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흥행작가 3인의 신작 [3] - 박찬욱
2004-03-05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오계옥
박찬욱 감독의 옴니버스 프로젝트 <컷> 

선택을 강요당하는 영화감독의 파국

아시아 3개국 공동 제작 프로젝트인 옴니버스 공포영화 <쓰리>의 첫 번째 주자들은 논지 니미부트르, 진가신, 김지운이었다. 그뒤를 이어 만들어지는 <쓰리, 몬스터>의 바통을 미이케 다카시, 유휘강, 박찬욱이 맡게 됐다. 명단에서 감지되는 것은 강렬함이다. 그리고, 박찬욱 감독이 ‘선택’한 몬스터는 평화로운 가정으로 들어온 침입자이다. <올드보이>에 이어 박찬욱 감독은 이번 단편영화 <컷>에서 다시 한번 인물들 사이의 강요와 선택과 긴장과 대결, 그리고 그 대가 어딘가에 카메라를 세운다. 7억∼8억여원의 예산으로 30분에서 45분가량의 러닝타임으로 만들어질 이 영화는 거의 극중 시간과 러닝타임이 같을 예정이고, 공간이 만드는 비현실적 이미지는 풍족한 부유층의 가정을 인질극의 난투장으로 만들어낼 계획이다. <올드보이>의‘학습, 자료용’ DVD 출시에 매진하는 한편, 생애 최초의 뮤직비디오를 이제 막 완성한, 그리고 루마니아의 아시아영화페스티벌-

그의 다음 영화주인공 명단에는 흡혈귀가 있다- 에 다녀온 박찬욱 감독을 만난다.

-<컷>이라는 제목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줄거리를 좀 이야기하는 수밖에 없겠다. 주인공이 일단 영화감독이다. 감독이 영화 찍을 때 하는 그 컷이라는 의미가 있고, 또 손가락을 자르는 행동이 영화 속에서 많이 나온다. 아니, 많이는 아니고 몇번 나온다. 주인공 영화감독에게 딜레마가 주어진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선택이 강요되는. 그럴 때 명쾌하게 뭔가 딱 잘라서 정해야 하는 그런 느낌이 많이 들어 있다.

-언제, 어떻게 시작하게 된 영화인가.

=제안받았던 건 좀 오래됐다. 처음에 영화사 봄 오정완 대표가 제안하기로는 프로듀서가 김지운이라고 그랬다.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편영화라면 서로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지만, 이런 거면 둘이 의논해가면서, 놀면서, 각본도 만들고, 편집도 하고… 거기에 넘어갔는데… 결국 김지운은 빠지고…. (웃음) 그리고 원래 나는 장편과 단편을 번갈아가면서 찍어왔으니까.

-지금 말한 것처럼 장편과 단편을 번갈아 만드는 특별한 이유는.

=지금 <쓰리>의 경우는 약간 다르다. 길이만 다를 뿐. <쓰리>는 단편이지만 정식으로 상업영화다. 다른 단편영화를 할 때보다 굉장히 자유롭다거나 하진 않다. 하지만 왜 학생 시절에 단편만들 때의 재미 같은 것이 있지 않나? 그걸 내가 다시 갖고 싶어서 하는 거다. 근본적인 이유를 묻는다면 그런 것이다.

-<컷>은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다루나.

=뱀파이어영화 만드는 감독이 주인공이다. 주인공은 외모부터 출신까지 모든 면을 다 갖춘 유능한 사람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촬영을 마치고 집에 와보니, 어느 불한당이 침입해서 아내를 인질로 잡고 이 남자에게 아주 선택하기 어려운 게임, 그러니까 어떤 딜레마를 제시하는 거다. 그 불한당이 요구하는 걸 선택하지 않으면 피아니스트인 아내의 손가락을 자르겠다고 협박하면서. 그래서 그 둘이 대결을 벌이는 이야기다. 아주 행복했던 한 부부가 처음 보는 사람에게 협박당하면서 가정이 붕괴되어가는 거다.

-그렇다면 불한당과 가족 사이의 전사가 있지는 않은가.

=있다. 이 남자는 알고보니 전에 감독이 만들었던 영화에 엑스트라로 출연한 적이 있다. 하지만 엑스트라로서의 어떤 서러움 같은 것은 아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아는 사이이긴 하다. 처음 만났을 때는 감독이 기억을 못한다.

-혹시 감독이 불한당에게 요구받는다는 그 선택이라는 것이 어떤 윤리적인 면과 연관되어 있나.

=그렇긴 한데… 이거 말해도 되나…. (웃음) 침입자가 아이를 하나 데리고 들어오는데, 사실은 그 자신도 전혀 모르는 사이이다. 영화감독에게 그 아이를 죽이라고 하는 거다. 아내의 손가락과 그 아이의 목숨 중에 선택하라고 요구하는 거다

-이번에 만들 영화를 <올드보이>에 견주어서 말할 수도 있겠는가.

=두 남자의 대결 이야기이고, 악한이 그 주인공에게 어떤 선택을 강요하는 게임을 제안했다는 점에서는 같을 수 있겠다.

-장편과 단편을 만들 때의 리듬이 각각 다를 텐데 어떻게 조율하나.

=장편의 경우는 캐스팅이 되고 나서 촬영이 시작되기 전 배우들하고나 또 배우들끼리 친해질 기회가 많은데, 단편은 그럴 시간이 별로 많지 않다. 이번 경우 임원희는 캐스팅된 지 오래됐지만 이병헌은 캐스팅된 지 얼마 안 됐다. 문제는 이미 캐스팅된 여배우를 포함해서 이 셋 사이의 관계가 얼마나 친밀해지는가이다.

-이번 영화에서 주력하는 형식 또는 스타일이 있다면.

=이야기가 한 장소에서 벌어진다. 그래서 시간을 정확히 재면서 극중 시간과 러닝타임을 거의 맞춰서 갈 계획이다. 시공간이 한정되고 비약이 없는, 그 ‘밀도’가 관건인 것 같다. 30분에서 45분여 동안 딱 한 공간에서만 두 사람이 떠들고 싸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라서 집중력 있고, 밀도있게, 연극에서처럼 계속 끼어들고, 상대방 반응에 따라서 극단적인 반응으로 나가기도 하는 그런 스타일이 될 것이다.

-그 밀도를 위해서 카메라의 포지셔닝이나 무빙은 어떻게 조력하게 되는가.

=일단 숏도 많고, 이동도 많다. 기법 면에서 말한다면 특히 줌잉이 많을 것이다. 1970년대 영화에서 남발됐었는데 지금은 줌렌즈 달기조차 싫어하지 않나. 나는 그걸 아주 빠른 속도로 사용할 것이다.

-줌렌즈를 통해 관객이 얻을 수 있는 정서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가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이 영화에서의 줌잉은 한 인물이 어떤 반응을 보일 때 거기에 따라 상대방의 기분이 천국에서 지옥으로 왔다갔다 하는 그런 순간을 잘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인물이 어떤 극단적인 행동을 했을 때 트랙으로 서서히 들어가는 영화들이 있는데 나는 그런 거 보고 있으면 답답하다. 어차피 들어갈 거 뻔히 다 아는데. 확 들어가면 훨씬 더 재미있을 것 같다.

-조명이나 공간 세팅은 어떻게 구상하는가.

=리얼리틱한 공간을 만들려는 노력을 안 한다. 그러니까 비현실적인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기보다는 굳이 리얼리틱한 공간을 만들려는 노력은 안 한다는 말이다. 영화의 성격에 맞게 갈 것이다. 만약 영화전문기자들이 본다면 ’아니 저렇게 사는 영화감독이 어딨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물론 감독들은 더 그럴 테지만. (웃음) 다들 저렇게 부자감독이 어딨어 하겠지. 그런데 그건 뭐, 유산을 상속받을 수도 있는 문제고. 사람들이 많이 잊고 있는데, 강우석씨도 감독이다. 내 말은 부자감독도 있다는 얘기다. 또, 그런 분위기에 맞는 인테리어도 생각 중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감독이 부자이어야 하는 것과 이 영화가 공포영화이어야 하는 것과는 어떤 연관이 있나.

=임원희가 맡고 있는 괴한은 자신이 가난하고 상대방이 부자라는 것에 많은 관심이 있다.

-주인공 영화감독으로 이병헌을 캐스팅한 이유는.

=이 남자가 완벽한 사람이라고 했을 때에는 외모도 포함되는 문제라서 송강호나 설경구는 당연히 제외될 수밖에 없고. (웃음) 농담이다. 최민식 선배도 생각했었는데 잘 맞을 것 같진 않았고. 하지만 모두 가 아니라서 이병헌을 캐스팅했다는 말이 아니다. <컷>에서 감독은 굉장히 힘든 상황이다. 침입자는 영문도 모르는 감독 집에 들어와서 마구 휘젓고다니는 사람인데, 감독은 수동적으로 행동하거나 머리를 쥐어짜서 그것에서 벗어나보려고 하는데도 잘 안 먹히는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그 감정을 잘 조절 못하면 아예 인물이 보이지도 않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물론 미남배우이면서 연기도 잘하는 배우가 필요했지만, 덧붙여서 스타 이미지가 중요했다. 영화 속에서 이미 스타감독이고, 다 갖춘 사람으로서의 이미지는 아무리 미남배우이어도 그 자신이 스타배우가 아니라면 윤기가 잘 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임원희는 말로 막 하는 반면 이 역할의 감독은 별로 할말도 없고, 입을 열어봐야 특별한 말이 나올 것도 없다. “당신 나한테 왜 이러는거야”, “잘못했어”라는 이런 말밖에 없다. 이병헌은 굉장히 호소력있는 눈을 갖고 있는데, 그 눈빛으로 여러 가지 말을 대신 한다. 그래서 이병헌이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내용을 듣고 보니 <올드보이>에 비교할 만한 반전이 여기에도 있을 것 같다.

=있다. 그런데 그거 말 하려면 내용을 말해야 하지 않나. 알면 영화 재미없지 않겠나. <올드보이>에 비하면 목숨 걸 만한 것은 아니고 오히려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장편영화의 구상도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고 들었다.

=두 가지인데, 흡혈귀영화를 먼저 할지 복수 이야기를 먼저 할지 지금 생각 중이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