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3개국 옴니버스 호러 <쓰리, 몬스터> 악몽의 제작기 - 프루트 챈
2004-08-17
글 : 이성욱 (<팝툰> 편집장)
내 멋대로 만드는 홍콩스타일

원칙주의자 일본의 소외감을 자극하며 3국 합작 전선에 최대 위기가 닥친 건 홍콩 감독이 유위강에서 프루트 챈으로 바뀔 때였다. <무간도>가 아시아에서 워낙 이름을 떨친 작품이어서 유위강에 대해 일본도 반색하고 있었는데, 유위강이 거대한 장편영화 프로젝트를 갑자기 떠안게 되면서 일이 꼬였다. 홍콩에선 유위강의 장편 작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거나 감독을 바꾸거나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는 선택지를 내놨다. 한국이라고 당황하지 않았을 리 없다. 대안이 될 만한 감독을 찾지 못하면 자기라도 하겠다는 진가신의 설득에 ‘뭐 하는 수 없군’ 하며 상황을 수긍했다. 완강한 건 일본이었다. 유위강이란 이름을 넣고 사인한 계약서는 뭐냐는 것이었다. 하긴 일본 처지에서는 ‘파이널’을 보낸 지 석달이나 지난 시점에서 감독을 바꾸겠다니 답답한 노릇이었을 게다. 원칙을 준수하는 건 자기뿐이고 한국과 홍콩은 자기들끼리 입을 맞춰가며 일을 진행한다는 소외감이 극에 달했다.

일본이 원칙 우선주의라면 홍콩이 챙기는 건 ‘실리’다. 처음에는 신뢰관계가 있어 쉬웠고 서로 융통성을 발휘해 일을 매끄럽게 풀어가는 듯했으나 결국 그 융통성을 자기네 이익을 최대한 보장하는 쪽으로 끌어갔다. 수많은 이메일과 전화로 설득을 거듭해 간신히 일본의 맘을 돌려놓았으나 시간은 마냥 흘러갔다. 8월 개봉을 겨우 두달 앞둔 6월, 이제 한국이 피가 마르는 상황이 됐다. 진가신은 유위강을 대신할 감독으로 <메이드 인 홍콩> <리틀 청>의 프루트 챈을 선택했지만 그 역시 순조롭지는 않았다. 프루트 챈은 당시 프로듀서 일까지 하며 엄청난 스케줄에 허덕일 때였다. 마침 <진용>과 <패왕별희>의 작가 릴리안 리의 준비된 시나리오가 있었고, 크리스토퍼 도일이 제때 촬영에 합류했다. ‘만두 만드는 여인’ 역에 활동을 재개하려는 왕조현이 합류할 기세여서 <천녀유혼>을 지금도 기억하는 한국이 특히 기뻐했으나 매니지먼트사가 틀어버렸다. 결국 7월 한달간 찍고 진가신이 편집을 도와 시간을 맞췄다.

홍콩이 한국을 ‘열받게’ 한 건 이때부터다. 먼저 러닝타임. 홍콩은 37분짜리를 보내왔지만 이건 짧은 버전이고 별도로 개봉할 1시간10분짜리 버전을 따로 만들었다. 긴 버전은 서브 캐릭터의 이야기를 가지치기처럼 좀더 풍부하게 한 것이어서 짧은 버전이라고 완성도가 떨어지는 건 아니지만 한국과 일본의 관객은 아무래도 찜찜함이 남을 것이었다. ‘봄’도 박찬욱 감독과 촬영을 진행하면서 이런저런 부분들을 더 찍으면 1시간20분짜리로 만들 수 있겠다는 이야기를 나눈 터였다. 그렇지만 예산과 계획이 그게 아니었으니 거기서 끝냈더랬다. 그런데 홍콩은….

그 다음은 표현 수위. 크리스토퍼 도일의 카메라는 역시 유려하고 매혹적이다. 하지만 태아로 만드는 만두, 낙태하는 장면 등은 15세 관람가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표현 수위를 15세 관람가로 맞추자는 것도 러닝타임처럼 합의된 내용이었다(일본과 홍콩에선 한국의 신체절단 장면이 미묘해질 수 있다고 했다. 어찌됐든 홍콩은 15세 등급을 받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고). 박찬욱과 미이케 다카시라고 더 센 장면들을 찍고 싶지 않았을까? 그런데 홍콩은…. 한국은 ‘홍콩 스타일’을 2편에 와서 제대로 겪은 셈이다.

프루트 챈의 <쓰리, 몬스터>

소리가 공포감을 자극한다. 타다다다…. 심상치 않은 재료로 만두소를 다지는 칼소리. 이 만두를 조심스레 집어 정성껏 씹는 소리도 색다르다. 오도독 오도독…. 10년 전만 해도 아름다운 외모를 과시했던 여배우 칭이 젊음을 되찾고 싶어 이 이상한 만두를 주문해 먹는다. 그의 부자 남편도 젊음을 좇아 어린 여자들의 몸에 흠뻑 빠져 있다. 매끈한 몸매를 강조하려는 듯 몸에 딱 붙는 옷을 입은, 만두를 만드는 여자 메이가 이상한 말을 한다. “내가 몇살이나 돼 보이죠? 30대? 할머니 나이인데 다들 메이 이모라고 하죠.” 자기처럼 되려면 자기가 만든 만두를 열심히 먹으라고 권하는 이 여자, 중국에서 홍콩으로 ‘사업차’ 건너왔다. 그의 만두 재료는 지금도 중국에서 공수해온다. 낙태한 태아다. 시나리오를 쓴 릴리안 리는 중국 정부가 밀어붙였던 산아제한 정책의 부작용으로 급증했던 낙태 실태를 고발하고 싶었다고 한다. 양가휘가 칭의 남편으로, 중국과 할리우드를 오가며 일하는 베일 링이 만두 만드는 여인 메이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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