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멜로박약 장진의 <아는 여자> 만들기
2004-06-22
글 : 장진 (영화감독)
非로맨스 배우와 함께 로맨틱 코미디 <아는 여자>를 만들다

장진 감독이 사랑영화를 만들었다. 시나리오를 받은 지 16시간 만에 출연을 결정한 정재영과 시나리오를 97일 동안이나 읽은 이나영이 장진의 사랑 이야기 <아는 여자>의 주인공들이다. 장진 감독은 잘 모르는 여자 이나영과 너무 많이 아는 남자 정재영을 어떻게 이연과 치성으로 바꾸어놓았을까? “사랑이란 말이야…”라고 노력했던 감독이 그 정성도 몰라주고 딴소리만 했던 두 배우를 추억하며 <아는 여자>와 똑 닮은 제작기를 보내왔다. 편집자

멜러영화 일발 ‘장진’!

작년 여름… 난 말도 안 되는 짓을 했다. 여기서 말하는 ‘말도 안 되는 짓’이란 내가 누군가에게 “나 오늘 무슨 짓을 했어”라고 얘기했을 때 그 누군가가 “말도 안 돼” 혹은 “너 무슨 일 있니?” 그도 아니면 “미쳤구나”라고 반문하는 경우다. 내가 작년 여름에 한 그 말도 안 되는 짓의 대략은 이렇다.

장진 - 나… 이번에 멜로영화를 찍으려고 해.
누군가1 - 하하하하… 말도 안 돼.
장진 - 이나영씨한테 시나리오 이미 줬는데….
누군가2 - (농담이 아니란 걸 안 듯이) …너 무슨 일 있니?
장진 - 남자 주인공은… (약간 망설이다가) …정재영이야.
누군가3 - >(차마 장진을 한대 쥐어박지는 못하고) …미쳤구나.

어떤 영화인이 이렇게 말했다. 장진은 유명한 영화감독이다. 유명한 작가고 유명한 연극 연출가이다. 장진이 유명한 것은 그의 작품세계나 스타일의 독창성… 시선… 뭐 이런 따위 때문이 아니다. 장진은 여자 이야기를 못 쓰기로 유명한 감독이고 멜로드라마 같은 장르는 넘볼 수도 없을 만큼 소질없는 감독으로 유명하다(그렇다고 남성영화를 잘 만드는 것도 아니지만). 때문에 대부분의 여배우들은 그와 작품하는 것을 상당히 꺼려하며 행여 한다 하더라도 일종의 모험으로 생각하곤 한다. 그나마 다행은 그도 그것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위의 글 첫줄에 나오는 짓을 해버린 것이다. 나와 이나영… 나와 정재영… 정재영과 이나영의 이 기괴한 조합은 작년 여름 무더운 어느 날인가 시작되고 말았다.

이나영, <아는 여자>를 만나다

내가 알고 있던 이나영이란 배우에 대해서 먼저 얘기하겠다. 음… 없다… 진짜로 그러네. 생각해보니 뭐 그리 아는 것이 말할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왜 시나리오를 쓰는 동안 그녀가 자꾸 생각났을까? 난 왜 내가 쓴 대사에 그녀의 목소리와 환영을 그려넣었을까? 사실 전지현도 몇번은 그 환영 속에 넣어본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나영이 압도적으로 많다. 하지만 맹세코 김하늘은 생각해본 적 없다… 아, 얘기가 이상한 쪽으로 간다. 여하튼 이나영이란 배우의 캐스팅에 관해선 그 어느 누구의 이견없이 가장 훌륭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건 내 얘기다. 이나영이란 배우가 장진이란 감독의 멜로영화를 선택하기에는 주위에 온갖 이견들투성이었을 것이다. “말도 안 돼”, “너 무슨 일 있니?”, “미쳤구나” 따위의 우려들 말이다…. 왜냐하면 6월12일에 보낸 80쪽짜리 시나리오에 대한 결정을 97일이 지난 9월17일에야 하는 배우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에서야 얘기지만 100일까지만 기다려보고 그때까지도 결정을 안 했더라면 다 포기하고 이나영 안티 사이트나 만들어서 시솝으로 활동하려 했다.

어쨌거나 이나영이란 배우는 장진의 시나리오를 97일 동안 읽고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일요일은 쉬었을 것이고 매일 한장씩 읽어내려간 것이 틀림없으리라…. 물론 시나리오준 지 16시간 만에 하겠다고 결정을 내린 정재영보다는 조금 긴 시간이었지만 그녀는 나의 글을 97일 동안 읽어준 유일한 배우다. 참고로 그 시나리오를 10일 만에 썼다는 얘긴 아직 그녀에게 하지 않았다.

정재영, 그도 <아는 여자>를 만나다

아직도 내가 정재영에게 미안한 것은 내가 그에게 시나리오를 줄 때 내 얼굴이 상당히 피곤해 있었다는 것이고 그가 내게 물어본 “왜 그렇게 피곤해 보여요?”란 질문에 “아, 배우 캐스팅이 안 돼서 너무 힘들다”란 푸념을 했다는 것이다.

정재영은 자존심 강한 배우이고 자기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있는 배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명의 배우들에게 제안하다 결국 자기한테 온 시나리오를 흔쾌히 결정한 이유는 살아생전 자기가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을 몇번이나 할수 있을까란 불안이 작용했을 것이다. 시나리오를 준 그 다음날 그는 하고 싶다는 의사 표현을 했다. 의외로 수줍은 성격의 정재영은 좋다란 의사 표시도 수줍어서인지 약간은 암호와도 같이 표현해준다.

내가 전화를 해서 “어땠니? 읽어봤어?”라고 물어보았을 때 그가 내게 한 말, “네?… 네?… 어, 잘 안 들리는데… 전화가 왜 이러지… 내가 다시 걸게요.” 이런 식이다. 장진, 이나영, 정재영… 최강의 드림팀? 드림팀? 이게 무슨 말이냐?

멜로라곤 손톱만큼의 소질도 갖고 있지 않은 감독과 도저히 어울리는 구석이라곤 눈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두 남녀 주인공의 만남인데…. 그 무엇이 최강이란 말이냐? 누군가 이렇게 물어본다면 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처음 보는 이상한 멜로를 보여줄게.” 다행히 아무도 위의 질문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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