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3개국 옴니버스 호러 <쓰리, 몬스터> 악몽의 제작기 - 박찬욱
2004-08-17
글 : 이성욱 (<팝툰> 편집장)

P. S. 영화사 봄은 여전히 국내 프로덕션에 무게중심을 두지만 제작의 삼각추 가운데 하나는 해외쪽에 내딛고 있다. <쓰리, 몬스터>는 그중 하나의 작업일 뿐이다. 자본이 완전히 해외에서 오는 경우, 로케이션이 외국이어서 자본과 인력을 공유해야 하는 경우, 외국 감독을 초청해 한국에서 한국의 배우, 스탭과 작업하는 경우 등 다양한 방식을 진행하고 있다. <쓰리> 시리즈가 <쓰리10>까지 이어가며 성공한 브랜드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아직 알 수 없으나, <쓰리, 몬스터>가 해외로 뻗는 제작 노하우에 보탬이 된 건 분명해 보인다. “한국의 시스템은 비경제적이다. 홍콩과 일본은 어찌됐든 한편 찍는 데 한달이면 모든 걸 끝내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우린 최소 석달이다. 감독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는 우리의 시스템이 크리에이티브에 도움이 되는 건 분명하지만, 준비하고 진행하고 마무리하는 스피드는 확실히 우리가 늦다. 우리에겐 시간이 돈이 아니니까. 원칙 세워놓고 그걸 따라가는 일본과 철저하게 실리를 좇아가는 홍콩 사이에서 한국은 애매하게 서 있다.” (안수현 프로듀서).

좀비호러 퇴짜맞다

박찬욱 감독은 처음 구상한 이야기를 퇴짜맞았다. “가난한 남자가 있는데 와이프가 가방수집광이에요. 이민을 가거나 장기 여행을 가게 됐는데 정작 큰 트렁크가 없는 거야. 마침 봐둔 물건이 있는데 루이뷔통이죠. 너무 비싸지 않겠어요. 부부싸움이 난 거지. 무능하다고. 싸우다가 홧김에 뛰쳐나와 늘 가던 뒷산으로 산보를 갔어요. 그런데 숲속 으슥한 곳에 그 가방이 놓여 있는 거야. 열어보니 토막난 시체가 있고. 시체를 꺼내 묻어주고 가방은 집으로 가져와 거실에 놓고, 그날 밤 부부가 환상적인 밤을 보내죠. 늦은 밤, 화장실을 가다가 가방이 눈에 띄어 열어보니 다른 사람의 토막난 시체가 있는 거야. 이번에는 마당에 묻었죠. 그날부터 밤마다 남녀노소의 다른 시체들이 나오고, 그걸 계속 묻어요. 더이상 묻을 곳이 없을 만큼 한달 동안 계속. 그러다가 궁금해진 거죠.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어느 날 자신이 가방 속에 들어가 가방을 닫는 순간 다른 세계가 열려요. 지옥이었죠. 무수한 악마가 쫓아와 계속 도망다니고, 위기의 순간에 간신히 뛰쳐나왔는데 거실이에요. 숨을 돌리는데 가방이 열리더니 악마들이 하나씩 따라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무서운 형상이 아니라 보통 사람의 모습으로 집안이 가득 찰 동안 꾸역꾸역 계속. 새벽이 되자 그것들이 집 밖으로 나가기 시작해요. 그리고는 마당에 묻혔던 토막난 시체들이 서로 짝이 맞지 않은 채 그 악마들과 붙어서 버스도 타고, 지하철도 타고 출근하듯 가는 겁니다.”

속편이 가능해 보이는 이 한국형 좀비호러가 ‘퇴짜’ 맞은 이유는 두 가지다. 제작비를 감당해낼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것(<쓰리, 몬스터>의 제작비 하한선은 5억원. 작품의 기본적인 품위를 지켜낼 수 있는 최저선이다. 그러나 상한선은 없다. 미이케 다카시는 이 하한선에 맞춰 영화를 찍었다)과 지옥이란 컨셉이 퍼득 와닿지 않는다는 것. 물론 ‘봄’이 박찬욱 감독에게 “그건 안 돼요”라고 매몰차게 말했을 리 없다. 제작사가 완곡하게 난색을 표하자 박찬욱은 대뜸 그럼 이건 어떠냐며 지금의 아이디어를 들이밀었다. 밤중에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다 뭔가 떠오를 것 같아 거실로 나와 혼자서 담배 한대를 피우는 동안, 유명 영화감독과 엑스트라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가 주욱 떠올랐던 것이다.

<올드보이>의 스탭 대부분이 <쓰리, 몬스터>의 스탭으로 이동했고, 임원희, 강혜정, 염정아(흡혈귀로 특별출연)의 캐스팅이 비교적 수월하게 진행됐지만 극중 감독 류지호 캐스팅이 문제였다(‘류지호’는 박찬욱 감독과 평소 친분이 두터운 동료 감독 류승완, 김지운, 봉준호, 허진호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조합해 만든 이름. 영화에서 류지호의 고백을 통해 이들 감독의 ‘비행’이라고 짐작되는 몇 가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박찬욱 감독은 각각의 비행과 그 당사자를 농담처럼 연결해주었지만 여기서 차마 이를 밝힐 수 없다). 이병헌이 유력했지만 <누구나 비밀은 있다>와 출연, 개봉 일정이 비슷하게 겹치면서 포기 직전까지 갔다. <누구나 비밀은 있다>가 2주 동안 촬영 일정을 ‘풀’로 내주면서 일단락됐다. 홍콩과 일본은 한국의 프로덕션 진행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박찬욱 감독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고 이병헌은 이미 아시아의 스타였다. 속썩인 건 하나. 44분이라는 러닝타임. 감독에게 러닝타임을 줄이도록 하고 싶어도 이미 미이케 다카시가 합의선에서 10분 초과한 40분짜리를 만들어놓았으니 감독을 닦달할 핑계가 없었다.

박찬욱의 <쓰리, 몬스터>

흡혈귀(염정아)가 노인을 세워둔 채 드라큘라식 식사를 한 뒤 상한 피 때문에 구토를 한다. 왈칵 쏟아내는 엄청난 피. “컷!” 인기 영화감독 류지호(이병헌)의 사인이 떨어진다. 이 장면은 영화 속 영화다. 류지호 감독의 아내(강혜정)가 인질 테러범을 비슷한 방식으로 퇴치하는 현실의 공간도 같은 스튜디오에서다. 같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두개의 다른 장면은 각각 영화와 현실이지만 결국 이어져 있는 이야기다. 누가 누군가의 피를 빨아먹고 산다는 계급적 은유. 박찬욱 감독은 부자가 가난한 자의 소유물이던 착한 심성까지 차지해버린 현실을 코믹호러로 ‘개탄’한다.

뛰어난 영화를 만드는 능력이 있고 바로크식 저택을 소유한 부자이며 아름다운 아내를 지닌 영화감독 류지호의 집에 괴한이 침입했다. 괴한은 감독을 감독의 집과 똑같이 만든 스튜디오에 가두고 이상한 게임을 벌인다. 피아니스트인 그의 아내를 피아노 줄에 꽁꽁 묶어둔 채 손가락을 하나씩 잘라나간다. 류지호는 자신이 착하지 않다는 걸 증명해내야만 아내를 보호할 수 있다.

포로가 된 류지호와 괴한(임원희)은 부자와 빈자의 구도이기도 하지만 영화를 만드는 주체(감독)와 객체(엑스트라)의 관계이기도 하다. 이 계급 역전극은 성공할 수 있을까. 두 인물이 닫힌 공간에서 극한까지 대립하며 서로를 잡아먹으려고 겨루는 심리극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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