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단조로운 베를린, 금곰의 운명이 궁금해 [3]
2004-02-17
글 : 김현정 (객원기자)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간결한 이미지, 강렬한 직설화법

2월10일 첫 공개된 김기덕 감독의 신작 <사마리아>

김기덕 감독의 <사마리아>가 2월10일 베를린에서 처음으로 공개됐다. 김기덕 감독이 “용서에 관한 영화”라고 소개한 <사마리아>는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들의 정액으로, 혹은 살인의 핏자국으로 몸을 더럽히고도, 연꽃 같은 구원을 찾아내는 어느 아버지와 딸을 담고 있는 영화다. 한 소녀에게서 다른 소녀로, 그리고 그 소녀의 아버지에게로 시선을 옮겨가면서, <사마리아>는 이 세상 누가 이들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있는지를 묻는다.

김기덕의 변화는 진행형

고등학교에 다니는 여진과 재영은 배낭여행 갈 돈을 모으기 위해 몸을 판다. 여진은 남자들에게 전화를 걸고, 재영은 그들과 함께 여관에 들어간다. 여진은 섹스를 마치고 나온 재영의 몸을 깨끗하게 씻어주면서 마음아파하지만 재영이 사고로 죽은 뒤, 그동안 받은 돈을 돌려주기 위해 남자들을 만나 섹스를 하기 시작한다. 그래야만 재영에게 덜 미안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진의 아버지 영기가 여관 침대에 앉아 있는 딸을 목격하면서 파국이 시작된다. 형사인 영기는 그 자신이 직접 응징에 나서기로 마음먹고, 그 심판은 두 남자의 죽음으로까지 이어진다.

<사마리아>는 많은 기자와 관객으로부터 이미지가 강렬하다는 반응을 얻었다. 목욕탕에 마주앉아 가느다란 알몸을 끌어안는 두 소녀의 모습, 죽는 순간까지도 성모상 같은 미소를 잃지 않는 재영의 앳된 얼굴, 여진과 영기가 위안을 구하는 인적없는 산길은 서구에서는 보기 힘든 이미지일 것이다. 김기덕은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사마리아>는 매우 고요한 영화”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사마리아>는 죽음에 이르는 절망이 배어나오는 순간에도 처참한 시체를 보여주는 대신 천천히 보도블록 사이에 스며드는 핏물에 머무를 뿐이다. 그리고 그 간결한 이미지 아래에선 진흙탕에 던져진 아버지들이 헤매고 있다.

그러나 <사마리아>는 유독 대사와 이야기가 넘치는 영화다. 베를린 일간지 <타게스슈피겔>은 “관객은 감독의 의도를 놓칠 수가 없다. 그뿐만 아니라 의도한 바가 너무 많다는 사실까지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라고 썼다. 처음부터 인도창녀 바수밀다의 설화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그뒤에도 세 가지 기적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비슷한 테마로 반복되는 전설과 기적, “더럽지 않아”라는 직설적인 대사는 모처럼 여백을 찾은 풍경이 무색하게도, 관객에게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언제나 그렇듯 <사마리아>는 서로를 용납하지 않는 호평과 혹평 속에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그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단 한 가지는 김기덕이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사마리아>로 변화의 시작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기덕은 물러설 줄 모르는 감독이므로, 그가 어느 곳으로 가려 하는지, <사마리아>는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한 영화다.

현지 반응은 극과 극

<사마리아>는 엇갈린 반응을 얻고 있다. 기자시사회 다음날인 2월11일 베를린영화제 공식 데일리에 실린 <사마리아>의 별점은 한개 아니면 두개가 전부. 그러나 독일 현지 언론은 <사마리아>를 예외적으로 비중있게 다루면서 일제히 리뷰를 실었다. 독일 3대 일간지 중 하나인 <지트도이체자이퉁>은 <사마리아>를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영화 중 하나인 <몬스터>와 나란히 비교하면서 “소통의 부재와 침묵 속에 드러나는 폭력은 기타노 다케시를 연상하게 한다”고 썼다. 베를린의 유력 일간지 <베를리너모르겐포스트>는 <사마리아>에 가장 눈에 띄는 찬사를 보낸 신문. “<사마리아>는 잃어버린 어린 시절을 응시하는 영화다. 김기덕은 돌이킬 수 없는 상실과 미래를 향한 가능성을 철학적으로 성찰한다. 그는 한국사회의 기형적인 측면을 날카롭게 포착해 파국으로 몰고가는 데 매우 뛰어난 연출력을 보이는 감독”이라고 평가했다. 역시 베를린의 유력 일간지인 <타게스슈피겔>은 이얼의 연기를 언급하면서 “자기 안에 갇혀버린 표정과 굳어진 시선으로 아버지 역을 열연했다”고 썼지만, “여진은 돈을 돌려주면서 그 행동이 속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 그건 환불이라고밖엔 생각할 수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섹스와 폭력을 자제했지만, 소재 자체가 가지는 충격은 여전히 논란을 부르고 있다. <지트도이체자이퉁>은 “<사마리아>가 담으려고 했던 구원의 메시지는 너무도 생경한 스토리에 묻혀 알아볼 수가 없다”고 써서 불편한 심정을 토로했다. 관객도 비슷하다. 일반에 처음 공개된 <사마리아>를 보고 나온 관객은 대체로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스산하고 어두워서 도저히 상을 타진 못할 것 같다”, “영화가 준 충격으로 정신이 없다. 소화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영화인 듯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물론 <사마리아>는 김기덕의 영화이므로, “이게 무슨 사랑 이야기인가. 우울증 걸린 것 같은 사람들만 나오는데. 보고 나니 기분이 나빠졌다”는 격렬한 대답도 돌아왔다.

기자회견

"도덕의 기준을 묻는 영화다"

<사마리아>는 도덕을 향한 질문을 담고 있다. 이 영화의 아버지와 딸은 사회적인 맥락 속에서는 부도덕한 인물들이지만, 또한 도덕적이기도 하다. 그들은 누군가를 구원하려 하고 위로하려 한다. 이 영화를 도덕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말할 수는 없겠지만, 도덕의 기준이 잘못되지는 않았을까 묻는 영화라고 할 수는 있겠다. 도덕은 정직한 삶의 규범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만 살아갈 수는 없다. 그 때문에 용서가 필요한 것이다. 이 영화의 첫 번째 소제목 ‘바수밀다’는 부정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위로했던 인도의 창녀고, 두 번째 제목 ‘사마리아’는 성경 속에서 배척받았던 민족, 그래도 용서받아야만 하는 민족이다. 세 번째 제목인 소나타는 한국 서민들이 많이 타는 자동차 이름이다. 바수밀다와 사마리아를 인간의 삶으로 인정하고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사마리아>는 우리가 부정한 것을 용서할 수 있을까에 관한 영화다.

-원조교제는 일본에서 유행했던 걸로 알고 있다. 한국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가.

=일본보다는 조금 늦게 시작됐다. 원조교제는 기성세대의 윤리적 태도가 가장 중요한 원인이고, 휴대폰이라는 작은 기계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욕구가 또 하나의 원인이다. 나는 이 문제를 9시 뉴스 헤드라인처럼 다루고 싶지는 않았다. 피해자와 가해자, 선과 악으로 나누기보다, 그들의 가족을 보고자 했다.

-한국영화에서 천주교의 테마를 발견한 건 뜻밖이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불교적인 영화였는데, 당신은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는가.

=이 영화의 아버지는 딸에게 천주교의 세 가지 기적을 들려준다. 그것은 깨끗한 마음으로 살고 싶어하는, 혹은 자신의 딸만은 깨끗하게 남아주기를 바라는 판타지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고, 우리는 살아남아야 한다. <사마리아>는 그 판타지를 궁극으로 삼는 영화는 아니다. 나는 크리스천이었지만, 이젠 종교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누군가 내게 당신의 종교가 무어냐고 묻는다면, 자연, ‘스스로 그러한 것(自然)’이라고 하겠다. 한국사회의 전통은 불교와 밀접하게 연관되어있기 때문에 <봄 여름 …> 같은 영화를 만들었다.

-당신은 여러 번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받았지만, 수상한 적은 없다. 유럽 관객은 당신의 영화를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혹은 오해받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가.

=내 목표는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지 않는 거다. 상을 받는 순간, 내 영화는 스탠더드한 영화가 된다. 그런 영화는 남들이 많이 만드니까, 나는 계속 세상을 바라보는 내 관점을 솔직하게 담고 싶다. 유럽 관객도 한국처럼 반은 내 영화를 경멸하고, 반은 내 영화에 관심을 보인다. 그런 상태가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사마리아>는 <나쁜 남자>처럼 이제 영화가 끝난 줄 알았는데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곤 한다. 도대체 이 영화의 결말은 몇번이나 되는 건가.

=아버지가 딸을 살해하는 장면은 환상처럼 처리했다. 한국사회의 윤리에 따른다면, 아버지는 부정한 딸을 처벌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인간이 인간을 징계할 수는 없다고 믿는다. 징계는 신의 몫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모든 걸 용서하고 용서받은 딸이 스스로 삶을 헤쳐나가는 걸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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