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관객을 확 잡아끄는 것은 무시무시한 물량으로 완성된 영화의 비주얼이다. “뉴욕이야말로 고딕의 마을이었다. 솟아오른 마천루의 단호한 수직선의 거리. 어디를 걸어도 대면하는 것은 수직으로 뻗은 벽뿐으로, 원경없는 폐쇄된 거리. 고층건물의 틈으로부터 들이비치는 거대한 반사광이 근대적인 거리를 거대한 사원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공각기동대>의 로케이션 헌팅으로 방문했던 홍콩에서, 굉장한 소나기를 만나 대로가 일순간 운하처럼 변모했던 것을 보고 <공각기동대>의 미래도시를 창조했던 그 감각이 되살아났다”는 오시이 마모루의 말처럼, 현대 홍콩을 도쿄만에 옮겨놓은 듯했던 전편의 미래도시는 좀더 인공적인 고딕의 메트로폴리스 이미지로 <스왈로우 테일>과 <킬 빌>의 프로덕션디자인을 담당했던 다네다 요헤이의 손에 의해 완성되었다. 전편의 배경이 전형적인 사이버 펑크 모험담의 세계였다면, <이노센스>의 도시는 어둠침침한 누아르의 세계가 더 잘 어울리는 장소다. <이노센스>는 <매트릭스>와 <제5원소> 등이 무작위로 카피했던 자신의 창조물을 거슬러올라가, 한번도 그가 영향력을 부인한 적 없었던 <블레이드 러너>의 세계를 또다시 오마주한 듯하다(주연인 바트 역시 전편과는 상당히 다른 - 마치 <블레이드 러너>의 데커드 형사를 연상시키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가장 괄목할 만한 특징은, 오시이 마모루가 본격적으로 CG장면을 과감하게 삽입했다는 점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마저 <원령공주>로 부분적 3D를 도입하기 시작했고, 최근 개봉되어 화제를 모았던 시로 마사무네 원작의 <애플시드>(アップルシ-ド)가 모션캡처로 사람의 움직임을 캡처해 CG화한 다음 애니메이션 셀을 제조하는 툰쉐이딩(Toonshading)기술을 활용한 것처럼 일본 애니메이션계에서도 3D 도입은 필수불가결한 상황에 이르렀다. 변화에 굼뜬 보수적인 일본도 슬슬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오시이 마모루는 주저하지 않았다. <이노센스>는 CG로 창조한 3D 화면들이 전례없이 많은 장면들에서 등장한다. 몇몇 장면들에서는 지나친 CG 사용이 전체적인 미장센을 분열시키는 것으로 보일 정도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과 몽상의 어긋한 공간을 표현한 것”이라는 오시이 마모루의 의도에는 적절하게 부합한다.
과연 오시이 마모루는 과연 ‘대중적인’ 작품을 만들었나
그러나 엄청난 규모의 배급과 홍보에도 불구하고 <이노센스>의 일본 내 흥행성적은 좋지 못했다. 뚜껑을 열고봤더니 <이노센스>는 <공각기동대>보다도 더 개인적이고 관념적인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이 극장 배급으로 얻는 수익은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 극장 개봉은 일종의 프로모션일 뿐 DVD나 TV의 판권으로 제작비를 충당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10여년을 바라보며 수익을 맞출 생각이다”라는 이시카와 프로듀서는 세계시장에서의 DVD 판매와 잠재적인 부가수익이 오랫동안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프로덕션 IG가 <이노센스>로 인해 재정적인 위기에 처해 있다는 소식도 있다. 해외 세일즈를 위한 발걸음은 더 바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상 처음으로 올해 칸영화제에 경쟁작으로 참여하게 된 것은 장밋빛 전망을 실어주었다(실제로 <이노센스>의 경쟁작 출품이 드림웍스의 막후지원에 상당 부분 힘을 얻은 결과라는 풍문이 칸영화제 마켓에서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전폭적으로 오시이 마모루의 전작들을 지원했던 서구 비평계도 찬반양론으로 나뉘었다. “철학적인 설교로 가득한 비관적인 이야기는 이 영화를 ‘아니메 팬’들로만 한정시키게 만들 것이다”(<할리우드 리포터>), “오시이 마모루는 <공각기동대>로 부렸던 마술을 다시 행하는 데 실패했다. 너무 말이 많고, 반복적이며, 새로운 고민없이 같은 주제만을 되새김질한다”(<버라이어티>) 같은 혹평들과 “이 영화의 순결한(Innocent) 페이소스는 인간이 되고 싶은 사이보그의 그것이 아니다. 이것은 실사의 생명을 얻고자 몸부림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의 것이다. 나를 팬보이(오타쿠)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이노센스>는 내가 지금까지 본 최고의 아니메다”(<빌리지 보이스>)라는 호평까지 다양한 의견들이 접전을 벌이고 있다.
오시이 마모루 감독 서면 인터뷰“
내 작품은 관념적인게 아니라 본질적인 것일 뿐”-여전히 관념적이라는 일반 대중의 평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이번 작품이 어렵다고도 관념적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작품에서 다룬 테마가 일반적이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일반적이지 않아도 본질적이며 보편적이고, 무엇보다 현대적인 테마라는 점에서는 자신이 있다. 영화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의 신체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는 것이 곤란하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화제로 삼기 어려운 것이야말로 영화가 표현해야 할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세상사를 단순화하는 것은 정치가들이나 하는 일이지 영화가 할 일은 아니다.
-가장 애정이 가거나 까다로웠던 장면은 어떤 것인가.
=바트의 분신인 바셋 하운드(개)의 표정에는 최대한 주의를 기울였다. 개가 개답게 보인다는 것은 인형(로봇을 의미)이 인형으로서 그려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작품에서는 특히 중요한 포인트였다.
-<공각기동대> <패트레이버>처럼 당신은 원전들을 재구성해서 새로운 작품을 만든다. 영화의 아이디어를 어떻게 생각해내나.
=항상 여러 가지를 멍하니 생각하며 지낸다. 그러다보니 현실이 임시변통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된다.
-<이노센스>로 당신이 본질적으로 말하고 싶어하는 주제는 무엇인가.
=인간이나 인간성이라 불리는 것이 절대적인 존재는 아니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 고정화시키고 절대시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성 상실을 부르는 원인이 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미완성이고 미숙한 존재에 지나지 않으며, 그 점에서 인간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인형이나 개에 비해서 크게 모자란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무언가를 고정시키는 게 아니라 변화시키는 것에 의해서만 인간성이 실현되는 건 아닐까. 우리는 인형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당신이 테크놀로지와 세계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인지 아니면 낙관적인지 읽어내기 애매할 때가 있다.
=테크놀로지 그 자체에 대해 낙관적이건 비관적이건 간에 어느 쪽이 옳은 태도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여전히 테크놀로지가 인간을 변화시킬 가능성은 믿고 있지만, 그것을 선이라거나 악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따라 다를 것이다.
-<이노센스>를 보게 될 한국 관객에게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마 한글자막이 나오겠지만 너무 열심히 읽지는 말아달라. <이노센스>에서 대사의 역할은 매우 애매한 것이라서 영화의 이해를 위해 반드시 중요하다고는 볼 수 없다.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