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이 날이 올 줄 알았다. 데뷔작 <탄환주자>에서 두발로 달렸고 <포스트맨 블루스>에서 자전거로 달렸으니 자연스레 자동차로 달릴 때쯤 되지 않았던가? 준법정신으로 똘똘 뭉친 아사쿠라의 자동차에 위법정신으로 무장한 3인조 은행강도가 올라탄다. 근데 이 강도들, 은행 턴 돈을 빼앗겨버렸단다. 돈가방을 찾기 위한 하룻밤의 드라이브를 통해 사부는 이들에게 돈 대신 꿈과 인생을 찾아준다. 포스트-기타노를 꿈꾸며 은행털이와 야쿠자를 등장시킨 것까지는 전작과 유사하지만 사부는 여기서 액셀러레이터를 좀더 밟는다. 제약회사에 다니는 아사쿠라의 두통을 어떤 약도 치유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과거로부터 유전되었기 때문이다. 벌판을 맴돌며 아사쿠라를 괴롭히는 사무라이와 군인들의 혼령은 그의 두통이 개인적인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결국 데스 마스크를 쓴 자신의 과거(혹은 역사)를 베어버린 뒤에야 그의 두통은 사라진다.
어깨에 힘이 들어간 감이 없잖아 있지만 오구리 고헤이나 구로사와 아키라적 설정으로 무게를 잡다가 프랭크 카프라적 결말로 미소를 만들어주는 감독의 발상은 여전히 재미있다. 엉겁결에 공연무대에 내밀린 시라이가 욕쟁이 로커가 되어버리는 장면은 여러 번 보고 싶을 정도로 후련하다. 저예산영화를 주로 만드는 감독답게 화질이나 사운드는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오히려 아나모픽이 지원된다는 것이 고마울 정도. 메이킹 영상과 배우 및 감독의 인터뷰가 짤막하게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