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육체적으로 힘든 걸 즐기는 스타일이라 괜찮다. 수영을 아주 잘하는 건 아니다. 영화 찍기 전에 2∼3주간 스킨스쿠버 교육을 받았다.
-TV에서 <인어공주> 포스터 찍는 장면 보니까 물을 많이 먹고 굉장히 고통스러워하던데 그런 장면 찍고 나면 기분이 어떤가.
=(웃음) 내 발등을 찍고 싶지 뭐. 그날 얼마나 물을 많이 먹었는지 촬영 끝나고 나서도 이틀 동안 코에서 물이 계속 나오더라.
-주요 장면을 우도에서 찍었는데 우도에서의 촬영은 어땠나.
=우도에서 찍을 때는 추위가 가장 힘들었다. 수영장에서 연습을 많이 했지만 진짜 바다는 또 다르다. 추위가 너무 심해서 발질이 안 되더라. 10월부터 우도에서 찍었는데 11월엔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바다에 들어갔다. 좀더 추워지기 전에 다 찍어야 한다고 서둘렀는데 결국 못 찍고 여기까지 오게 됐다.
-이번에 필리핀에서 찍는 분량은 사실 우도에서 3일간 찍었다가 결과가 안 좋아서 다시 찍는 것이라고 들었다. 억울하지 않나.
=속상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한다. 우도에서 찍을 때 아쉬운 점이 많았는데 더 좋은 그림이 나올 거 같다.
-<인어공주>를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시나리오가 좋았다. 읽으면서 시나리오가 너무 좋은데 하면 고생할 것은 훤히 보였다. 나도 나를 아니까 욕심을 내서 한다고 할 텐데 일단 하면 고생길이구나 그랬다. 내가 날 얼마나 피곤하게 만들지 보였으니까. 박흥식 감독과 두 번째 같이 하는 거라 감독님을 믿고 의지하고 싶었는데 의지는 무슨 의지? (웃음) 배우든 감독이든 각자 몫이 있는 거라 내 숙제를 대신 할 수는 없었다. 그냥 엄살을 부리고 싶었던 거지. 하지만 이렇게까지 힘들 줄은 생각 못했다.
-해녀로 나와 헤엄치는 장면도 힘들었겠지만 어머니와 딸로 1인2역을 하는 장면도 상당히 어려웠을 것 같다.
=한 화면에서 내가 2명 연기를 하는 거라 허공에 대고 연기를 했다. 어머니인 연순 분장을 하고 연기를 한 뒤 세팅한 그대로 두고 딸인 나영의 자리에서 연순의 말을 받는 식인데 작은 오차만 나도 부자연스런 면이 생기게 된다. 둘이 편지를 주고받는 장면이 있었는데 정확히 시선이 맞았을 때는 특별한 쾌감도 있더라.
-그간 출연한 영화와 <인어공주>를 비교하면 캐릭터가 어떻게 다른가.
=내 생각엔 <인어공주>는 전도연 연기의 종합편 같다는 느낌이다. 이 영화를 시작할 때는 에너지가 충만했지만 과연 <인어공주> 다음엔 어떤 영화를 해야 하나, 막연하고 <인어공주> 이후는 연기를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찍을 거 같다. 어머니 연순과 딸 나영 가운데 처음엔 연순한테만 정이 갔다. 나영을 찍을 때조차 연순이 보고 싶고 그리웠다. 나영은 좀 뒤늦게 다가온 인물이다.
-나이든 연순으로 고두심씨가 나오는데 고두심과 연기하는 건 어땠나.
=굉장히 좋은 분이다. 친근감 있고 내공이 대단하다. 단단한 게 굉장히 많은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단단한데 단단함 속에 부드러움이 있다. 한번도 이 사람처럼 돼야지 생각해본 적 없는데 고두심 선배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관객이 보는 바에 따라 다르다. 관객이 영화를 보고 자기 집에 돌아가서 결말을 만드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부모님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보는 거지. 나도 엄마 아빠 생각 많이 하면서 찍었다. 부모와 자식 관계는 어쩔 수 없는 반복이라고 생각한다. 당장 이 영화 찍으면서 부모님한테 잘해드려야지 하다가도 피곤한 상태로 집에 돌아갔는데 엄마가 말을 시키면 “아으, 좀 나가, 말 좀 시키지 마” 그런다. 엄마가 한달간 아프셔서 간호한 적이 있는데 그렇게 편찮으신 모습 보면 잘해드려야지 하다가 몸이 나으면 금방 까먹고 싸우고 화해하고. 아마 나영이 애를 낳으면, 자기가 부모가 되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박흥식 감독과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에 이어 두 번째인데 호흡이 잘 맞나.
=나랑 감독님이랑 성격이 많이 다르다. 난 직선적으로 좋은 것, 싫은 것 바로바로 얘기하는 편인데 감독님은 한참 돌려서 얘기한다. 두 번째 같이 하면서 익숙해진 것도 있지만 달라지지 않는 부분도 있다. 분명한 건 작품 선택하는 데 감독과의 친분을 우선에 둔 적은 없다. 내가 냉정한 편이라 시나리오가 첫째고 다른 건 그 다음 고려사항이다. 선택할 때는 굉장히 신중하게 하지만 일단 선택한 다음엔 다른 사람이 뭐라든 별로 신경 안 쓴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 느꼈던 처음 느낌, 연순과 나영에 대한 처음 생각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좋은 영화를 찍었다는 자신감은 있다. 흥행배우도 좋지만 믿음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 왜 그런 영화들 있지 않나. 누가 나오니까 볼 만하겠네, 하는. 전도연 나오면 볼 만하겠네, 그런 신뢰를 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 영화에 대해 내 책임을 다하고. 안 그러면 누가 쓰겠나.
-딜레마가 있을 거 같다. 배우로서 신뢰를 줄 만한 영화를 찍고 싶지만 그런 영화의 편수는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에서 여배우가 갖는 선택의 폭은 극히 제한적이다.
=무슨 선택을 하든 딜레마는 있다. 결국 내가 좋아서 하는 거고 내 만족도가 크기 때문에 하는 거다.
-지금 한국 영화계를 보면 여배우는 주로 코미디로 스타가 됐다.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김하늘, <가문의 영광>의 김정은, <몽정기>의 김선아 등이 그렇다. 하지만 전도연은 이런 유의 코미디와 거리가 멀어 보인다.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르고 같은 직업에서도 일하는 분야가 다 다른 거 아니겠나.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지만 내가 즐겁게 일하는 분야가 조금 다른 것 같다. 가끔 내가 일을 너무 사랑한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예전엔 이러다 안 되면 결혼이나 하자, 그랬다. 결혼을 하면 당연히 일은 안 하겠다는 거였는데 지금은 모르겠다. 현실도피를 위해 결혼할 생각도 별로 없고 오직 하나, 일만 생각한다. 남들이 재미있다고 해서 <스타크래프트>도 해보고 골프도 두달간 배워봤는데 별로 집중이 안 된다. 이만큼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또 있을까 싶다. 이런 생각 하는 걸 보면 나도 철들었다. (웃음)
-전도연의 이미지는 처음엔 어리고 귀엽다, 였다가 도발적이고 섹시하다, 로 넘어갔고 지금은 굉장히 열심히 하는 배우다, 그런 느낌이다.
=열심히 하긴 하는데 결과는 별로다 그런 건가. (웃음) 사실 열심히 한다. 굉장히 치열하게. 그렇다고 24시간 시나리오만 보고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열심히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마음이 즐거우면 한계를 넘어서는 부분이 생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