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쓰리, 몬스터>의 박찬욱·강혜정 [2] - 박찬욱
2004-08-24
글 : 이성욱 (<팝툰> 편집장)
글 : 오계옥

본전도 못할까봐. 그게 제일 큰 공포지

군말없는 감독 박찬욱

건방지고 오만하다? 오해다. 솔직하며 여유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착하다. “죽겠어요. 3편을 동시에 하는 셈이니. <쓰리, 몬스터> 후반 작업, <친절한 금자씨> 시나리오 작업, 네장으로 나오는 <올드보이> DVD 확장판 작업까지.” 그는 좀 봐달라고 했다. 파병반대 영화인 선언 직후, 그에게 파병반대에 관한 원고를 한 페이지만 써달라고 청탁하자 정작 그가 사정을 봐달라고 했다. 다음날, 다시 전화를 걸자마자 “생각해봤는데, 도저히 안 되겠어요. 미안해요” 한다. 다른 감독들이 다들 못 쓰겠다고 급박한 상황을 알렸더니 대번에 달라진다. “그래요? 그럼 할 수 없네.” 새벽 5시에 원고를 넣어주면서 두 문장을 첨가했다. “원고 보냅니다. 미워요.” 감독과 배우를 표지에 나란히 등장시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웬만해선 구도가 잘 안 나온다. ‘안타까운’ 마음에 양해도 구하지 않고 연출을 감행했다. 담배를 물리고 가슴을 풀어헤쳐 여배우의 손을 끼워넣었다. ‘양아치 같지 않느냐’고 한마디할 것도 같은데 군말이 없다. 순한 양 같다.

-<올드보이> 이후 처음 선보이는 작품이라 부담을 느끼지 않는가.

=내가 그런 성격이 아니라서. 될 대로 되라는 스타일이라서….

-계급 갈등을 새롭게 다뤘는데.

=예전의 가난했던 시절에 맨주먹으로 부를 이루던 때와 달리 부를 세습하면서 잘 교육받은 부자들이 많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매너가 좋고 젠틀하며 어려서부터 어려움 없이 자라니까 성격은 꼬인 데가 없다. 그러니까 부자가 착하기도 한 세상이다. 반면 가난뱅이는 더욱 박탈감이 커지고, 가난해서 성격이 더 나빠지기 쉬운 세상이 됐다. 21세기를 생각한다는 무슨 모임에 나가게 된 적이 있는데 재벌 2세, 의사, 변호사 등의 내 또래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렇게들 부드럽고 예의바를 수가 없었다. 겉으로만 내보이는 모습이랄 수도 있지만 속속들이 정말 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이 얘기가 시작된 것 같다.

-영화 처음의 흡혈귀 장면은 <친절한 금자씨> 이후로 계획하고 있는 뱀파이어 영화 <박쥐>를 염두에 둔 것인지.

=그 생각은 했는데 <박쥐>가 그런 스타일의 영화는 아니다. 소재는 같지만, 스타일은 딴판으로 갈 거다. 화려한 영화가 아니다.

-장르로 따진다면.

=종교영화!

-호러, 하면 떠올리는 게 무언지, 어떤 호러를 하고 싶었나.

=호러영화는 무서워서 극장에서 못 보고 주로 DVD로 본다. 보다가 너무 무서우면 잠시 꺼놓고 숨돌린 뒤 다시 본다. 극장에선 <장화, 홍련> 딱 한편 봤다. 미이케 다카시의 영화에서 상자 속에서 눈이 끔벅끔벅하는 거, 남자가 복도에서 누군가를 볼 때 무서웠다. 이렇게 무서움을 타니까 호러를 좋아하는 거 아닐까. <쓰리, 몬스터>에선 초자연 현상이 없는 호러, 유머가 있는 호러를 하고 싶었다.

-배우에게 어떤 주문을 했나.

=임원희는 상황을 장악하고 세 사람의 목숨을 손아귀에 쥐고 있는, 그 조건 안에서는 가장 거대하고 힘있는 존재다. 그렇다고 완전히 압도해버리는 악당이 아니었으면 했다. 엑스트라로서 그 유명한 감독에게 약간은 주눅들어 있는, 그 상황에서도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길 원했다. 그런 걸 느꼈을지 모르겠는데 다 갖고 노는데 뭔가 꿀리는 느낌이 있다. 오히려 당하는 이병헌이 더 당당해 보이는 그런 게 있다. 두 사람의 계급적 정체성이 이런 조건에서도 완전히 역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병헌은 가장 변화가 많은 인물이다. 겁에 질렸다가 애원했다가 화도 냈다가 별의별 고백을 하기도 하는. 여러 감정의 변화를 부드럽게 넘어가는 걸 가장 중요시했고 본인도 그걸 가장 고민했다.

-배우의 연기가 의도대로 나오지 않을 때 어떻게 대처하나.

=두 가지 경우로 나눌 수 있다. 뭐가 미흡한지 알겠는 경우와 그렇지 못한 경우. 알면 고치면 될 테고, 모르겠을 때는… 옛날에 데뷔작 찍을 때는 감독이 모르겠다는 말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말이 안 돼도 이렇게 해보라고 요구를 하고는 했지만 지금은 모르겠으면 모르겠다고 한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니긴 아닌 것 같다고. 어떻게 바꿔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한번 해보자고. 그래서 막연히 다시 해서 뭔가 발견되기도 하고. 대개 감독들이 그렇듯 모니터에 녹화하니까 되풀이해서 보면 알게 된다.

-연기 말고 본인이 원하는 상황 중 안 되는 것은 무언가.

=극장. 문제가 많다. 이 영화는 비스타 비전이라 조금 다른데 장편을 찍을 때는 항상 시네마스코프로 찍는다. 그런데 좌우가 너무 많이 잘려나가고 심지어 위아래도 잘려나간다. 화면에는 내가 찍은 영화의 70, 80%밖에 안 나온다. 구도를 이렇게 답답하게 잡았던가 할 정도로. 외국에 나가서 보면 괜찮고. 할리우드영화도 다 이렇게 본다는 건데 정말 문제다.

-전작들도, 이 영화도 한 인간과 그 인간을 몰락시키는 환경이나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개인의 내면이나 서정성을 파고들어가는 영화를 만들 계획은 없나.

=<친절한 금자씨>가 비교적 그런 것인데, 난 내면이 드러나지 않는 영화가 좋다. 저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가 잘 드러나지 않는, 그래서 궁금한 영화가 더 좋은 것 같다. 행동만 있어서 그 행동으로 관객이 생각하게 하는.

-아이와 인질의 구도가 나오는데, 이런 영화들이 자꾸 나온다. 〈4인용 식탁> <바람난 가족> 등.

=아이들에 대한 폭력이 훨씬 더 폭력적이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게 아닐까.

-영화 만들면서 느끼는 공포는.

=흥행. 본전도 못할까봐. 그게 제일 큰 공포지. 그 다음은 마누라가 별로라고 그럴까봐. 제일 신경쓰이는 관객이다. 함께 사는 사람이니까 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한다. 이번에 <친절한 금자씨> 시나리오를 잘 못 썼다고 그래서 고치려고 한다. 2고까지 썼는데 지적이 많더라. 그리고는 별로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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