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권택식 장르영화의 ‘축제’를 보고 싶다
허문영 | 상반기에 작품을 낸 임권택, 홍상수, 김기덕, 삼인삼색 이야기로 넘어가자. <하류인생>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는 영화 자체로 감동이 없는 영화로 받아들였는데 딱 한번 감동이 마지막에 뜨는 자막이었다. “(태웅은) 1975년에 전업했다. 그의 인생이 맑아지는 조짐이 보였다.” 영화 속에서는 맑아지는 조짐이라곤 요만큼도 없고 서사는 파멸과정을 포섭할 수 없는 상황으로 영화를 몰고 간다. <취화선>부터 임권택 감독은 감정의 지속을 의식적으로 피해왔는데 이 영화는 피한 정도가 아니라 처음부터 감정의 지속이 이뤄질 수 없는 구조다. 각 시대의 시퀀스들이 전혀 정서적 연속성이 불가능하고 그래서 인물이 이 풍경의 절대 주인일 수 없는 방식으로 시퀀스를 구성했다. 모든 시퀀스를 병풍화의 풍경들처럼 느꼈고 그 풍경이 잔혹했다. 그렇게 느끼다 자막을 보는 순간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비로소 알았다. 이 영화는 정서조차도 인물조차도 이 시대를 말하는 데 적절하지 않아 황량한 풍경으로밖에 남겨둘 수밖에 없는 처참한 자기고백이나 자화상이다. 유일한 탈출구가 몇자 안 되는 자막 한마디에 포함됐다는 게 이 풍경을 더욱 구제할 수 없는 이미지로 느끼게 했다.
김소영 | 임 감독이 과거에 만든 액션영화에 계속 나타나는 ‘배신하는 양자(養子)의식’, 양자로 들어갔다가 그 집 딸과 결혼하고 다시 갈라서는 설정이 <하류인생>에도 나타난다. 이상한 것은 처리되지 않은 부분이다. 태웅의 아내가 구타를 당하고 유산한 듯 피가 흐르면서 남편을 찾아다니고 마침내 찾는데, 제대로 이야기되지 않고 금방 자막이 올라간다. 생명의 위협을 받는 굉장히 중요하고 위험한 순간인데 그 순간이 얘기되지 않고 자막 속에 포함된다. 또, 임권택 감독 영화로서는 굉장히 드물게 거슬리는 차용된 장면이 있다. 전개를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어항장면이 그 예다. 정말로 처리를 못하는 것, 처리 못하는 것 자체를 징후로 드러내는 것, 그 둘 모두가 이 영화에서 보이는 것 같다.
정성일 | 역사의 사건과 인물들의 세상살이가 병렬구조로 펼쳐지는 것은 <개벽> 이래 줄기차게 봐왔던 것이고, 세상의 때가 묻어가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망가져가는 테마를 다룬 점은 <창>이고, 몽땅 신인을 끌고 세트장 안에 들어간 점은 <장군의 아들>이다. 사실 어떤 점에선 임 감독의 90년대 이후 영화의 종합으로서의 상위개념- 좋다 나쁘다 개념이 아니라- 이 <취화선>이라면 하위개념이 <하류인생>이 아닐까 싶다. 제일 이상한 것은 1957년부터 1972년까지를 앞뒤 시간의 연속없이 토픽을 잘라내듯 찍은 점이었다. 테마와 상관없어도 시대와 묻어나는 걸 중요히 여겨온 임 감독으로서는 의외다. <효자동 이발사>가 왜 하필 그 지점에서 끝나야 하는지 의문스러운 것처럼, <하류인생>도 1972년 10월에 그 영화가 근대사의 트라우마와 만나는 것인데 심금을 울리는 마지막 자막이지만, 최악의 순간까지 놓고 희망과 기대를 거는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것이 왜 1972년 10월이어야 하는지, 왜 구체적인 연도가 들어가서 그런 시간을 다루어야 되는가에 대해서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1972년 10월은 아무 시간 아무 때가 아니다. 게다가 이 영화의 원제는 <사회적 동물>이었다. 임 감독 당신 말씀으론 ‘맑아진 조짐’으로 영화가 다 된 거라고 하시지만, 다른 기대가 있었다.
김소영 | <취화선>이 숭고한 죽음의 이야기였다면 <하류인생>은 굉장히 밑으로 내려갈 거라 기대했다. 맑아지는 영화를 보려한 게 아니었다. 도리어 충분히 내려가지 않는 것이, 인물이 더러움을 매니지하면서 사는 것이 의외였다. 타락도 상승도 아니고 그러면서 마지막을 맑아짐에 대한 기대로 마무리해서 이 역사와 맞물린 서사를 처리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김용옥, 송길한 등 전문작가가 붙었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의 차이로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허문영 | 맑아질 조짐을 보인 것이 1975년이라고 자막이 뜰 때 묘한 느낌은, 1975년이 특정 역사적 사건과 결부되지 않은 연대라 더 그런 것 같다. 영화가 끝나고도 3년이나 지나서야, 그것도 조짐이라는 말로, 그것도 자막으로밖에 다룰 수 없는, 이상하게 애매한 거리를 가진 시점이 주는 쓸쓸함이 있었다. 그래서 그 자체의 의미를 더 묻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방식을 선택한 사람이 앞에서 매끄러운 서사를 선보였다면 맞지 않다는 생각이다. 결국 어떤 주체가 이끌어가는 서사가 불가능한 단편들을 말하고 나서야 마지막 자막이 의미있게 느껴진 거다.
정성일 | 임감독의 99번째 영화를 보고나니 100번째 영화에서 장르영화로 다시 한번 뛰어들면 어떨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됐다. <하류인생>은 많은 장면 안에서 예전에 해냈던 장르영화들을 신 단위로 흘리고 있다고 느꼈다. 그것도 얼마 전이 아니라 30년 전에 해낸 것을 이젠 마주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류인생>의 이상한 긴장감은 그걸 마주보려는 용기와 밀쳐내려는 의지 사이에서의 망설임 같다. <취화선>은 세트 안과 세트 밖, 양수리 세트와 장승업의 유랑길들이 매끄럽게 연결돼서 조선시대 양수리 세트장이 조선 전체로 확장된 듯한 느낌이었는데, <하류인생>은 세트 안팎이 너무 자명하게 구별되고 거꾸로 세트 안으로 축소되는 느낌을 받았고 그건 어쩌면 김 선생이 지적한 세트 안으로의 회귀와 멀리 있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100편을 맞이하면서 한국영화의 마스터로서 한국영화, 말하자면 60년대 영화의 영화적 기술을 체득하고 있는 것이 이제 임 감독 한분 남았다면 그것을 복원시키고 전수시켜야 할 자리에 있다는 생각이다.
허문영 | 나는 장르적인 것과, 한국인의 뿌리를 알기 위해서는 장르적인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임권택식 드라마가 모여서 벌이는, 자기 영화를 다 끌어안는 ‘축제’ 같은 것을 보여주신다면 관객으로서 즐겁겠다. #@009#@김소영 70년대 하다가 뜻을 못 이룬 도착적이고 지독한, 그러니까 더 하류적인 <애꾸눈 박> 같은 영화를 만드셨으면 좋겠다. 그것을 꼭 100번째에 할 필요는 없지만. 해결될 수 없이 도착적인 영화, 하길종 감독을 창백하게 만든 영화 같은 영화를 보고 싶다.
정성일 | <하류인생> 대사에 <애꾸눈 박>도 등장한다. (웃음)
<씨네21> 세 편집위원들은 1천만 관객 동원의 태풍에서부터, 한국영화 두편을 경쟁부문에 초대한 칸의 선택에 대한 우려까지 끝없이 묻고 대답하고 또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