 있지만 어차피 성장영화이기 때문에 시시콜콜한 설명이 필요없을 거라고 생각해. 사실 난 우식이가 별로 궁금하지도 않아. 뭐, 나이트클럽이나 왔다갔다 했겠지, 뭐.

김성수 | 어, 근데 난 우식이가 궁금하더라고. 정말로. 우식이가 마지막으로 학교를 떠날 때 서글펐거든. 걔가 학교를 떠난 가장 큰 이유는 ‘가오’가 죽었기 때문이라고. 사실 그 정도로 개기는 것도 아무나 못하는 거지.

유하 | 하긴 학교 다닐 때는 후크 풀고 단추 두개 풀고, 이런 사소한 걸로도 혼자 반항했다고 생각하고 그랬지.

김성수 | 영화에도 나오지만 교복바지 통 같은 것은 늘려서 나팔바지 만들고 그랬잖아. 12인치면 유야무야 넘어가지만 13인치로 늘려 입으면 좀 나가는 애들이고, 14인치로 늘이면 이건 먹어주는 거고. 그때부턴 아주 교정을 다 쓸고 다니는 거지. (웃음) 이정진이 그 바지를 입고 나오잖아. 이정진이가 그 바지를 입고 나오지 않으면 영화가 성립이 안 돼.

유하 | 학교 캡인데. 캡이 그냥 일자 통바지를 입으면 말이 안 되는 거지.

김성수 | 아까 잠깐 말했지만, 영화에서 정형화된 액션 대신 사실적인 액션을 만든 이유는 뭐냐.

유하 | 차승재 대표가 “너 김성수를 굉장히 의식한 거 같더라”, 그러더라고.(웃음) 기존 영화들이 화려한 액션을 많이 보여줬고, 나는 그렇게 할 실력도 안되고, 그러면 뭔가 날것의 액션을 해보자 그랬지. 이른바 ‘다찌마와리’가 아닌. 그리고 지난해에 ‘프라이드 FC’라는 이종격투기를 보면서 영감을 얻었어. 아, 싸움이란 게 저런 거였지, 하고. ‘합’이 있는 게 아니란 거지. 그래서 무술감독과 얘길 해보니까 현실적으로 상당히 어렵더라고. 일단 얼굴을 쳐야 하니까. 제일 어려웠던 건 원래 액션장면은 컷을 많이 나눠서 사기를 쳐야 하는 거잖아. 그런데 한번에 길게 가려니까 접촉이 많고 부상을 당하더라고. 찍는 동안 굉장히 힘들었는데 한번 해보고 싶어서 끝까지 밀어붙인 건지. 이소룡이 해체주의자더구만

김성수 | 영화 마지막 부분에 현수가 싸움을 앞두고 만반의 준비를 하잖아. 근데 옥상으로 올라가다가 종훈이 뒤통수를 먼저 찍어버리는 거 아냐. 그건 굉장히 리얼한데, 애들이 집단으로 덤벼들 때 현수가 보여주는 광기어린 액션은 반대로 양식화된 느낌이 있거든. 사실 나는 얘가 히어로가 되어서 ‘정무문’ 식으로 평정한다는 느낌이 있어서 강렬하고 좋았는데 영화의 전체적인 리얼한 톤과는 맞지 않는 느낌이 들었거든.

유하 | 물론 리얼한 톤에서 보자면 거짓말이야. 그런데 현수란 인물이 연애나 우정에서 상실감을 겪으면서 거의 정신적인 패닉 상태에 빠지게 되고 결국은 괴물이 되는 거거든. 그 괴물의 심리가 옥상에서 폭발하는 거잖아. 그 내면 심리를 극대화하고 싶었어. 그러다보니까 정서를 많이 확대시켜서 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지.

김성수 | 그 장면에서 싸우기 전에, 우리 옛날 말로 ‘구찌’, 그러니까 ‘말빨’로 상대방을 죽이잖아. 노는 애들이 열번 싸우면 실제로는 한두번만 싸우면 되고 나머지는 말로 하는 거거든. 말을 붙여보면 얘가 내공이 어느 정도 되는지를 알아. (웃음) 영화 속에서 우식이나 선도부장이 하는 대사는 말로 상대방을 묵사발을 내버리는 거지.

유하 | 이 영화 때문에 이번에 <절권도의 길>을 다시 보니까, 이소룡이 해체주의자더구만. 태권도도 그렇고 합기도도 그렇고, 모든 무술이 자기 고유의 품새가 있다고. 그걸 벗어나면 이단 취급을 하잖아. 품새 자체가 절대 진리란 말야. 근데 이소룡은 품새를 다 파괴시켰어. 싸움에서 가장 유리한 동작들만 취하는 거야. 그게 절권도야.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그게 우리나라 고등교육이거든. 모든 게 품새처럼 유일무이한 가치가 있단 말야.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