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멜로박약 장진의 <아는 여자> 만들기 -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2004-06-22
글 : 장진 (영화감독)

우린 한달가량의 준비 기간과 3개월 동안의 촬영을 했다. 멜로드라마를 찍으면서 가장 신기했던 것은 만들어져 나가는 과정을 편집하며 보고 있노라면 어느 남녀가 점점… 점점… 가까워지고… 서로에 대해 알게 되고… 그것이 사랑일까 추측하게 되고… 그러다가 손을 잡고 사랑하게 되는 순간을 엿보듯이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배우들에게 질투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아는 여자>와 같이 즐거운 로맨스영화 일때는 더욱 그렇다. 화면 속의 그 둘이 너무 예쁘고 유쾌해서 그런 만남을 꿈꾸다가 그 남녀를 질투하게 된다. 정신병자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보다보면 그렇게 된다. 그것은 관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스크린에서 만들어놓은 로맨스에 자신들 모두가 주인공이 되고 싶은 어느 순간들에… 관객은 스크린 속 인물들을 사랑하기도 하지만 샘을 낼 수 도 있는 것이다.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멜로드라마, 특히 우리 영화와 같은 로맨틱코미디를 할 땐 최대한 배우를 행복하고 즐겁게 만들어줘야 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 배우가 즐겁게 카메라 앞에 서 있을 때 그 행복한 심정에서 닮고 싶은 로맨스가 만들어질 수 있음을 이제야 알겠다.

힘들고 고생스러운 촬영과 후반작업을 끝마치고 배우들에겐 칭찬보다 감사보다 사과를 먼저 하고 싶다. 정재영은 나의 질책 때문에 기가 죽은 적도 있고 내 편협한 독선 때문에 맘상처도 입었을 것이다.

이나영 역시, 내 경솔한 말이나 행동 때문에 속상해서 울기도 했고 자신에게 중요한 것들에 대한 내 가벼운 판단 때문에 실망했을 때도 많을 것이다.

지금 이 시간… 두 배우에게 사과드립니다.

“재영아, 너 머리 크게 나오는 거 뻔히 알면서도 널 카메라 앞으로 자꾸 오게 한 거 내 독선이고 고집이었어. 미안해… 하지만 나중에 명절 때나 텔레비전에서 보면 그렇게 크게 안 보일 거야… 아무튼 미안하다.”

“그리고 나영씨, 나영씨 의견 한번도 귀담아 듣지 않고 식사 메뉴 정한 거 미안해요… 그렇다고 내가 좋아하는 거만 시킨 건 아니었어요… 해산물 못 먹는 거 몰랐어요… 그리고 김밥 종류 나열할 때 내가 조용히 하라고 소리친 거 미안해요. 하지만 속으로 놀랐어요. 그렇게 많은 김밥 종류를 달달 외우고 있을 줄은… 얘기하다보니 나영씨는 대부분 먹는 거네… 미안해요 맘에 담아두지 말아요.”

“어땠어? 재미있어? 이상한 데는 없어?”

이나영은 내게 말했다. “내가 이 작품을 하게 된 것은… 또 하는 동안엔 감독님을 믿는 것밖엔 없었다.” (그렇다고 내게 이런 식으로 반말을 했다는 것은 아니다.)

정재영도 말했었다. “난 그냥 장진 선배님 코미디가 좋아서 한다”고….처음으로 완성된 영화를 보는 자리에서 난 그 둘의 표정을 상상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그 둘은 내게 무슨 말을 할까, 과연 이 영화에 대해 어떤 아쉬움과 후회가 생겨날까? 물론 보람도 어쩌면 느낄 수 있겠지… .

그들은 내가 그려놓은 이야기에 자신들의 숨을 불어넣었다. 난 그것을 다듬고 조합했고 그들은 그 영화를 본다. 그들은 멋진 로맨스를 만들었고 유쾌한 코미디의 주인공이었다. 손 한번 안 잡는 멜로드라마에 걸쭉한 사랑을 즈려 밟고 그들은 나와 함께 가을 겨울 그 사이를 지나왔다. 그리고 이젠 그 둘이 우리의 영화를 본다. 그 둘의 가족들 친구들도 우리의 영화를 본다. 이나영은 아, 장진 코미디가 이런 거구나라고 느낄 수도 있고 정재영은 전혀 다른 멜로를 만들겠다더니 이거였구나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

나만의 고유한(?) 긴장 속에 우리의 영화 첫 시사가 끝나고 난 그 둘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장진 - 어땠어? 재미있어? 이상한 데는 없어?
이나영 - 극장이 왜 이리 추워요?
정재영 - 그러게… 에어컨 무지 세게 나오네….
장진 - 어 … 그래?… 근데 영화는 뭐 이상한 거 없었어?
이나영 - 마지막 장면요….
장진 - 어… 그래 마지막 장면… 뭐?
이나영 - 나 바지가 너무 큰 거 같지 않아요?
정재영 - 난 내 머리가 너무 크게 나온 거 같아… 앞머리 좀 내릴걸… 하긴 짧아서 내릴 게 없구나….
장진 ………

이나영 정재영 장진 이 영화처럼 모두 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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