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오승욱 감독의 60, 70년대 한국 액션영화 자습서 [2]
2004-02-13

제1장 너희가 한다면 우리도 한다!

◎ 문제 60년 대 말 장 피에르 멜빌 감독, 알랭 들롱 주연의 <사무라이>는 남자의 로망에 맛이 간 전세계 사내들의 가슴을 두근두근하게 만들었다. 그로부터 몇년 뒤 새파랗게 젊었던 시절의 월터 힐은 상심한 듯한 눈빛의 사나이 라이언 오닐을 데리고 <드라이버>로 리메이크했었고, 10여년 뒤 홍콩의 오우삼은 주윤발을 데리고 <사무라이>의 홍콩판 <첩혈쌍웅>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가만히 있었겠는가? 아니올시다. <대부>에서 말론 브랜도가 토마토 밭에서 쓰러지는 장면에 버금가는 사과나무 밭에서 장동휘가 쓰러지는 멋진 영화가 있었다. 쟝 피에르 멜빌과 맞장뜨는 한국판 <사무라이>의 제목은?

◎ 답

<암살자>(이만희 감독, 장동휘·남궁원 주연).

이 문제를 맞혔다면 당신은 정말 장난이 아니다. 만약 당신의 나이가 마흔살, 그 언저리보다 어리다면 정말 앞날이 걱정된다. 병이 더 커지기 전에 병원에 가보시길 진심으로 권한다. 사실 고백을 하자면, 나 역시 이런 문제를 맞힐 수 없다. 그래서 난 다행이 병원에 갈 필요가 없다. 히히히.

◎ 심화학습

1. 외로운 늑대 알랭 들롱, 주윤발은 상처받은 영혼의 킬러다. 너희들만 그런 멋진 킬러가 있다고 착각하지 마라. 우리에겐 한없이 고단한 얼굴의 검은 가죽 장갑을 낀 킬러 장동휘가 있었다. 해방공간. 신탁통치 반대를 저지하기 위해 간악한 공산당은 죽음 앞에서 비굴하지 않는 얼굴을 찾아다니는 킬러 장동휘를 고용해 반탁의 주도 인물 암살을 계획한다. 자신이 죽인 자의 딸 전영선을 키우는 킬러 장동휘는 풋풋한 사춘기 소녀 전영선의 부탁인 가지와 파란 잎이 달려 있는 사과를 따주려다 공산당 남궁원에 의해 죽는다. 베어물면 이가 시린 국광사과(지금은 사라져서 보기 힘들다. 홍옥, 인도사과 역시 사라졌다. 부사사과에 밀려)들이 주렁주렁 달린 사과나무 밭에서 장동휘는 고목나무처럼 쓰러진다.

2. 〈7인의 사무라이〉를 본 율 브린너가 존 스터지스를 꼬드겨 <황야의 7인>을 만들었다면 너희들만 하냐? 정육점 주인 허장강 할아버지와 비실비실 배삼룡, <여로>의 바보 장욱제는 시장 상인들을 괴롭히는 못된 깡패 장동휘의 괴롭힘에 견디다 못해 그들에게 대항할 깡패들을 모은다. 과거를 숨긴 미스터리의 사나이 최무룡. 그를 돕고자 나타난 바람처럼 빠른 사나이 독고성. 자기보다 강한 자가 있다면 기꺼이 대결하고 싶은 도박꾼 오지명. 술 한잔에 비굴한 웃음을 흘리며 굽실거리는 알코올 중독자이지만 분노가 불타오르면 5m를 날아 상대방의 정수리를 뽀개버리는 평양 박치기 최불암. 그리고 전라도 사투리의 콧수염 용팔이 박(난 여자가 너무너무 좋아! 예쁜 여자의 아버지는 무조건 장인어른-미들네임이다) 노식. 이렇게 다섯 사나이가 시장 상인들을 위해 단돈 만원씩 받고 모여든다. 악당 장동휘여 기다려라(<오인의 건달들>. 고영남 감독)! 왜 일곱명이 아니냐고? 글쎄다… 하여튼 우리도 한다니까.

3. 좋게 말하면 동시대성을 가지고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복제품이다. 하지만 백번 양보해도 이만희의 영화는 서투른 모방이라고 볼 수 없는 자기만의 독특한 색깔이 있다. 혹심한 검열과 멸공의 시대였으니 결말이 이상해도, 밤장면으로만 이루어진 영화가 밤인지 새벽이지 도통 모르겠는 기술적 결함이 눈에 거슬려도, 이만희는 역시 이만희이다. 암살을 하러 가는 장동휘와 남궁원의 신, 킬러가 오기를 기다리는 반탁 정치가와 여자의 신, 전영선과 오지명의 신, 이렇게 세 신이 서로 교차되며 죽음 앞에 선 주인공들의 욕망과 입장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그 위에 졸리운 듯 나른하게 덧씌워지는 소녀 전영선의 은혜를 모르는 늑대 이야기가 귓가에 맴돈다. “달님에게 물어봤다. 잡아먹으라 그랬지….” 그리고 또 하나, <원점>(이만희 감독, 신성일·문희 주연)의 첫 시퀀스를 보라. 압도적인 분위기를 몰아가는 공간과 신성일의 모습, 그뒤를 이은 계단 위에 쓰리진 채 미끄러지며 싸우는 격투신과 살인장면은 탄성을 자아낸다.

제2장 박노식, 우리의 용팔이

◎ 문제 80년대 주윤발이 이 땅에 상륙해 의리가 사라진 강호의 현실을 서글퍼하며 한숨을 내쉴 때 같이 한숨을 내쉰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정수야, 죽음과 삶의 거리가 이렇게 가깝단 말이냐?”며 동생의 죽음 앞에서 의리를 지키기 위해 복수를 맹세하는 40대들에게는 주윤발의 원형으로 추앙받는 의리의 사나이는?(힌트. 의리하면 용팔이)

◎ 답 박노식.

◎ 심화학습

내가 초등학교에도 못 들어갈 어린 나이였던 그 시절. 날 데리고 극장에 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 첫 번째가 연애를 하던 삼촌들이었는데, 그들은 데이트하는 체면이 있어서였는지 고상한 <아라비아의 로렌스> <대야망> <바이킹>과 그중 고상한 박노식의 <수호지>, 우리나라 최초의 입체영화 <임꺽정> 같은 영화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또 한편, 이모와 고모들은 가기 싫다는 날 온갖 감언이설로 꼬셔서 데리고 가서는 크라운 산도 한 봉지 쥐어주고는 손수건을 꺼내들고 엉엉 울면서 보는 그런 영화들이 있었다. 어린 나는 그녀들이 왜 우는지 모르겠고, 싸워서 해결하면 될 일들을 왜 저렇게 말로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서 그 어린 나이에 고독에 대한 의미를 그 컴컴한 극장 안에서 깨달아야 하는 상처를 받았었다. 그런 반면에 제일 내가 좋아했던 것은 집안 어른들이 혀를 끌끌 차는, 항상 당구장에서 죽때리고, 집에서는 딩가딩가 기타를 치며 <하우스 오브 라이징 선>을 부르고, 밤마다 만화책을 시멘트 종이로 감싸 숨겨 들어오는 사촌형이 보여주는 영화들이었다. 영화 속의 거지가 청경채를 밥 위에 덮밥으로 먹는 것을 보고, 집에 돌아와서 시금치를 밥 위에 올려놓고 먹게 만든 <맹인 협객>을 보여주었고, 제목이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화면에 박히는(어린 나는 무척이나 놀랐었다. 사람 얼굴이 그렇게 커다랗게 보여지는 것도 놀라웠는데, 글자가 움직이니…) <인왕산 호랑이>. 그리고 나의 마음을 온통 빼앗아버린 왕우의 영화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제일 스릴있고 범죄의 냄새가 나는 그래서 아직도 그때의 풍경이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주인집의 초등학교 고학년 형들을 따라 극장엘 가는 것이었는데, 그들은 엄마를 어떻게 속여 돈을 타내는지를 가르쳐주고 내가 엄마를 속여 더 타낸 돈으로 자기는 돈 한푼 안 내고 같이 극장엘 가고, 거기서 깡패들에게 걸려 영화보다가 중간에 도망치던 그런 것이었다. 그런 형들과 본 영화들이 지금은 영화는 하나도 기억 안 나고 깡패들(고작해야 같은 중학생이거나 고등학생 또는 그 또래의 소년들이었을 것이다)에게 쫓겨 눈덮인 언덕을 기어오르던 것만 생각난다.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내린다>의 박노식은 적들과 눈밭에서 싸웠지만 우리는 겁에 질려 눈밭을 죽자사자 도망쳤었다. 그렇게 엄마를 속이고, 깡패들에게 맞을까봐 노심초사하며 보던 영화들이 바로 박노식이 눈에 힘주고 허장강을 째려보고, 장동휘가 아랫 입술에 힘주며 검은 가죽장갑으로 악당을 때려눕히던 영화들이었다.

왕우와 깡다위, 적룡이 단연코 나의 우상이었지만 그들은 사실 외국 사람들이었고, 내가 쓰는 말을 하는 박노식이 그보다 좀더 어렸을 때 나의 우상이었다. 왕우의 <외팔이>를 알기 전에 나에게 외팔이는 박노식이었고, 적룡의 <수호지 무송전>을 보기 전에 나에게 무송은 박노식이었다. 바늘 끝에서 천사들이 몇이나 올라가서 춤을 추는지 알고자 했던 중세의 신학자들의 진지함에 절대 뒤지지 않게 우리는 박노식의 원 펀치가 더 세냐, 장동휘의 원 펀치가 더 세냐를 갖고 싸웠다. 그런 우리 앞에서 누군가 최무룡과 신성일을 이야기하면 난 이모와 고모들이 사준 크라운 산도 한 조각에 속아 따라갔던 극장 안의 처절한 고독이 떠올라 박노식처럼 눈에 힘주고 허장강을 째려보듯 보았던 것이다.

여기 눈내리는 원한의 거리에 서서 지난날 의리를 배신하고 자신을 함정에 빠뜨려 사랑하는 아내 문희를 겁탈한 원수를 찾아 스티로폼 눈을 맞으며 서 있는 사내가 있다(<원한의 거리에 눈이 내린다>, 임권택 감독, 박노식·문희 주연). 지난날의 주먹을 숨기고 비굴한 성실함을 가면으로 쓰고서 사랑하는 아내 사미자가 어떤 위기에 빠졌는지도 모르고, 동대문 시장에서 신촌 서강대까지 사과상자를 배달하기 위해 지게에 사과 두 상자를 메고 땀을 뻘뻘 흘리며 ‘아이고 솔찮히 무거운데 말이시’를 연신 중얼거리며 아현동 고개를 넘어가는 사내가 있다(<속 돌아온 팔도 사나이>, 편거영 감독, 박노식 주연). 죽은 동생의 눈먼 아내에게 차마 동생이 죽었다고 말을 못하고 동생 행세를 하다가 죽은 동생의 원수를 갚고 동생의 아내에게 눈을 기증한다는 안구 기증서를 한손에 쥐고 동생의 아내를 만나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내가 있다(<인간 사표를 써라>, 박노식 감독, 박노식·김희라·김지미 주연). 그가 바로 의리의 사내 용팔이 박노식이다.

글: 오승욱/영화감독·<킬리만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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