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논스톱>이라는 장르가 해낸 것은 무엇인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이 시리즈가 아직 능력과 가능성이 입증되지 않은 반반한 외모의 젊은 신인들을 위한 신병훈련소라는 것이다. 지금은 어느 정도 인정받는 스타가 된 장나라, 조인성, 정다빈, 양동근, 김정화와 같은 배우들은 모두 본격적인 스타로 진입하기 전에 <논스톱>을 거쳤다. 그들에게 처음으로 맞는 이미지를 찾아준 것도 <논스톱>이었고 일주일에 5일 방영되는 일일 시트콤의 강행군을 통해 배우로서 어느 정도 수준으로 기능할 수 있게 도와준 것도 <논스톱>이었다. 이런 신병훈련식 접근법은 시리즈의 이야기와 캐릭터들에 예측 못할 활력을 불어넣기도 했다. <논스톱>에서 캐릭터는 계획대로 만들어지는 대신 시리즈가 흐르는 동안 배우들과 함께 성장과 탐색을 거듭했다. 캐릭터들의 발전은 종종 예측불허였으며 덕택에 설정만 따진다면 무개성적이기 짝이 없는 로맨스들의 성과도 높아졌다. 지금도 기억되는 경림과 인성, 동근과 나라의 로맨스는 반쯤은 의식적이고 반쯤은 장르와 습관에 갇힌 진부한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이들의 상품 가치를 높이고 7시 시간대의 시청자를 되찾기 위한 방향없는 시도가 서서히 고유의 개성을 구축했다는 사실도 지적해야 할 듯하다. 말 그대로 <논스톱>은 코미디를 만들기 위해 뭐든지 했다. 필요하면 캐릭터의 성격을 중간에 바꾸었고, 제4의 벽을 깨뜨렸고, 물리법칙을 비틀었으며, 한동안 그래도 안 해보려던 패러디도 결국 쏟아부었다.
그러는 동안 시리즈와 시리즈가 그리는 세계는 일종의 무책임한 매력과 같은 것을 얻기 시작했다. <논스톱>의 세계에서도 학교수업과 취업고민, 경제적 격차는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은 ‘뭐든지 한다’의 진행 속에서 서서히 자기만의 규칙을 갖기 시작했다. 학부생에게 수업보다 교수의 세미나가 더 중요하고 부모 세대의 사람들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존재하지 않으며 연애에서부터 경제문제에 이르기까지 평균보다 훨씬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젊은이들의 공간이 만들어진 것이다. 심지어 경림이나 몽처럼 심각한 경제적 빈곤에 시달리는 주인공들의 고민도 진짜 현실세계의 고민에서 살짝 벗어나 유형화된다. 이 시리즈에서는 현실에선 심각한 고민인 것도 과장된 농담과 캐릭터 구성을 위한 장난감이 된다. <논스톱>에서 대학은 현실세계에서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해방구가 된다. <논스톱>의 핵심도 그것이다. 예쁘거나 재미있는 젊은이들이 자기만의 장난감과 고민을 가지고 마음껏 놀 수 있는 환상 속의 공간만 존재한다면, 이 시리즈는 어떤 배우들이나 캐릭터들이 등장해도 여전히 <논스톱>이 될 수 있다.
물론 이런 환상은 텔레비전 광고만큼이나 가짜이다. 하지만 비슷한 세계를 좀더 사실적으로 다루는 다른 시리즈나 영화에 비교해본다면 <논스톱>은 오히려 더 솔직하다. <논스톱>의 설정과 이야기는 너무나도 허황되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그 이야기와 설정에 몰입하는 동안에도 그 환상을 현실에 그대로 대입하는 짓 따위는 하지 않는다. <논스톱>이 주는 20여분간의 오락은 솜사탕처럼 입 속에서 사라진다. 특별히 남는 건 없지만 바로 이 시리즈가 원하는 오락 역시 바로 그런 것이다.
<논스톱>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시청자들과 제작진들이 원하는 것처럼 계속 등장인물들과 배경들만 바꾸어가며 비슷한 농담들로 대를 잇는 프로그램이 될 것인가? 아니면 그러는 동안 어떤 발전과 변화를 모색할 것인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자에 안주하고 싶을 것이다. 지금까지 7시대 시트콤에 변화와 발전을 주려는 대부분의 시도는 좌절을 맛보았다. 사체과나 밴드부로 새로운 이야기를 하려는 시도는 다 어디로 갔는가? 결국 흔한 짝짓기 이야기로 흘러갔다. <논스톱>의 성공은 시청자들이 원하는 가장 안전한 길을 알아서 따라주는 데 있었다.
결국 <논스톱>의 고민은 장르물의 고민으로 연결된다. 어떻게 되면 지금까지 공들여 쌓아온 단단한 공식들을 서서히 변해가는 시청자들의 입맛에 맞추어가며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이 진부한 음악에 맞출 새로운 춤을 부여할 것인가. <논스톱4>가 가까스로 회복한 에너지로 이 고지를 넘을 것인지에 대한 질문의 답은 이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논스톱>이 배출한 스타들
여기에 실린 이름은 스타들의 이름이면서 동시에 <논스톱>이라는 시트콤의 캐릭터의 이름이었다. 우리나라의 시트콤이 배우들의 실명을 사용하는 것은 일종의 전통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논스톱> 시리즈는 어느 순간부터 기존의 스타가 아닌, 새로운 얼굴들을 끌어들여 시청자들에게 특정한 이미지를 받아들이도록 유도하기 시작했다. 거짓말처럼 그러한 이미지 메이킹은 대부분 적중했고, <논스톱>을 통해 이름이 알려진 ‘캐릭터’들은 이미 익숙해진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드라마나 영화로 활발하게 진출했다. <논스톱>을 계기로 무명의 딱지를 떼게 된 그 이름들을 다시 짚어보자.
어리버리 캔디_ 장나라
그 누구도 미워할 수 없는, 어리버리의 원조. 구리구리 양동근의 어처구니없는 거짓말에 어김없이 넘어가고, 매번 약점을 잡힐 때부터 수상쩍더니 이후 <뉴 논스톱> 후반부의 대표적 언밸런스 커플로 엮였다. 꾸밈없이 솔직한, 언제나 당하는 쪽이지만 굴하지 않는 캐릭터는 드라마 <명랑소녀 성공기>로 반복되면서 인기를 끌었다. 영화 데뷔작인 <오! 해피데이>의 무시무시한 스토커도 그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만한 인물. 아무리 망가져도 여전히 귀여운 캐릭터는 그의 전공 분야다. <논스톱3>의 이진 등이 그 계보를 넘보았으나 일단은 귀여움에서 그를 능가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수려한 외모 어설픈 젠틀맨_ 조인성
“얘는 멋있다. 지금은 아닌 거 같아도 멋있어질 거라고 시청자들을 세뇌시킨다.” 권익준 PD의 표현에 따르면 ‘작정하고’ 멋지게 보이도록 만든 캐릭터. 수려한 외모에 부드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경림과 커플이 됐고, 덕분에 확실한 인기를 누렸다. 이후 굵직한 드라마 <별을 쏘다> 등은 물론이고, 영화는 <마들렌> 이후 세편에 출연했다. 충무로에 젊은 피를 수혈한 <논스톱> 시리즈의 공로가 확실하게 인정된다. 젠틀한 바른생활 사나이의 캐릭터는 이후, <논스톱3>의 조한선, <논스톱4>의 전진으로 변주된다.
속물이라고? 웬일이니, 웬일이니∼_ 정다빈
<단적비연수>에서 최진실의 아역을 맡았던 것으로 관심을 끌기도 했지만, 정다빈의 성장이 <논스톱> 시리즈의 공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뉴 논스톱>의 조연에서 시작하여, <논스톱3>에서는 짠돌이 최민용과 커플을 이루면서 주연급으로 연결된 케이스. 속물스러우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의 원조이다.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에서는 김래원과 함께 ‘현실적인 그 모습이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확실히 각인시킨다. 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미학은 가히 감동적이라고나 할까.
썰렁해도 멋있어_ 조한선
<논스톱3>가 시작된 지 몇달 뒤 합류한 ‘일종의’ 완벽남. 태우에 대한 마음 때문에 고생하던 정화를 남몰래 짝사랑하다가 결국은 커플로 맺어지고, 시리즈의 중심으로 진출했다. 정화가 유학을 떠난 뒤에는 다나와 의남매가 되면서 또 다른 모습을 선보인다. 반반한 외모이면서 얼굴값은 못하고 썰렁한, 바른생활 캐릭터의 계보를 잇는다. 고구마와 치즈를 양손에 들고 운명적인 만남을 이루는 CF에서 보여지는 썰렁함. 드라마 <좋은 남자>에서 보여지는 단순무식과격하지만 정에 약한 형사 강태평은 모두 <논스톱3>에서 익숙해진 그의 모습들의 일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