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인어공주> 필리핀 바닷속 촬영 동행기 [2]
2004-03-19
글 : 오계옥
글 :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변덕스런 날씨와 수심 5m가 넘는 낯선 바다에 대한 두려움

이튿날인 3월8일, 본격적인 촬영이 진행됐지만 취재진은 현장에 접근할 수 없었다. 풍랑이 심상치 않은데다 첫날 촬영이 연기되면서 제작진의 신경이 곤두선 탓이다. 새벽에 촬영을 나간 제작진이 돌아온 것은 밤 7시가 넘어서였다. 그들은 모두 물에 빠진 생쥐처럼 젖어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풍랑이 심해 몽땅 젖은 것이다. 이날 수중촬영팀은 9시에 물에 들어가 6시까지 점심식사도 거르고 9시간 동안 물에 떠 있었다. 스쿠버팀에게 9시간 동안 물에서 일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작업인지 물어봤더니 이렇게 답한다. “물속에서 100m를 가는 것은 지상에서 300m를 달리는 것과 맞먹는다. 체온은 지상보다 25배 빨리 뺏긴다. 전문가라 해도 웬만한 체력이 아니면 버티기 힘들다.” 스쿠버팀에 비하면 덜 힘들다 해도 전도연씨도 체력의 한계를 느낄 정도로 오래 물에 있어야 했다. 수중촬영의 경우, NG가 나더라도 물에서 나와서 쉬다가 다시 들어갈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전도연씨는 이날 해파리에게 공격을 당하기도 했다. 오른쪽 눈 위를 해파리에게 쏘여 배에 올라와 엉엉 울었다는 전언이다. 우도 촬영 때는 전도연씨가 해파리와 관련해 제작진을 감탄케 한 일이 하나 있었다. 10여명의 해녀가 뭍으로 다가오는 장면을 찍는데 갑자기 대열이 흐트러졌다. 수영을 하던 단역배우들이 해파리를 보고 놀라 흩어진 것이다. 그때 오직 한 사람, 전도연씨만 카메라를 향해 곧장 다가왔다고 한다. “배우가 다르긴 다르다”는 감탄이 나올 만한 일이었다. 아무튼 전날 “우도에 비해 10배는 찍기 쉽다”며 필리핀 촬영을 반겼던 촬영팀은 이날 촬영을 끝내고 돌아와서는 “10배가 아니라 3배로 수정해달라”고 말했다. 이곳 역시 섬인 탓에 수시로 먹구름이 지나가며 촬영팀을 약올렸고 조류는 예상보다 위험했다. 이곳 해저지형은 5~6m 깊이의 바다 바로 아래 수백 미터 깊이의 낭떠러지가 있기 때문이다. 방향감각을 정확히 유지하고 열심히 발질을 하지 않으면 조류에 쓸려 수백 미터 깊이의 바다로 밀려나는 것이다.

3월9일,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바다는 화가 난 듯 보였고 취재진은 다시 촬영팀의 연락을 기다려야 했다. 상당히 많이 내리던 비가 오전 10시를 넘자 그쳤다. 오후에 바다로 나가자 밧줄에 묶인 네척의 배가 해안에서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 나란히 서 있었다. 드디어 진짜 촬영을 하는 장면을 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막상 이곳에 도착하자 대번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된다.

해녀복 입은 필리핀 여성들의 아우성?

해녀복을 입은 30여명의 필리핀 여자들이 배에 매달려 알 수 없는 말로 떠들어대고 있는 게 아닌가. 사실 이날 촬영은 수십명의 해녀가 잠수하는 광경을 물 밑에서 잡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엑스트라를 데려올 수 없는 상황이라 필리핀 여인들에게 해녀복을 입혀 촬영을 하려던 찰나였다. 그런데 이상하다. 필리핀 여인 중 몇명이 구명조끼를 달라고 하더니 모두가 구명조끼를 입고 배에 매달린다. 현장은 일순 공포에 휩싸였다. 그렇다. 수영을 잘하는 필리핀 여자들을 섭외해달라고 했건만 여기 모인 필리핀인들은 수영을 못하는 것이었다. 해외촬영을 하면 의사소통이 안 되어서 누구나 한번씩 이런 일을 겪는다지만 이번엔 좀 심했다. 박흥식 감독은 어이가 없어 말도 안 나온다는 표정이다. 스쿠버팀이 아무리 이리로 와보라고 해도 수영을 잘 못하는 필리핀인들은 요지부동 구명조끼를 입고 물에 떠 있기만 한다. “야, 다들 나오라 그래.” 기가 막혀 멍하니 바라만 보던 감독은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이 장면을 포기하고 수영을 잘하는 10여명만 데리고 내일 찍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우왕좌왕하던 필리핀 여인들은 배에 올랐고 현장을 떠났다. 바다는 이내 조용해졌고 전도연씨와 다른 해녀 2명이 등장하는 장면을 찍어갔다. 괜히 수십명을 동원하느라 아까운 돈과 시간만 낭비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 해가 지기 전까지 남은 시간이라도 잘 써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3월10일까지 촬영을 마칠 예정이던 제작진은 일정을 하루 늘리기로 결정했다. 어쩌면 처음부터 4박5일간 수중촬영을 모두 끝낸다고 생각한 게 무리일지 모른다. 이날 촬영은 저녁 6시까지 계속됐다. 필리핀 기상청 발표에 따르면 오후 4시부터 풍랑이 거세져 촬영팀은 그 전에 철수해야 한다고 했지만 기상청 발표는 틀렸다. 오후 4시를 넘어서자 바다는 훨씬 고요해졌다.

무사히 이날 촬영을 마친 촬영팀은 한결같이 “내일도 지금 날씨 같았으면” 하고 바랐다. 취재진이 떠나기로 한 3월10일, <인어공주> 제작진은 전도연과 박해일이 바다에서 함께 유영하는 장면을 찍을 예정이었고 그 촬영마저 연기되면 제작비나 제작일정에 상당한 타격을 입을 상황이었다. 이날 저녁노을이 지는 남국의 바다는 유난히 아름다웠다. 함께 배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박흥식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난 다른 거 없어요. 이 영화는 열심히 사는 여자를 보여주려는 거예요. 굉장히 생활력 강한 여자요. 전 부성에 대한 존경심 같은 건 전혀 없어요. 모성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뿐이거든요.” 그건 왜 이 고생을 하면서 <인어공주>를 찍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처럼 들렸다. 단순하지만 이 대답엔 진실이 들어있다. 결국 영화란 감독이 만나고 싶은 사람, 보고 싶은 풍경을 만드는 것이다. 그 영화가 관객의 사랑을 받든 평론가의 호평을 얻든 그건 다음 문제다. 선행될 것은 함께 만드는 사람을 설득해 그들의 자발성을 끌어내는 일이고 <인어공주>는 그 점에서 이미 9부능선을 넘었다. 이 영화는 올 5~6월경 세상과 만날 것이다. 박흥식 감독, 전도연, 박해일, 고두심 등 배우, 최영택 촬영기사, 박상훈 수중촬영기사 등 수많은 사람들이 꼭 보고 싶었던 인물, 연순을 우리는 그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인어공주> 수중촬영 전문 박상훈(35) 촬영기사

수중촬영 전문 스튜디오 필요합니다

-어떻게 수중촬영 전문 촬영기사가 됐나.

=4∼5년 전에 촬영기사 데뷔를 하자마자 부산예대 영화영상과 교수를 하게 됐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데다 물을 좋아했고 연구할 여유가 생기니까 뭔가 전문적인 영역을 개척하고 싶었다. 해양도시라는 부산의 이미지와 맞는 것 같아 수중촬영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현재는 스쿠버 다이빙팀과 촬영팀이 혼재된 아쿠아리스라는 회사에서 작업하고 있다. 국내에서 필름으로 수중촬영을 하는 팀이 4군데 있는데 우리는 수중촬영에서 배우 교육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편이다. 스쿠버팀을 따로 두고 있는 이유도 배우들에게 스쿠버 다이빙을 가르쳐야만 제대로 된 화면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영화들에서 수중촬영을 했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플라스틱 트리> <아홉살 인생> <오! 해피데이> <페이스> 등이다. CF로는 “당신이 버린 생활하수, 당신이 마십니다”라는 카피를 썼던 수자원공사 CF를 많은 사람이 기억하더라.

-국내 수중촬영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수중촬영 전문 스튜디오가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전문 스튜디오만 있으면 <인어공주>도 지금처럼 고생하지 않고 찍을 수 있을 거다. 2년 전에 LA에 갔다가 멕시코 국경 근처에 있는 폭스 바하 스튜디오를 방문한 적이 있다. 아무런 사전약속 없이 <타이타닉>을 찍은 장소가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차를 몰고 6시간 달렸다. 스튜디오 경비가 희한한 놈이다, 라는 눈으로 보는데 한국에서 온 수중촬영기사라고 소개하고 이곳을 보는 게 내 꿈이라고 사정해서 안에 들어가봤다. 마침 <마스터 앤드 커맨더: 위대한 정복자>를 찍고 있었는데 스튜디오가 어떻게 생겼나, 꼼꼼히 관찰하고 사진도 찍었다. 돌아와서 남도영상위원회와 부산영상위원회에 수중촬영 전문 스튜디오를 만들자고 건의했고 지금 논의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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