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태극기 휘날리며>의 기막힌 스탭들 [2]
2004-01-29
글 : 이영진
사진 : 이혜정

남자는 힘, 전쟁영화는 디테일! - 군사자문 김세랑

In <태극기…>

할리우드식으로 명명하면 김세랑(32)씨의 역할은 밀리터리 테크니컬 어드바이저. 영화 속 개별 전투장면의 구성이 실제 역사와 다른 부분은 없는지 시나리오를 감수하고 촬영에 쓰일 의상, 소품, 장비가 한국전쟁 당시 쓰였던 것과 다르지 않는지를 고증했다. 발품 팔아 남대문시장 등에 처박혀 있거나 외국 경매 사이트에 나돌던 50년 전의 군복들을 개인적으로 보유하고 있던 터라(군장의 경우 보는 것과 입는 것은 천지차이여서 직접 구입했다고) 의상팀에 본뜰 실물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한국전쟁 당시 군인들이 입었던 옷의 종류만 100여벌. 갖고 있던 30벌을 들고 가서 이중 적어도 15종은 만들어야 한다고 했을 때 입을 쩍 벌리던 제작진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영화 속 진태와 진석이 입고 있는 군복이 달라지는 것만으로 한국전쟁의 진행을 알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귀띔. 다만 예산과 시간 부족으로 몇몇 장면을 제외하곤 인민군에게 철모를 제대로 씌워주지 못한 것 등은 안타깝다. 검열의 덫 때문에 인민군들이 대부분 철모도 없이 전투를 진행하는 반공영화와 드라마를 볼 때마다 가슴을 쳤던 그였으니 당연하다.

Before <태극기…>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가 아니어도 좋았다. 대부분의 파월군인들과 달리 그의 아버지는 소니TV와 라이카 카메라 대신 환등기와 몇십장의 사진 그리고 군복만을 아들에게 들려줬다. 유년 시절 전장에서 아버지가 입었던 군복을 걸치고 골목을 헤집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는 그는 중학교에 입학한 뒤로는 프라모델 제작, 만화 그리기 등에 빠져들었다. 고등학교 때는 전쟁 전문잡지에 전문 필진으로 기고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현재 군사 전문잡지 <플래툰>의 편집장이면서 미니어처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는 그의 궤적에 드리워진 아버지의 그림자는 크고 너르다.

My hope is…

“전쟁영화의 긴장은 <윈드 토커>의 물량이 아니라 <씬 레드 라인>의 디테일에서 비롯된다” 엄청난 공습장면이 뿜어내는 화염보다 기관총 사격만으로 이뤄진 능선 전투가 더 보는 이를 잡아끄는 이유는 뭘까, 라고 되묻는 그는 언젠가 <머나먼 다리>(1977)처럼 사실적으로 전투장면을 재현하기 위한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언제든 보탬이 되고 싶다고.

어제는 인민군, 오늘은 국군 - 단역배우 김보경

In <태극기…>

“종일 쉴 틈도 없다면서?” 발을 딛지 않은 단역배우들 사이에서까지 악소문이 돌았다. <태극기 휘날리며>가 당시 출연 기피 대상 첫 번째 영화였다는 스탭들의 우스갯소리는 과장이 아니다. 그랬으니 김보경(26)씨가 촬영현장에서 인정받지 않을 수 있었을까. 김씨는 동료 12인과 함께 스탭들로부터 ‘용병’으로 불렸다. 애초 단역배우로 가세했던 그는 출연에만 그치지 않았다. 구덩이를 파고, 바크(특수효과를 위한 재료) 더미를 나르고, 다른 단역배우들의 동선까지 일러주는 역할을 맡았다. 13인의 용병들은 수백명이 분주히 오가는 어지러운 현장에서 제작부를 돕는 든든한 제2중대였다. 고단하다고 제자리걸음을 할 순 없는 일. 짬이 날라치면 그는 남의 대사를 제것인 양 중얼거리며 자율학습을 하기도 했다. 열심을 부린 덕에 그는 인민군, 국군, 민간인으로 매일 옷을 바꿔 입어가며 웬만한 조연배우보다 출연 분량이 많아졌다. “하마터면 다중인격이 될 뻔했다”고 엄살을 피우지만 말이다.

Before <태극기…>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줄곧 탤런트가 꿈이었지만 길은 보이지 않았다. 중학교 시절에는 밖으로 나돌았고 사고뭉치로 찍혔다. 마석-서울-구리를 오가며 폭주족 생활을 하다 고등학교에도 또래보다 늦게 들어갔다. 허송세월하다가 맘 다진 건 군대를 다녀와서부터. 바닥부터 시작하자는 각오로 보조출연 전문 기획사를 찾았고, 그 이후 <챔피언> <역전에 산다> 등의 영화와 <유리구두> <순수의 시대> <야인시대> 등의 드라마에 얼굴을 잠깐 내비쳤다.

My hope is…

그는 요즘 운전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남는 시간은 오디션을 보러 다닌다. 얼마 전 한 방송사에 입사 지원했다가 물을 먹긴 했지만 멈출 수 없다. 촬영 도중 카메오 출연했던 ‘최민식 선배님’이 ‘힘내라’며 다독였던 순간을 잊지 못하는 한 그렇다. “깡패 역할은 잘할 자신이 있거든요. 머리 삭발하고 옷도 조금 걸쳐주면 이미지 살아요.” 목숨 걸고 연기하겠다는 각오를 명함에 새기고 다니는 청년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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