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 | 아, 작품상 발표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의 ‘싹쓸이’를 선언하는군요.
봉 | <벤허> <타이타닉>과 트로피의 수는 동수지만, 후보 지명을 받은 전 부문에서 수상에 성공을 한 것은 새로운 기록입니다. 속편으로 작품상을 받은 것도 <대부2> 이후 처음 있는 일이죠? 그러나 무엇보다 할리우드가 판타지 장르를 존경할 만한 ‘고전’으로, 필름메이킹의 전범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에 눈길이 가네요. <스타워즈>나 〈E.T.〉같은 판타지들이 사회적 신드롬을 만들어내고도 오스카에서 외면당했던 시대와는 분명 다른 조류가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몽 | 뉴질랜드와 전세계의 <반지의 제왕> 마니아들은 샴페인의 숙취에 꽤나 시달리겠지만, 오늘 시상식이 영화였다면 서스펜스가 결핍됐다는 이유로 모든 스튜디오 간부들이 퇴짜를 놓았을 것 같네요.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의 독식뿐 아니라 거의 모든 부문에서 ‘유주얼 서스펙트’가 상을 가져갔으니까요.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랫소리와 함께 막이 내린다. “영화는 세편, 러닝타임은 아홉 시간, 박스오피스는 10억달러. 모든 오스카를 지배하고 모든 오스카를 차지하는 것은 절대반지. 모든 오스카를 불러모아 진열장에 가두는 것은 절대반지.”
오스카 이모저모
최고의 공연
윌 패럴과 잭 블랙이 듀엣으로 들려준 <당신은 지루해> 송. 수상자들의 긴 소감을 끊기 위해 쓰이는 오케스트라 연주곡에 실은 가사가 있었다는 놀라운 비밀을 밝히며 “당신의 시간은 다 됐어요. 지루해요. 계속 떠드네요. 지루해요. 감사 좀 고만해요. 앞줄의 캐서린 제타 존스 코골잖아요”라는 노랫말을 공개했다. 스팅, 엘비스 코스텔로 등의 무대도 있었지만 가장 귀여운 무대는 사랑스런 키스를 곁들인 유진 레비와 캐서린 오하라의 듀엣 〈Kiss at the End of the Rainbow>였다. 빌리 크리스털의 <마리아>를 개사한 <소피아> “소피아, 27일 만에 영화를 다 찍었다구요? 아버지께선 말론 브랜도 깨우는 데에만 27일 걸렸다네~”도 폭소를 자아냈다.
베스트 유머
3년을 쉬고 귀환한 빌리 크리스털의 소회. “케이샤 캐슬-휴즈(왼쪽)양, 13살이라구요? 이름 세개씩 갖긴 좀 어리지 않아요? 내가 오스카 처음 사회 본 게 13년 전인데,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그때는 부시가 대통령이었고 경제는 곤두박질치고 있었고 이라크전쟁 뒤끝이었답니다.” <스타스키와 허치> 개봉을 앞두고 70년대 패션으로 무대에 오른 파트너 벤 스틸러를 막판에 배신하고 “오늘의 주인공은 후보들인데, 무슨 뻔뻔한 짓이야!”라고 준엄히 꾸짖은 오언 윌슨도 호응을 얻었다.
베스트 후일담
“오늘밤, 판타지(Fantasy)는 5초 지연 중계로도 삭제하지 못하는 F로 시작하는 단어였다”는 피터 잭슨의 유쾌한 결론. 또, 잭슨은 “영화판 <호빗>은 뉴라인이 제작 판권을, MGM이 배급권을 갖고 있다. 두 회사의 변호사들이 합의만 끝낸다면 나는 얼마든지 이를 반지 연작의 일부로서 직접 연출할 생각이 있다. 물론 <킹콩>을 마친 뒤에”라고 확인해 여정의 종결을 서러워하는 팬들의 귀를 솔깃하게 했다.
가장 달콤한 수상 소감
제76회 오스카의 수상 소감 트렌드는 ‘가족사랑’. 너나 할 것 없이 아내와 남편, 연인과 부모에 대한 애정고백에 바빴다. 그중에서도 <니모를 찾아서>의 앤드루 스탠튼(왼쪽)은 “8학년 때 쪽지로 전했던 말을 이제 10억의 사람들 앞에서 할게. 당신을 사랑해”라고 아내에게 잊지 못할 고백을 날렸다. <하비 크럼펫>으로 단편애니메이션상을 탄 애덤 엘리어트는 “내 아름다운 남자친구와 인사를 전한다”고 말해 오스카 사상 최초로 게이 연인에게 치사를 남긴 수상자가 됐다. 엘리어트는 무대 뒤에서 “사귄 지 두달밖에 안 됐는데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머리를 긁적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