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태극기 휘날리며>의 기막힌 스탭들 [3]
2004-01-29
글 : 이영진
사진 : 이혜정

카메라 밖을 기록한다 - 다큐멘터리 사진 김진형

In <태극기…>

촬영현장에 긴장만이 흐르는 것은 아니다. ‘슛’과 ‘컷’이 만들어내는 진공의 세계를 벗어나면 여백이 있다. 김진형(36)씨가 렌즈에 포착하고자 했던 것도 그것이었다. 장동건과 원빈이 서로에게 돌을 던지며 오지에서의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광경을 떠올려보라. 또 다른 카메라들이 배우들을 클로즈업하고, 제작과정을 따르는 동안 그는 여백을 쓸어담았다. 시나리오를 읽고나서 김씨는 “스펙터클에 압도되어 묻힐 수 있는 디테일한 풍경들을 건져올리자는 것”을 컨셉으로 삼았다. 그는 시대 상황을 반영하는 풍경뿐만 아니라 나름의 실험도 감행했다. 특수분장으로 만든 시체들을 실제상황처럼 찍어놓은 사진 등도 그의 작품이다. 인물의 경우 처참한 전투를 치른 생존자의 모습을 연출해 극대화하려 했다. 하지만 현장이 매번 그의 의도를 응원해주진 않았다. 4일을 기다렸던 최민식의 경우, 촬영 도중 총기 사고가 터지는 바람에 곧바로 병원에 가야 할 상황이 발생한 것. “한롤만 찍게 해달라”고 사정한 끝에 촬영에 들어갔지만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Before <태극기…>

<라이프>를 들춰본 것이 화근(?)이었다. 생생한 사진들을 접하면서 그는 개안(開眼)했다. 아, 이게 진짜 세계구나. 신문사 사진기자 직을 내놓은 그는 곧장 사진학과 대학원에 진학했다. 영화쪽 일을 하게 된 것은 학업을 마칠 무렵 오형근 교수를 만나면서부터다. 영화 포스터 작업도 겸해왔던 스승을 따라 자연스레 충무로에 발을 딛게 됐다. 이후 〈H〉 <오구> 등에서 스틸 작업을 했다.

My hope is…

그는 작은 규모의 코미디나 멜로영화 또한 제작현장의 구석구석을 잡아낸 기록사진이 필요하고, 이를 책으로 묶어내는 풍토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본다. 국내에서는 수요가 없겠지만, 해외 마케팅에서는 2배의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현재 〈SOME〉의 스틸을 담당하고 있는 그는 시간을 쪼개 2년 전부터 찍어온 어수선하기 짝이 없는 한국의 공간 사진들을 마무리하고 있다. 조만간 이주노동자들을 카메라에 담기 위한 사전 조사작업에 들어갈 예정.

걸어다니는 총기사전 - 총기 전문 이주환

In <태극기…>

이주환(31)씨는 애초에는 제작부에 지원했다. 전쟁영화니만큼 꼭 참여하고 싶었다. 그런데 떨어졌다. 화기(火器)에 있어서만큼은 전문가라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무엇보다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때 마침 소품팀원을 구한다는 공고가 났다. 다시 응했고 이번엔 붙었다. 총에 대한 그의 유별난 애호와 지식은 금세 소문이 났다. 결국 원했던 제작부에 배치되어 총기를 담당하는 보직을 얻었다. 현장에서 그가 다뤘던 총은 진짜만 14종, 42정. 닦고, 조이고, 기름칠하는 것은 물론이고 기관총 등 소대별 중화기 배치까지 맡았다. 평양 전투장면에서 중화기로 무장한 인민군에 비해 진격해 들어간 국군의 화기가 딱총이 전부인 것을 확인하고서는 ‘저건 말이 안 된다’ 싶어 바쁜 강제규 감독 몰래 단역배우들에게 중화기를 쥐어주기도 했다. 예고편에서 뿜어져나오는 중화기를 보고서는 인정받은 듯해 뿌듯했다고. 반면, 이 장면 촬영이 끝나고서 MI 소총 한 자루가 분실되어 찾느라 혼쭐이 나기도 했다. 탄알이 장전된 상태인 중화기를 돌보러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단역배우 중 누군가 예비군 기질을 발휘하여 어딘가에 총을 놓고 퇴장한 것이 화근이었다. 수입한 총기 관리 규정상 분실시 누군가는 감방에 가야 하는 상황. 2만평 부지의 세트를 샅샅이 뒤지다 이튿날 아침에서야 발견하고서 가슴을 쓸어내렸다는.

Before <태극기…>

총기의 경우 제원은 물론이고 기능과 효과까지 달달 외우는 박사 수준이지만 정작 그는 몸무게 초과로 군면제를 받았다. 7살 때 샘 페킨파의 <크로스 오버>를 보고서 넋이 나간 뒤 중·고등학교 시절은 도서실에서 미군 군사 교범까지 독파하며 보냈다. 메카트로닉스(산업용 로봇 제작)를 대학에서 전공한 그는 한동안 일반 직장에 다니다가 지니고 있던 역마살을 주체하지 못해 뛰쳐나와 서울예술대학 영화과에 다시 입학했다. 10년이나 어린 동생들과 대학을 다니던 시절, 평소에도 철모 쓰고 워커 신고 다니는 기행을 벌여 눈길을 끌었을 정도다.

My hope is…

소품용 수류탄에 제조 넘버까지 일일이 각인하는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는 그는 자신을 밀리터리 마니아로 만든 “힘에 대한 동경”을 발판 삼아 직접 전쟁영화를 연출해보고픈 소망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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