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꿈이 이루어지기까지, <슈퍼스타 감사용> 제작기 [3]
2004-09-15
글 : 이영진

#90

경기 몽타주

(음악 흐르며 감사용과 박철순의 투수 대결이 보여진다)

최선을 다해 던지는 박철순과 감사용… 두 선수의 투구모습 다양하게 보여진다. 3회, 4회… 공수 교대되고… 5회… 6회… 투구하고 나서 주먹을 불끈 쥐는 박철순. 다양한 볼로 타자들을 요리하는 감사용. 자신감 있게 야수들과 하이파이브하며 마운드를 내려간다.

“내가 나와서 안되는 영화 못 봤다” 고마운 조연들

김수미 선생님은 뵙기 전까진 두려움이었다. “내가 나와서 안 되는 영화 못 봤다”는 덕담과 함께 직접 쓴 에세이집과 요리책을 친필 사인까지 해서 전해주시는 걸 보기 전까진, 꼬장꼬장하고 깐깐한 분이라고 여겼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물론 촬영 때문에 주신 책은 아직 읽지 못했다. 이건 말하면 안 되는 건데. 하여튼 김수미 선생님은 아이스하키를 했던 아들을 둬서인지 감사용의 어머니 역할에 애착을 보였다. 자신도 부상으로 아들이 아이스하키를 그만뒀을 때 코치를 패기까지 했다는 말씀도 덧붙이시면서. “야구는 전혀 모르지만 좋은 이야기 같아서 출연한다”는 그분은 자식 같은 스탭들에게 든든한 아침 먹인다고 새벽부터 현장에 나와 한쪽에서 간장게장을 담그기까지 했던 분이다. 그날 난 실컷 먹고서도 남은 간장게장을 소품으로 쓰는 것으로 그분의 정성에 보답했다.

투수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는 건 야수들의 호수비다. 김수미 선생님과 함께 장항선 선생님이 그 몫을 해줬다. 장항선 선생님은 극중 삼미 슈퍼스타즈 박 감독으로 처음부터 떠올렸던 분이다. 분량은 적지만 무게감이 필요했던 역할. 감사용을 무시하는 듯하면서도 실은 ‘좀더 힘내!’ 하는 응원을 보내는 박 감독에 장 선생님만한 분은 없었다. <텔미썸딩>을 봤을 때가 생각난다. 중견배우인데도 그의 연기는 닳지 않아 있었다. 어딘가 고급스러운 느낌까지 풍겼다. 그걸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지금 봐도 촬영장에서 두 선생님이 몇 십년 동안 축적한 노하우는 신마다 빛난다. 프레임의 비어 있는 공간을 선생님들의 동선이 순식간에 채우고 있다. 촬영 때 내가 전달을 잘 못해도 원하는 걸 해내시는 걸 보고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이혁재 이야길 안 할 수 없다. 처음엔 사실 우려스러웠다. 코미디언을 쓰는 것이 부담이 됐다. 본인도 그걸 아는지 “나 배우 아니라 코미디언”이라고 일찌감치 못박았다. 그의 극중 역할은 금광옥 포수. 감사용과 배터리를 이루는 인물이다. 본인은 심각한 대사를 읊고 있는데, 나중에 관객이 그걸 보고 웃으면 어떡하나. 그런데 이혁재는 유재석도, 김용만도, 강호동도 아니었다. <야인시대>를 뒤늦게 보면서 그랬고, 자기에게 뭘 원하는지를 동물적으로 알아내는 직감이 있음을 박철순과 감사용의 대결장면 촬영 때에도 느꼈다. 그는 이혁재가 아니라 금광옥이었다. 개인적으로 만날 때마다 하는 행동이 재밌고 그런 것을 관객과 나누고 싶어 캐스팅한 인호봉 역의 류승수, 시속 100km가 넘는 공을 뿌릴 정도로(카메라 돌리다 말고 우린 가끔, 아주 가끔 스피드 건으로 누가 더 공을 빨리 던지나 알아보곤 했다) 운동신경이 좋은데다 정말 야구 잘하는 선수처럼 보여야 하는 박철순 역의 공유, 매번 포커스 아웃 신세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점’ 연기에 몰두한 수많은 배우들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승리투수가 될 요건조차 갖추지 못했을 것이다.

#110

에필로그

(광나루터 야구장

음악 Twister Sister’s의 . 신나게 흐르며… 엔딩 자막과 함께…. 실제 원년 삼미 선수들과 영화 속 삼미 선수들의 행복한 시합… 그들의 경기엔 화려한 환호성도 수많은 관중도 없다. 에러를 하고 안타를 맞아도 그들은 행복하다. 그들은 단지 야구를 즐길 뿐이다!

(음악 흐르며 감사용과 박철순의 투수 대결이 보여진다)

“꿈이 있으면 늙지 않는다” 감사용은 루저가 아니다

△ “같이 울고 웃고 부대끼던 가족들이 나만 달랑 놔두고 다 떠나버린 심정이다.” 촬영을 끝내고 난 뒤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김종현 감독. “보충촬영이 1회로 끝난 것이 아쉽다”는 말까지 내뱉을 정도다.

촬영이 끝난 지금 난 우울증에 시달린다. 사귀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나와 붙어다니면서 갑자기 세팅을 전부 다시 바꿔달라는 동갑내기의 변덕을 군말없이 들어줬던 촬영감독 김영호와 처음부터 끝까지 현장을 지키며 어린 감독의 불만을 삭혀냈던 상오 형이 곁에 있긴 하지만 스탭, 배우들과 어울려 하루를 보냈던 때가 환각처럼 떠오른다. 보충촬영을 나가야 할 경우, 다른 감독들은 대개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모르겠으나 난 방학 일정이 늘어나 기뻐하는 아이처럼 날뛰었다. 러닝타임 때문에 잘라낸 장면들은 주워담을 수 없는 추억 같아서 다음 영화에 써야 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요즘엔 종종 다신 디렉터스 체어에 앉지 못하는 꿈까지 꾼다.

몇년 전 나의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하셨다. 그리고 집에 계신다. 촬영이 한참 진행되던 몇달 전 어느 날이었던 것 같다. 아버진 내게 물으셨다. 영화 잘돼가느냐고. 빈정대며 잘되죠, 했다. 당신도 멋쩍었는지 한마디 덧붙이셨다. “나도 요즘 사업을 하나 구상 중이야.” 환갑이 넘으신 분은 당당히 그렇게 말씀하셨다. <슈퍼스타 감사용>은 루저 스토리가 아니다. 1승15패라는 초라한 성적만을 남기고 마운드에서 내려왔던 감사용은 꿈이 있어 루저가 아니다. 꿈이 있으면 늙지 않는다. 수많은 감사용이 지금도 꿈을 꾸고 있다. 인생이라는 빅게임은 죽기 전까지 끝나지 않는 법이다. 밤새 감사용의 와인드 업을 돌려보면서 꿈과 도전의 값어치를 씹고 또 곱씹는다. 내 나이 이제 서른다섯이다.

구술=김종현, 정리=이영진, 사진제공=싸이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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