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비주얼 롤러코스터 <스파이더 맨2> [2] - 감독 샘 레이미 인터뷰
2004-06-29
글 : 옥혜령 (LA 통신원)
감독 샘 레이미 인터뷰

스펙터클보다는 ‘이야기’와 ‘캐릭터’

대개의 경우 인터뷰를 하다보면 감독들은 지나치게 말이 없거나 혹은 지나치게 말이 많다. <이블 데드> 등 B급 감수성을 가진 영화로 인정받아온 셈 레이미 감독의 이력을 생각할 때, 괴짜일지도 모른다는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어떤 질문을 해도 조리있는 에세이형으로 대답하는 모범생형이라고 해야 하나. 넥타이까지 맨 양복 정장을 입고 등장한 감독은 처음이었다는 점도 덧붙인다.

-2편 제작의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나.

=영화의 모든 부분이 나름대로의 어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어떤 부분이 가장 어려웠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영화제작의 단계별로 특정한 어려움이 있다고 말하는 게 낫겠다. 특별히, 사전제작의 경우 방대한 원작에서 영화의 스토리라인을 뽑아내는 거였다. 관객이 공감을 느끼고 몰입할 만한 주제를 정하고, 그에 맞는 사건과 인물의 전개 방향을 정하는 것 등. 기술적인 면에서는 아무래도 닥터 옥토퍼스를 어떻게 그려낼지가 문제였다. 뻗어나온 기계 문어발을 모형으로 처리할까, 컴퓨터그래픽으로 처리할까, 다른 인물들과의 인터액션은 어떤 식으로 조정할까 등 여러 가지 고민이 많았다. 여러 가지 문어발 디자인을 해봤는데 실제 모형은 몰리나가 직접 움직이기에는 너무 무거울 것 같았고, 완전히 그래픽만으로 만들기에는 실재 같은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만들어내기에 어려워 보였다. 결국 의상디자인, 특수효과 등 여러 파트의 스탭들과 의논을 거친 끝에 지금과 같은 문어발로 결정을 내렸다.

-1편의 성공이 2편을 제작할 때 부담이 되지는 않았나.

=1편의 기대 이상의 성공이 큰 부담이 된 건 사실이다. 곰곰이 생각해볼 때 흥행 성공이 극장으로 몰려간 마블 코믹스의 팬들 덕분이라는 사실이 감독으로서는 그다지 신나는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들이 2편에 거는 기대가 걱정스러웠다. 그러다 결국 이런 고민이 생산적이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어차피 나는 돈을 많이 버는 영화를 만드는 법은 모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 하면 좋은 영화를 만들까 고민하는 것뿐이다. 영화를 보고 오랫동안 관객에게 남을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그건 스펙터클이나 스케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큰 스케일, 더 화려한 액션, 더 멋진 스펙터클보다는 관객이 사랑하는 ‘캐릭터’를 생생하게 묘사하겠다고 결심했다. 피터 파커의 내적 갈등이나 메리 제인에게 느끼는 사랑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내가 생각한 대로 인물이 제대로 그려졌고, 관객이 피터의 고민과 감정에 공감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계속 <스파이더 맨> 속편들을 제작할 예정인가.

=지금 3편을 작업 중인데 그 이후는 어떻게 될지 모르다. 사실 1편을 시작할 때 2편은 다른 감독이 하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1편을 끝낼 쯤 영화의 캐릭터들이 너무나 좋아졌다. 이들에게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라는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일단 내가 캐릭터들을 완전히 이해했고, 앞으로의 전개가 궁금해 참을 수 없게 된 이상 속편은 내가 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많은 영화를 만들면서, 캐릭터를 100% 이해하지 못하고 작업한 경우도 있었다. 내 경우에 인물이 이해가 되기 전에는 어떻게 영화를 만들어야 할지 확신이 안 선다. 그런데 <스파이더 맨>의 경우에는 인물을 완전히 파악했다는 이점이 있고, 2편을 만들면서 더 많은 마블 코믹스 원작을 보고 캐릭터들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2편을 시작할 때보다 휠씬 더 지금은 3편을 만들고 싶다. 만약 3편을 만들 때 그저 흥미로운 작업이다 정도로만 느낀다면, 분명히 거기서 그만둘 거다.

-영웅은 각자 그 시대에 걸맞은 의미가 있게 마련이라면, 40년 전에 태어난 스파이더 맨이 오늘날의 관객에게는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혹시 스파이더 맨을 재해석하려는 시도는 없었나. 예를 들어 9·11 테러 이후의 상황을 고려한다든지.

=9·11 테러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어느 때보다 사회가 긍정적인 롤모델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했다. <스파이더 맨>은 영웅의 스토리니까 책임감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싸우는 인물을 그려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정의를 위해 개인적인 것을 희생하지만, 만족하고 살 수 있는 인물. 그런 의미에서 스파이더 맨은 2편에서 좀더 영웅적이 됐다.

-1편의 악당, 그린 고블린과 비교할 때 닥터 옥토퍼스는 왠지 그다지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2편에서는 피터 파커의 여정이 좀더 중요했다. 내가 보기에는 이것이 스파이더 맨을 다른 슈퍼히어로들과 결정적으로 차별짓는 ‘이야기’다. 그래서 2편의 진정한 갈등은 피터의 ‘내면적’ 갈등이 되기를 원했다. ‘책임감 있는 청년’으로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깨달아가는 피터의 여정 말이다. 피터의 고민은 그런 삶을 위해 과연 무엇을 희생해야 할까라는 것인데, 사실 이 질문은 영화에서처럼 드라마틱하지는 않지만 우리 모두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사소한 것일지언정 어떤 선행도 포기해야 하는 대가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휠씬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것이 모든 영웅 이야기가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라고 생각한다. 관객이 동일시하는 주인공이 어떤 역경에 처해도 용기와 자긍심으로 올바른 결정을 내리고 그것을 실행할 때, 관객은 각자의 생활에서 이러한 영웅의 모습을 반영해 생각해보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닥터 옥토퍼스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했다. 내 생각에 닥터 옥토퍼스가 악당인 이유는 그가 끔찍한 만행을 저질러서가 아니라 잘못된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즉, 타인에 대한 책임감보다 개인적인 성취를 중시하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과학자 옥타비어스가 닥터 옥토퍼스가 된 것이다.

-1편에 비해 2편이 조금 더 폭력적인 장면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이상하게도 묘사는 얌전해서 한 방울의 피도 튀지 않는다.

=1편보다 폭력적인 건 사실이다. 피가 나오지 않는 건 관객에게 혐오감을 주고 싶지는 않아서이다. 병원신에서 보이듯이 닥터 옥토퍼스의 문어발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를 보여주는 것이 목표였으니까. 닥터 옥토퍼스의 잔인함과 무시무시함은 관객이 스파이더 맨의 등장을 기다리게 하는 정도에서 그려지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박스오피스의 성공이 중요한 할리우드의 메이저 스튜디어에서 일하는 경험이 어떤가.

=모두들 박스오피스를 이야기하는데, 제작사가 만족할 만한 성공을 한다면 좋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게 내가 생각하는 영화의 성공과는 그다지 상관이 없다. 지난 20년 동안 박스오피스의 성공과 거리가 먼 영화를 만들어온 나로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그러지 않았더라면 매일 얼마나 비참했겠는가. (웃음) 그래서 1편이 엄청난 성공을 했을 때, 사실 그것도 문제였다. 드러내놓고 성공을 즐길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하도 오랫동안 박스오피스 성공 같은 건 문제가 아니라고 말해왔는데, 갑자기 그게 ‘중요하네’라고 말을 바꿀 수는 없었으니까.

-막간을 이용해 ‘작은 영화’를 만들 생각은 없나.

=괜찮은 시나리오만 있으면 작은 영화라도 상관이 없다. 그런데 <스파이더 맨>은 나에게 상당히 독특한 기회를 제공했다. 즉, 스케일 큰 액션영화 장르 안에서 나의 관심사인 인간적인 드라마를 만드는 게 가능하다. 모순적이기는 하지만, 블록버스터 안에서 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므로 지금까지 <스파이더 맨> 작업은 상당히 만족스럽다. 지금 당장 블록버스터에 질려서 작은 영화로 달려가야겠다는 마음은 없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