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궁금했을까. 유영철의 연쇄살인사건에 대한 박찬욱 감독의 생각이. 그런데 그도 궁금해했다. “그가 그려놓은 그림을 보고 악마적 범죄자와 예술가의 관계가 궁금했다. 그런 경우가 많이 있지 않나.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긴 했는데, 그러려면 그에 대한 조사가 많이 필요할 거다. 아직은 호기심만 갖고 있는 정도다.”
물론, 박찬욱의 <쓰리, 몬스터>는 실제가 아닌 상상의 산물이다. 그렇지만 인간들 위를 배회하는 악마성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현실의 조건과 무관하지 않다. 게다가 영화감독이 만든 영화감독과 엑스트라의 목숨 건 대결 이야기가 아닌가. 그의 영화들이 고약하다고들 한다. <쓰리, 몬스터>에서 인형이 돼버린 인질의 처지가 그렇다. 감독의 아내는 온몸을 피아노 줄로 꽁꽁 묶인 채 끔찍한 고문을 당한다. 손가락이 잘리고, 잘려나간 손가락은 또 한번 수난을 당한다. 박찬욱 감독의 현실은 이와 정반대다. 그는 아내의 조언에 자신이 얼마나 귀기울이며 아내를 얼마나 신뢰하는지 공공연히 이야기한다. 그런 그가 <쓰리, 몬스터>에서 영화감독 류지호의 아내에게 자갈을 물려놨다. 그 아내는 말 한마디도 내뱉을 수 없다. 심지어 신음조차도. 배우 강혜정이 변변한 대사조차 없는 그 수난의 캐릭터를 기꺼이 맡았다. 그들은 서로 궁금해했다. 박찬욱 감독은 강혜정이 왜 그 배역을 맡았는지, 강혜정은 박찬욱 감독이 그 배역을 왜 자신에게 맡겼는지. 이들을 한자리에 초대했고, 그들의 이야기를 간추렸다.
강혜정이 박찬욱에게 던지는 ‘쓰리, 퀘스천(question)’
강혜정 | 감독이 생각하는, 영화에서 표현하는 여성의 이미지가 뭘지 궁금하다. <쓰리, 몬스터>의 상황에 처한다면.
박찬욱 | 나 같으면 빤스도 내리고 하지(괴한으로부터 웃기라는 명령을 받은 이병헌은 팬티만 입은 채 뭔가를 한다). 또? 으응, 으응, 그러니까 그 행태는 아마 내가 했을 법한 거 같아. 그는(괴한) 계속 나쁜 짓 한 것을 고백하라고 하는데, 나는 순진하게 다 고백하고 그랬을 것 같다.
강혜정 | 감독이 생각하는, 영화에서 표현하는 여성의 이미지가 뭘지 궁금하다. <올드보이>의 미도 캐릭터, <복수는 나의 것>에서의 두나 언니 캐릭터, <쓰리, 몬스터>의 아내 캐릭터는 기존의 여성 캐릭터와 좀 다른 것 같은데.
박찬욱 | 남자라서 여자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 어렵다, 고 이야기하는데 나의 방침은 여자라는 것을 너무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자 캐릭터를 만들 때와 비슷한 과정으로, 사람인데 어떤 개성을 가진 사람이지, 여성적인 뭔가가 있다는 것은 자꾸 잊으려고 한다. 여배우들이 연기도 내 영화에선 그렇게 해줬으면 한다.
강혜정 | 감독이 영화를 잘 만드는 길은 배우를 잘 컨트롤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여섯개의 시선>에서 배우에게 가만히 있어보라고 했더니 정말 가만히 있더라면서 그 배우가 연기를 잘하는 기운을 느꼈다고 했다. 연기를 잘하고 있구나 하는 판단의 기준이 무언가.
박찬욱 | 촬영 때 종종 가만히 있어보라고 하는데, 정말 가만히 있는지 그 기준이 중요하다. 정말 꼼짝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신감. 연기의 최대 관건은 자신감이다. 이렇게 할 때 과연 관객이 믿어줄까 하는 의심없이 할 때, 배우의 자신감을 판단할 수 있다. 어떤 배우는 아무리 가만히 있으라고 해도 손을 꼼지락한다든지 머리를 긁적이는 불필요한 연기를 한다. 어떤 영화든지 가만히 있다거나 무표정한 순간이 있게 마련인데 뭔가를 읽어낼 수 없는 그 순간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게 만드는 배우가 뛰어난 게 아닐까.
박찬욱이 강혜정에게 던지는 ‘쓰리, 퀘스천(question)’
박찬욱 | 감독이 어떻게 할 때 가장 야속한가.
강혜정 | 배우에게 관심이 없을 때. 그렇지만 박찬욱 감독님에게는 한번도 느껴본 적이 없다. 박 감독님 말고라면, 배우한테 처음부터 끝까지 어떻게어떻게 하라고 할 때. 나는 뭔가를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고 하고 싶은데, 감독님 머릿속에 있는 액팅을 그대로 그려내라고 할 뿐이니까. 마치 퍼즐 맞추기의 조각들을 주고 이것만 맞춰, 라고 하는 느낌. 창조하고 표현하고 싶어하는 게 연기인데 자꾸 네모난 틀 안에 가둬놓는 느낌이 드니까. 물론 이런 게 필요한 신이 있기는 하지만.
박찬욱 | 각본을 처음 봤을 때, 연기할 필요가 별로 없는, 그냥 인형처럼 묶여 있는 건데 할 맘이 든 건 왜인가? 완성되면 이 각본의 느낌과 다를 것이라고 했는데, 그 말을 정말 믿었나.
강혜정 | 그럼, 믿었지. 내가 감독님 말 안 믿은 적 있나. (웃음) 근데 <쓰리, 몬스터>가 하고 싶었던 세 번째로 끌렸던 이유는 대사가 없다는 거였다. 그게 나한테 플러스가 되는 요인이니까. (웃음) 묶여 있다는 건 완전히 봉쇄돼 있는, 어딘가에 봉인된 것 같은 느낌인데 이 작품이 아니고서야 그런 상황에 처해 있는 연기를 할 수 있겠나? 봉인됐다는 게 당시에 만화 <이누야샤>를 봐서 그런지 몰라도 흥미롭게 느껴져서.
박찬욱 | 내년에 남자 만날 사주라던데.
강혜정 | 얼마 전 사주를 봤는데, 그분이 내년에 귀인이 나타난다고 했다. 어떤 사람이냐니까, 부티나고 해외를 왔다갔다하는 사업가일 거라고. 나이는 어떻게 되냐니까, 많으면 서른, 적으면 스물여덟 말띠. 좋았다. 귀인을 만난다니까. 그런데 그 사람이 약먹고 자살시도를 한다니까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