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공동수상한 두편의 이란영화 중 한편인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은 한 아이를 인터뷰하는 어른의 목소리와 함께 시작하는데 근래의 어떤 영화보다도 더 관찰자적이라고 할 수 있다.
바흐만 고바디 감독은 자신이 태어난 쿠르드족 마을을 배경으로 성인들과도 같은 삶의 무게를 짊어진 채 마을 시장에서 허드렛일이라도 (그리고 때때로는 이란-이라크 국경을 넘나들며 금지 품목을 밀수하는 험악한 일까지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척박한 현실 속의 아이들을 다루고 있다. 영화의 중심은 서서히 다섯 고아 남매에게로 옮겨가는데, 이중 15살의 마디는 걸음마를 뗀 아이 정도밖에 자라지 못한 왜소증 환자로 의사가 주사를 놓을 때면 징징거리기 일쑤다. 자신의 어린 동생과 누이들에게 의지해 살아가는 마디는 (영화는 배우들의 실제 관계를 극화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목숨을 6개월가량 연장해줄 수 있다는 수술을 받지 못하면 당장 10일 안에 숨을 거둘 운명에 처해 있다. 암담한 상황 속에서도 의지를 굽히지 않는 소외계층의 이야기는 세계 어디서건 인디 영화계의 금과옥조라고나 할까?
역시 쿠르드족 지역에서 촬영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화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의 조감독으로 작업한 바 있는 33살의 고바디 감독은 이란의 첫 번째 쿠르드족 출신 감독이다. 고바디 감독은 화면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려하지 않는다. 장면마다 감독은 관객을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의 한가운데로 내던져버린다. 그 투쟁적 상황들은 격렬하면서도 혼돈스러운데, 이라크 국경 수비대가 금지 서적들로 가득한 트럭을 수색하는 장면에서 아이들은 족히 수마일은 떨어져 있을 집을 향해 눈밭을 나뒹군다. 한마디로 외곬의, 때때로 번민스럽기까지 한 이 영화는 사실 추위를 이기도록 하기 위해 말들에게 보드카를 먹이는 밀수업자들의 수법에서 그 제목을 따왔다.
마디의 누이는 동생을 수술시키기 위해 한 쿠르드족 사내와 약혼을 하는데, 이 장면에서 왜소한 마디는 신부의 짐짝 속에 문자 그대로 “덜렁덜렁 매달려” 간다. 하지만 신랑의 식구들은 마디를 거부하고, 대신 국경을 넘어 이라크로 몰래 그를 들여가는 데 쓰일 당나귀 한 마리를 주는 것으로 대신한다. 사실 영화 속에서 이라크가 이란보다도 기술적으로 진일보하고 (심지어 훨씬 안전하기까지 한) 나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은 상당히 놀랍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지뢰밭을 헤치며 국경을 넘는 아이들의 모습처럼 영화는 용감하게 표현의 경계를 넘어 전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