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애니메이션의 작가주의, 오시이 마모루의 <이노센스> 해부 [1]
2004-10-12
글 : 김도훈

“네트는 광대해.”
내무성 공안 9과(<공각기동대>)의 쿠사나기 소좌가 그렇게 읊조리며 네트 속으로 사라진 건 1995년이었다. “어쩌면 나는 훨씬 이전에 죽었고, 지금의 나는 전뇌와 의체로 구성된 가상인격인 게 아닐까. 아니, 처음부터 나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이 아닐까”라며 데카르트적 질문을 서슴없이 던졌던 <공각기동대>는, 식상한 표현을 구태여 빌려보자면 당대의 ‘컬트영화’가 되었다. <매트릭스>의 워쇼스키 형제를 위시한 서구 감독들은 인터뷰에서, <공각기동대>에서 얼마나 큰 영향을 받았는지 토로하기도 했고 미국과 유럽에서는 기록적인 DVD 판매수익을 올렸다. 일본 내에서 겨우 12만 관객을 동원했던 <공각기동대>는 그렇게 부활했다. 부활이라고? 그랬다. 그것은 부활이었다. 일본 대중에게 <공각기동대>는- 오토모 가쓰히로의 <아키라>처럼- 외국에서의 컬트적 인기로 역수입된 문화적 상품의 사례 중 하나였다. 일본 애니메이션계는 “그동안 <스타워즈>나 <블레이드 러너>로 일본이 할리우드에 졌던 빚을 <공각기동대>로 다 갚았다”는 평가를 뒤늦게 내렸고, 오타쿠들의 신화였던 오시이 마모루는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거장으로 대중에게도 재평가받기 시작했다. 사실, 오시이 마모루에 대한 일본 외(특히 한국) 비평가들과 마니아들의 평가는 좀 호들갑스러운 데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공각기동대>는 확실히 애니메이션의 신천지를 발견한 작품 중 하나였고, 일본 내 흥행성적의 부진으로 잊혀져버렸다면 애석한 일이었을 테다.

압도적인 물량으로 완성된 호사스러운 CG 비주얼

열광적인 팬덤현상으로 부활한 <공각기동대>였으니 속편은 언젠가는 나와야만 하는 것이었다. 특히나 일본 장편애니메이션 시장이 극도로 위축되기 시작한 최근 10여년간, 미야자키 하야오(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들만이 승승장구하던 암흑의 시기에 오시이 마모루 감독에게 건 기대는 적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공각기동대>의 원작자인 시로 마사무네가 2001년에 속편을 간행한 것은 후속편에 대한 신호탄처럼 여겨졌다. 오시이 마모루의 프로덕션 IG에서 <공각기동대>를 TV용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호평을 받아낸 것도 팬들의 기대를 더했다. 물론 오시이 마모루의 완벽주의가 간단하게 후속편을 내놓으리라는 것은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고, <공각기동대>의 후속편 <이노센스>가 마침내 완성을 본 것은 제작이 개시된 2000년으로부터 4년의 세월이 흐른 2004년이었다. 저렴한 자본으로 완성된 전작과 달리 20억엔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된 <이노센스>는,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에서는 일종의 커다란 이벤트로 여겨졌다. 사실 <이노센스>는 <공각기동대>보다 더 협소한 세계의 협소한 사건을 다루는 영화다. 전편으로부터 3년이 지난 2032년. 인간의 모습을 한 로봇(안드로이드)이 인간을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전편에서 쿠사나기 소좌의 파트너였던 공안 9과의 형사 바트가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하고, 로봇 제조회사인 로커스 솔루스사가 사건에 어떤 식으로든 관련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추리의 과정은 필연적으로 쿠사나기 소좌의 유령과 관객을 대면시키기 위한 일종의 통과제의다.

<이노센스> 단어장

미궁 속을 안내할 10가지의 키워드

사이보그 신체의 일부나 전체가 인공기관으로 대체된 인간. 만일 전신이 완전히 인공기관으로 대체되었다 하더라도 근본적인 태생이 인간이었던 경우에는 사이보그로 분류된다(그리고 인간과 똑같은 대우를 받는다). 쿠사나기 소좌가 그 예다.

안드로이드 인형이라 불리는 로봇. 사이보그와는 달리 뇌가 아닌 인공지능(AI)이 탑재되어 있다. 자율적인 행동이 가능하지만 ‘고스트’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한다.

고스트 인간(사이보그)과 로봇(안드로이드)을 구분짓는 것으로 ‘영혼’을 의미한다.

고스트 더빙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고스트를 로봇(안드로이드)에 복사하는 기술. 복사하고 나면 원전은 파괴된다는 것이 밝혀져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가이노이드 소녀형 안드로이드.

섹서로이드 섹스용 안드로이드.

전뇌 뇌에 마이크로 머신을 주입하고 목부분에 입출력 단자를 연결해 말이나 표현을 거치지 않고서도 직접 외부와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만들어진 뇌(<매트릭스>에 등장했던, 목의 뒷부분에 케이블로 연결함으로써 기계에 의해 단기간에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장비를 떠올리면 된다).

전뇌통신 각 전뇌들이 모인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상호 통신을 하는 것.

고스트 해킹 전뇌통신을 이용하면 자신의 고스트가 타인에게 드러나기 때문에 악의를 가진 타인에 의해 전뇌 자체를 지배당할 수도 있다. <이노센스>에서 바트와 토그사가 ‘킴의 저택’에서 당했던 것이 고스트 해킹의 예이다.

해커 타인의 전뇌에 침입해서 정보나 대상을 조작하는 기술을 지닌 범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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