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영화평론가 정성일, 귀여니를 만나다 - 인터뷰 지상중계 [2]
2004-08-03
글 : 김혜리

힘되는 네티즌(^^v), 무서운 네티즌(-_-;;)

정성일 l 불편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 네편 다 이야기 전체를 놓고 보면 이야기 균형감각은 참 불균질해요. 하지만 귀여니 최대의 장점은 심금을 울리는 상황을 잘 만들어요. ‘절대’ 명장면이라고 할까?

귀여니 l 구성 면에서 미약한 걸 알아요. 국어성적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구요. (ㅜ.ㅜ) 글을 많이 쓴 것도 아니고, 쓸 때에도 몇 차례씩 탈고해서 올린 글도 아니었어요. 그냥 즉석에서 자판에 손 가는 대로 쓰는 스타일이거든요.

정성일 l 한번 쓰면 안 고쳐요? (@@)

귀여니 l 맞춤법은 고치지만 내용 면에서는 크게 바뀌는 건 없는 거 같아요. 상황들은 어려서부터 머릿속으로 아빠 차 타고 가면서 혼자 있는 시간에 상상하는 그런 애절한 상황을 그린 거예요. 그걸 소설 속에 넣을 때는 훨씬 수월했죠. (흠흠!!) 처음 생각한 게 아니라 어릴 때부터 차곡차곡 머릿속에 쌓아놓은 것들이니까.

정성일 l 귀여니 소설은 모두 온라인 연재를 한 거잖아요. 쓰다보니까 마지막 엔딩이 바뀌진 않아요?

귀여니 l 엔딩 생각해놓고 쓴 게 <내 남자친구에게>밖에 없어요. 그날그날 이야기를 만들었기 때문에 바뀌거나, 같고를 말씀드릴 수 없어요.

정성일 l 그럼 그 엔딩까지 가는 과정은, 자신의 결정과 네티즌 독자들의 반응, 양쪽의 갈등 속에서 어떻게 결정을 했어요?

귀여니 l “누가 멋있어요!” 하면 그 캐릭터 분량을 늘리긴 해요. 하지만 “누굴 죽이지 말아주세요”, “누구랑 누구를 헤어지게 하지 말아주세요” 하면 그럴수록 속에서는 “그래 죽여야겠다”, “헤어지게 해야겠다”는 욕망이 막 들끓어요. (@@) 누구나 그렇지 않나? (누구나 그러지는 않지…ㅠ.ㅠ)

정성일 l 그렇다면 <늑대의 유혹>에서 “태성이를 살려주세요!”라면 어떻게 할 참이었어요?

귀여니 l 태성이가 죽을 것처럼 하고 (소설이) 끊겨요. 난리가 났어요. 일단 살렸죠. 어차피 살릴 의도였고. 그리고 독자들이 안심하고 있을 때, 그때 죽여버렸어요. 마음놓고 있다가 충격이 컸던 거예요. 제 자신이 그걸 즐기는 것 같아요.

정성일 l 네티즌이란 귀여니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팬들도 있지만, 안티 사이트도 있잖아요.

귀여니 l 인터넷 연재 때는 힘되는 네티즌뿐이었는데, 소설을 마치고 제 이름 귀여니가 수면 위로 딱 떠올랐을 때 무서운 네티즌들이 등장했어요. (@@)

정성일 l 많이 울었어요?

귀여니 l 한달이면 하루, 이틀을 다 몰아서 울어버리고 깨끗하게 잊어요. 제 합성사진보고 낄낄대고 웃고 그래요.

정성일 l 상당히 많은 부분을 자신이나 친구들의 경험에서 빌려오고 인용들이 있는 것 같은데 그럼에도 밝혀진 가족관계만으로 따지면 신기하게 의도적으로 직접 관계되는 걸 피해가고 있다는 느낌이 있어요. 그런데 그걸 오히려 직접 끌어안으면 훨씬 더 자기에게 진솔해지지 않을까요?

귀여니 l 일부러 피했어요. 다른 건 몰라도 친구 얘기나 그 여주인공의 가치관이나 남자를 보는 눈, 아니면 학교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들, 혼나고 맞고 이런 건 제 얘기를 많이 닮았는데 제일 가까운 가족 얘기는 반대로 피하게 되는 거예요. 가족 이야기는 감싸안고 보여주기 싫어하는 게 있나봐요.

정성일 l 소설을 읽고 있으면 이상하게 어머니에 대한 미움이 느껴져요.

귀여니 l 엄마가 지금은 안 그런데, 음, 초등학교, 중학교 때 차가운 편이었어요. 집안에 힘든 일이 많아서 차갑고 잘 웃지 않으셨던 적이 있어요. 그래서 어린 맘에 엄만 왜 나한테 왜 이렇게 다른 엄마들처럼 안 해줄까하며 미움을 차곡차곡 쌓아뒀었어요. 어쩌면 그런 게….

정성일 l 귀여니 비판은 이모티콘에 몰려 있는데, 저는 그 이모티콘이 비주얼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마치 이야기 중간에 시각적인 클로즈업 숏이 등장하는 것 같다고 할까! 이모티콘의 사용에 대한 판단은 어떻게 내리나요?

귀여니 l 슬프고 엄숙하고 진지한 분위기에는 이모티콘을 안 쓰죠. <늑대의 유혹> 때 쓰고 보니 웃겨서 지웠어요. 반대로 코믹한 표정에서는 주인공이 이렇게 눈을 질끈 감고 입을 동그랗게 벌려요. (*0*) 근데 그걸 글로 표현하면 죽어요, 많이 죽고 재미도 없어요. 주인공이 뜨악 하는 순간이나, 놀라는 순간이나 위기에 부딪쳤을 때 그때 주로 많이 사용해요.

정성일 l 만약 재판을 내면 원래대로 단락 구분을 바꿀 생각은 있나요? 인터넷 버전이랑 책이랑 단락 구분은 좀 다른데 호흡이 다르다는 느낌이 있어요. 복원한다고 할까.

귀여니 l 근데 저는 그때의 귀여니를 너무 많이 잃어버려서 자신이 없어요.

정성일 l 과거의 귀여니와는 일정 부분 작별을 한 건가요?

귀여니 l 작별한 거보다 작별을 시키더라구요. (ㅠ.ㅠ) <도레미파솔라시도> 때부터 슬슬 시작하고 <내 남자친구에게>에서 완전히 단절됐어요.

순정파(*^^*)와 남성의 우정에 대한 판타지

정성일 l <내 남자친구에게>가 거창하게 말하자면 제2의 데뷔작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군요. 그런데 귀여니 소설에만 안 나오는 인물이 하나 있어요. 우등생이 전혀 나오지 않아요. 고의적으로 피한달까….

귀여니 l ㅋㅋ *^^* 음, 그건 아마 제가 우등생을 싫어해서 아니, 싫어한다기보다 나랑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아요. 저는 우등생에 대해 잘 알지도 않고 특별히 친하게 지낸 적도 없어요. 제 친척들이 카이스트 나오고 전교 1, 2등 하고, 그런데 저만 유독 달랐어요. 엄마가 할머니댁 갔다오면 저희한테 화풀이를 하세요. 압박이 정말 심하거든요. 그 생각하기조차 싫은 일을 소설에 옮기면 끔찍하잖아요.

정성일 l 줄기차게 귀여니 소설의 주인공 남자들의 공통점은 몸짱, 얼짱이지만 동시에 순정파라는 점이에요, 순정파 남자라는 건 도대체 무엇입니까?

귀여니 l 직접적으로 너밖에 없다고 덤비면 징그럽죠. ㅠ.ㅜ 은성이나 제 소설 남자들처럼 짓궂고 장난스럽고 바람도 피울 것 같지만, 정작 밖에 나가서 아무리 예쁜 여자가 유혹해도 넘어오지 않는 남자는 모든 여자들의 이상인 것 같아요. (흠흠!!)

정성일 l 근데 그 몸짱, 얼짱한테 공부짱을 시키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귀여니 l 그렇게 하면 우등생이잖아요! 하이틴 만화 보면 남자들이 얼굴도 잘생기고 공부도 잘하고 자상해요. 은성이처럼 괴팍하다기보다 여자 챙겨주고 모든 면에서 완벽한데 그런 애들한테 매력을 느낀 적이 거의 없었어요. (몰랐지?) 저는 좀 약간 무식한 타입으로 설정해버렸어요.

정성일 l 항상 드라마의 결정적 결단은 신기하게도 나이트에서 내립니다. 귀여니 소설 속에서 나이트는 성인식을 치르는 통과제의의 장소로 나오고 있어요.

귀여니 l 그때는 진짜 나이트를 가보고 싶었어요. 안 가보고 감히 쓴 거죠. 노는 아이들이라면 나이트에 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어요. 제가 보기에 그 나이에 제일 수위가 높은 곳이 나이트였어요.

△ 정성일

정성일 l <엽기적인 그녀>는 보았습니까?

귀여니 l 끝까지 안 보고 처음만 봤어요. 이상하게 <엽기적인 그녀>는 다 볼 기회가 없었어요. 그리고 영화관 가서 영화보기 시작한 게 얼마 안 돼요. 고등학교 때는 일년에 한두번 정도 영화 보러 갔나? (음, 너무하는군!!)

정성일 l 소설 쓰다가 참고하는 건 없어요?

귀여니 l 저는 따라하는 게 싫었어요. 과거에 내가 한 걸 따라하는 건 몰라도, 남들하고 똑같은 게 너무 싫어서 교복도 남들이랑 달라야 했어요. 짧은 치마 유행할 때는 밑단을 뜯고, 교복바지 좁은 통이 유행하면 넓혀서 입고 그래서 선생님한테 맞기도 많이 맞았어요. (으쓱!)

정성일 l 어른이 됐으니까 직접적으로 질문하지요. 귀여니 소설을 보면 섹스에 대한 공포가 있어요. 단순히 징그럽다거나 그런 정도가 아니라 공포가 있어요.

귀여니 l 등장도 안 하죠. 지금은 아닌데, 그때는 하면 큰일나는 걸로 알았어요.

정성일 l 지금도 큰일나요. (흠흠!!)

귀여니 l 그래요? <그놈은 멋있었다>랑 <늑대의 유혹> 썼을 때는 남자랑 뽀뽀도 안 해봤을 때예요. (그럼 그 이후는?) 간혹 나와도 여주인공에 있어선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정성일 l 그런데 <그놈은 멋있었다>는 키스로 시작해서, 에이즈, 지은성과 김효빈의 상상섹스, 그리고 동거에 이르기까지 섹스에 대한 암시가 즐비한데 비해 <늑대의 유혹>에서는 무언가 그런 접촉 자체를 의식적으로 조심스럽게 피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사실 <늑대의 유혹>에는 근친상간의 테마가 있는데 말입니다. (음, 너무 많이 나가나?)

귀여니 l <그놈은 멋있었다> 때는 솔직했고 <늑대의 유혹> 때는 솔직하지 못했던 거죠. ㅠ.ㅠ

정성일 l 귀여니의 연애는 줄기차게 삼각관계에 관한 이야기들입니다. (그렇군!!) 삼각관계에 대한 어떤 판타지가 있나요? 삼각관계는 (지금 소녀들의) 이상적 연애인가요?

귀여니 l (생각! 생각!) 음, 제가 실제로 심각하게 삼각관계에 빠진 적도 없고, 그냥 가볍게 얽힌 적은 있었지만…. 이상적이라기보다 둘보다 셋이 얽혀서 사랑하는 게 훨씬 재미있으니까, 관심을 더 유발할 수 있는 상황이지요.

정성일 l 그 반대로 남성의 우정에 대한 판타지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귀여니 l 전 어릴 때부터 사랑을 위해서 먼저 달려오는 남자보다 친구를 택하는 남자가 더 멋있어 보였고, 지금도 그래요. 이상형을 만날 남자가 봐서 멋있는 남자라고 하는 건 사랑보다 우정을 중요시하는 남자라는 뜻이거든요. 여자들도 실제로 친구를 팽개치고 내게 오는 남자를 좋아할 거 같지 않아요. (끄덕 끄덕) 자기 남자가 남자들 세계에서도 으뜸으로 인정받길 바라요. (0_*)

정성일 l 이상적인 남성의 우정 판타지는 어떤 모습인가요?

귀여니 l 드라마에서 예를 들면 <해피 투게더>에서 이병헌씨가 당하고 있을 때, 형을 적대시하던 송승헌 씨가 와서 함께 맞아줬을 때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거예요.

귀여니 소설의 컨셉 : 사랑(●^^●) 혹은 간청

정성일 l 귀여니 소설이 갖고 있는 감정의 가장 큰 컨셉은 무엇입니까?

귀여니 l 사랑이에요. 부수적으로 따르는 게 우정이고. 그리고 그 둘이 결코 평탄하게 흐르지 않고 이곳저곳으로 퍼지는 것. 주인공들의 불우한 환경이나 상황에 굴복하지 않는 것. 그걸 20대가 하기에는 용기를 내야 하거든요. 20대가 그렇게 싸우고 맹목적으로 사랑하면 주변에서 “철들만도 한데 왜 저럴까” 할 텐데, 10대에만 거침없이 나올 수 있는 행동이죠.

정성일 l 저는 귀여니 소설의 가장 큰 감정적 힘은 ‘간청’이라고 생각해요. 사랑에 대한, 우정에 대한 간청. 애절한 거와는 다른데, 제발 절 사랑해주세요, 제발 절 버리지마세요 하는. 저에게는 그게 마음을 움직입니다.

귀여니 l 음, 스스로 몰랐던 거예요. 0_0 한번 다시 읽어봐야겠네요.

정성일 l <그놈은 멋있었다>의 지문은 이상하게도 자세히 묘사하는 건 항상 표정이지 심리는 아니에요. 심리는 쓰여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귀여니 l 쓰여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저한테 그 능력이 없었던 거죠. (겸손!) 나한테 솔직히 중요했던 건 무엇보다 외모였거든요. 그래서 은성이 외모를 표현하는 데에만 매달린 것 같아요.

정성일 l 글을 쓸 때 습관은 없어요?

귀여니 l 음악을 들으면서 써요. <그놈은 멋있었다>를 쓸 때는 롤러코스터의 <습관>을 들었는데, 영화에도 한예원이 좋아하는 노래로 나와요. 제가 전학 오기 전날 친구들이랑 노래방 가서 처음 술 마시고 막 울었는데 친구들이 제가 울며 부른 <습관>을 녹음해줬어요. 전학 오고 그걸 만날 이어폰 꽂고 들으면서 울었거든요. <늑대의 유혹> 때는 음악 사이트에 가서 서지원의 <내 눈물 모아>랑 슬픈 노래만 11곡을 모아서 번갈아 들었어요. <도레미파솔라시도> 때는 <네 멋대로 해라> O.S.T를 들었고 <내 남자친구에게>는 <짬뽕> 들었어요(이 노래는 영화 <그놈은 멋있었다>의 최고 명장면이자 정다빈의 생애의 명장면이다).

정성일 l 그런데 의외로 귀여니 소설에는 술 마시는 장면이 많아요.

귀여니 l 비밀인데, @@ <그놈은 멋있었다>에서 김승표가 술 먹고 땅콩 쏟는 에피소드는 우리 엄마가 했던 일이거든요. 제 소설 주인공들이 평소에 차갑다가 술 마시면 귀여워지는 건 엄마랑 닮았어요. *^^*

정성일 l 두편의 영화에는 이상하게 귀여니 소설들을 읽다, 읽다 결국 포기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그놈은 멋있었다>에서 해빈의 죽음을 왜 그렇게 여자들한테는 가르쳐주지 않고 남자들끼리만 알아야 하는 비밀인가, 하는 대목이에요. 이건 나도 좀 이상해 보입니다.

귀여니 l 그건 살아남은 한성이에 대한 의리예요. 해빈이가 죽은 건 한성이가 은성이를 말려서라고 남자아이들은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그걸 떠벌릴 만큼 입이 가벼운 남자들이 아닌 애들인 거지요.

정성일 l 귀여니 소설을 보다보면 남자들의 세계와 사람들의 세계, 두 세계가 있는 것 같아요. 남자의 세계와 여자의 세계가 아니구요. 그건 참 이상한 이분법입니다. 여자들의 커뮤니티는 남자 커뮤니티처럼 결속돼 있지 않아요.

귀여니 l 제가 남자였으면, 남자의 진짜 생각, 진짜 생활, 진짜 행동을 알면 그렇게 못 썼을 거예요. 제가 여자라 다른 성별에 갖는 환상이구요. 고리타분하지만, 남자는 남자다워야 하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하고, 남자다운 남자는 절대 배신하면 안 되고 남자끼리 같이 있을 때 빛이 나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남자들은 흔히 여고에 신비감을 갖는다는데, 저는 이른바 논다는 남자애들한테 신비감을 가졌고 걔들이 흩어지는 걸 용납할 수가 없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