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에 대한 괜한 걱정 세 가지 [1]
2004-06-15
글 : 김현정 (객원기자)

런던에서 미리 만난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가 5월25일 런던에서 장막을 걷어냈다. 오래전부터 가장 무섭고 어두운 영화가 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던 <해리 포터> 세 번째 영화는 그 소문이 근거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했지만, 다치기 쉬운 십대의 감성과 부모 잃은 소년의 슬픔 또한 품고 있었다. 새로운 감독 알폰소 쿠아론과 훌쩍 커버린 세명의 소년 소녀, 조금은 걱정하면서 낯선 세계로 들어온 신참 어른배우들을 런던에서 만났다.

편집자

해리 포터는 방학을 좋아하지 않는 이 세상 유일한 소년이다. 그는 방학이 되면 자신을 숨겨야 할 흉터로 여기는 더즐리 가족과 지내야 하고, 진짜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친구들과 편지 한장 마음대로 주고받을 수 없다. 그러나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는 개학 즈음 시작했던 전작들보다 좀더 서둘러 모험의 길로 뛰어든다. 이모부의 폭언을 침착하게 견디던 꼬마 해리가 열세살이 되었기 때문이다. 해리는 죽은 부모를 모욕하는 더즐리 이모부의 여동생을 풍선처럼 부풀려서 하늘 높이 떠나보내고, 분노로 씩씩거리면서 짐을 싸서 뛰쳐나온다. 감독 알폰소 쿠아론이 “성인이 되기 시작하는, 자신 안에 놓여 있는 두려움을 직시하게 되는 나이”라고 말하는 열세살.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는 전설의 뱀 바실리스크나 거대한 거미 아라고그는 없지만, 어떤 괴물보다도 거칠게 날뛰는 십대 문턱의 불안을 호그와트의 그늘로 끌어들이는 영화다. 그 때문에 인터넷과 극장에 내걸린 <해리 포터> 세 번째 영화 예고편의 아이들은 “사악한 무언가가 다가온다”고 소리 높여 노래하고 있다.

5월25일 저녁 런던 피카딜리 광장의 조그만 극장 UGC시네마에서 열린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기자시사회는 달라진 영화 분위기처럼 조용하게 시작됐다. 2년 전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 시사회장 앞에서 기자들을 맞아주었다는, 해리와 론이 망가뜨린 파란 포드 자동차는 간데없고, ‘아즈카반의 죄수’ 시리우스 블랙이 웃고 있는 현상수배 포스터도 한장 없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인터뷰가 진행된 글래드스턴 도서관은 덤블도어 교장의 방을 몇배로 넓혀놓은 것처럼 오래된 책장과 벽난로, 호그와트 기숙사처럼 현기증이 이는 계단으로 마음을 달래주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제작진은 한해를 거르고 찾아온 <해리 포터> 세 번째 영화를 기다리는 관객의 궁금증 또한 달래줄 것이었다.

하나, 소설의 내용은 모두 어디로?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는 상영시간이 2시간15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역대 <해리 포터> 시리즈 중에서 가장 짧은 이 영화는 1편과 2편보다 분량이 많은 원작을 소화하기 위해 스토리의 많은 부분을 덜어내고 구성을 약간 바꿔야만 했다. 쿠아론은 “소설을 문자 그대로 옮기기보다는 그 정신을 가져오기로 마음먹었다”는 말로 선택과 포기의 기준을 설명했다.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에서 해리는 아버지와 가장 친했던 두 친구를 만나게 된다. 새로운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로 부임한 리무스 루핀과 해리의 부모가 숨어 있는 곳을 사악한 마법사 볼드모트에게 알려주었던 시리우스 블랙이 그들이다. 해리는 그 죄로 수감된 시리우스가 누구도 탈출한 적이 없는 감옥 아즈카반에서 탈옥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가 호그와트에 숨어들었을지 모른다는 사실 역시 알게 된다. 해리는 부모에 이어 자신마저 죽이려고 하는 시리우스에게 복수를 맹세한다.

이 세 번째 이야기의 절정을 이루는 전투는 아이들과 괴물 사이의 싸움이 아니다.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는 옛 친구들이 12년 전의 음모를 파헤치는 말싸움과 해리가 그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싸움을 3학년 시절 가장 기억할 만한 사건으로 배치했다. 만만치 않은 시간을 끄는 그 전투 때문에 액션은 줄어들었고, 아쉽게도 세번이어야 할 퀴디치 경기는 단 한번밖에 치르지 못하게 됐다. 해리가 생일선물로 받게 될 최신형 빗자루 파이어볼트가 출전 기회를 놓친 것은 물론이다. 영혼을 빨아들이는 아즈카반의 간수 디멘터도 원작과는 달라졌다. 해리는 폭우 속에서 벌어진 래번클로와의 첫 번째 퀴디치 경기 도중 디멘터들이 나타나 그 냉기 때문에 경기장 바닥으로 추락하게 된다. 원작은 디멘터들이 경기장 한복판에 나타났다고 썼지만, 영화에서 그들은 빗자루가 날아다니는 공중을 곧바로 습격한다. 쿠아론은 십대 아이들의 에너지가 끓어오르는 퀴디치 경기보다는 내면의 공포에 형체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스펙터클을 만든 것이다. 이처럼 정서가 실린 스펙터클은 해리가 말과 새를 합한 듯한 히포그리프 벅빅을 타고 비행하는, 원작보다 훨씬 길어진 장면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해리는 호수 수면을 발로 차며 날아오르는 벅빅 위에서 <타이타닉>처럼 두팔을 벌리고 자유를 느낀다.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는 이 밖에도 마법사 마을 호그스미드의 장난감 가게처럼 재미있는 구경거리, 연례행사가 된 다이애건 앨리에서의 신학기 쇼핑, 시리우스가 찢은 뚱보 여인 그림 대신 그리핀도르 기숙사를 지키게 된 정신이상 기사 초상화 캐도간 경 등을 책장 안에 남겨두었다. 그러나 보라색 구조 버스 운전석에서 소리를 질러대는 해골 안내인처럼 귀여운 액세서리 노릇을 하는 배려도 발견할 수 있다. 쿠아론은 호그와트 연회장에서 건반 위를 뛰어다니며 연주하는 꼬마 요정도 만들고 싶었지만, 원작자 조앤 K. 롤링이 필사적으로 반대해 포기했다고 한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 인터뷰

“내가 찾아낸 건 성장하는 십대들의 이야기다”

알폰소 쿠아론은 “너무도 지난한 과정이었기 때문에 엄두가 나지 않아” <해리 포터와 불의 잔>까지는 연출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원하는 영화를 만들었다면서 즐거워했고, 에너지로 가득 찬 제작과정에 함께 할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고도 했다. 스페인 기자와 모국어로 유쾌한 인사를 나눈 그는 잠시도 쉬지 않고 자신이 만든 매우 특별한 영화에 관해 들려주었다.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를 연출하기로 결심한 까닭은 무엇인가.

처음엔 회의적이었다. 오래전부터 호흡을 맞춰온 제작진과 배우와 세트를 이어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뒤늦게 본 소설과 영화는 매우 흥미로웠고,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나처럼 멕시코 감독인 친구 기예르모 델 토로(<블레이드2> <헬보이>)도 이 기회를 꼭 받아들이라고 충고했다. 그는 개인적인 영화를 만들고자 해선 안 되고 시리즈에 충실해야 한다는 충고도 들려주었다. 사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완벽하게 작동되고 있는, 그래서 좋은 재료를 집어넣기만 하면 되는 기계와도 같았다. 그럼에도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내게 주어진 창조적인 영역은 무엇인가라는 문제는 남아 있었다. 내가 찾아낸 건 성장하는 십대들의 이야기였다.

그 점은 당신의 전작인 <소공녀> <이 투 마마>와도 비슷하다.

<이 투 마마>는 내가 이 영화를 연출할 수 있게 해준 결정적인 원인이기도 했다. <이 투 마마>는, 성인이 되어가는 십대들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좀더 나중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처럼 정체성을 찾는 젊은이들의 여행을 담고 있다.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는 또한 해리가 남성적인 에너지와 힘을 찾아내는 매혹적인 순간을 포착하는 영화다. 해리는 시리우스와 그 자신을 구해준 에너지가 아버지의 것이라고 믿지만, 사실은 자신에게 속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당신은 반항적인 사람이다.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를 만들면서도 여전히 반항적이었는가.

이 영화를 연출했다는 자체가 반항적인 게 아닐까? (웃음) 나는 <해리 포터> 시리즈를 본 적도 없으면서 값싼 프랜차이즈로 취급했다. 그러나 보고 나선 관객을 염두에 두지 않고 영화를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인디펜던트나 예술영화에 대해 일종의 순수주의를 고집한다. 그러나 나는 누구의 돈으로 영화를 만드는가보다 어떤 정신으로 만드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래도 어려운 점이 많았을 텐데.

나는 이 영화를 만들면서 폭넓은 자유를 누렸다. 그러나 오랜 기간 스케줄에 맞춰 촬영을 하고, 스튜디오와 협상을 하는 건 쉽지 않았다.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는 엄청난 제작비가 들어가는 블록버스터다. 내가 창조적인 결정을 하나 내리면, 그것은 곧 재정적인 문제와 직결되는 것이다. 이런 영화에선 그 두 영역은 떨어질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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