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체 게바라의 젊은 날,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미리보기 [1]
2004-10-13
글 : 박혜명

월터 살레스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미리보기

‘게바라’가 ‘체 게바라’가 되기까지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 남미대륙과 남미인들에 대해 그 누구보다 순수하고 뜨거운 애정만 갖고 자기 고국 땅을 넘어서서 쿠바로, 볼리비아로 건너간 혁명 지도자.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혁명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그를 영화화하기란 어떤 면에서 참 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월터 살레스의 체 게바라 전기는 그를 영광스럽게 기리지 않는다. 살레스의 신작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쿠바혁명이 성공하는 해로부터 일곱번 거슬러올라가, 오토바이 한대만을 이끌고 친구와 무작정 길을 떠난 한 청년의 남미대륙 여행기를 소박하고 깨끗하게 그리는 영화다. 지난 9월9일부터 19일까지 열린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월터 살레스를 만났다. 거기서 이루어진 단독 인터뷰와 자료들 그리고 게바라가 쓴 원작을 토대로, 게바라-그라나도 혹은 살레스 일행의 남미여행에 미리 동참할 수 있는 티켓을 끊어왔다. 11월5일로 예정된 국내개봉일보다는 조금 서둘러 도착했다. / 편집자

“삶에서 9개월이란 시간 동안에 사람은, 고결히 철학을 명상하는 것에서부터 절박히 밥 한 그릇을 갈구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생각을 할 수 있다. (중략)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은 한때 그의 발이 아르헨티나 땅을 밟고 있었던 시절을 떠나보냈다. 이 기록을 재구성하고 다듬어내고 있는 사람은 더이상 내가 아니다. 적어도 과거의 나는 아니다. ‘우리의 아메리카’ 땅을 유랑함으로써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이 변했다. (중략) 이제 나는 내 자신과 함께 과거의 나를 떠나보낼 것이다.” -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 <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즈-남미 여행에 관한 기록>(The Motorcycle Diaries-Notes On A Latin American Journey) 중에서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1951년 12월, 에르네스토 게바라와 알베르토 그라나도라는 두 청년이 무작정 짐을 꾸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가벼운 배낭여행을 떠나듯 그라나도는 흥겨운 노래마저 부른다. “잘 가라, 평생의 친구들아. 사랑하는 옛 동무들아.” 체 게바라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이 장면에서 게바라의 내레이션이 들려주는(이것이 게바라의 내레이션이라는 것도 몇분이 지나야 깨닫는다) 여행의 세부 항목들, 특히 이 여행의 목적이 무엇인가는 흘려듣기가 쉽다. 그것이 갑자기 미치도록 궁금해진다면 아마 중반부가 지나면서부터일 것이다. 혈기왕성하고 장난기가 서린 두 젊은이의 유쾌하고도 적당히 감동적인 여행기가 될 듯 길을 떠나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시종 덜컹거리며 제 속도를 내지 못하던 그들의 오토바이 ‘포데로사’처럼 아주 천천히, 시작과는 다른 결말을 향해 가는 로드무비다. 혁명을 가슴에 품기 전, ‘체’라고 불리기 전의 게바라가 어떠한 인간이었는지를 절친한 친구와의 여정을 통해 그려낸 이 영화는 <필름메이커>의 표현처럼 “이후 사정없이 뻗어나갈 대서사시에 대한 사적이고 친밀한 전사(前史)”다.

월터 살레스 감독이 “남미인들에게조차 가장 신성한 영역”이라고 표현한 인물의, 그것도 혁명이라는 드라마틱한 소재 대신 심심한 여행기의 영화화를 부추긴 이는 선댄스영화제를 통해 살레스의 칸 황금종려상 수상작 <중앙역>의 시나리오를 발굴한 로버트 레드퍼드다. “세상의 끝이나 다름없는 세계” 라틴아메리카에 대해 이미 오래전부터 애정을 쌓아왔던 레드퍼드는 남미인인 살레스도 확신하지 못한 이 프로젝트를 포기하지 않았다. “난 레드퍼드에게 이 영화가 스페인어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과 비전문배우들을 전문배우들과 함께 써야 한다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고, 그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3년의 조사작업과 2년여의 시나리오 작업을 거친 뒤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아무런 구체적 계획없이 시작된 두 청년의 여행처럼, 그 자체로 대담한 여행을 시작했다. 게바라와 그라나도의 일정을 고스란히 쫓아 두번의 로케이션 헌팅을 떠났던 월터 살레스 감독은 그들이 밟았던 길 위에서 50년 전 쓰여진 일지의 묘사와 별반 다르지 않은 남미의 현실을 마주했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역사적인 영화가 아니다. 남미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이자 현재에 대한 이야기다.” 이탈리안 네오리얼리즘과 브라질 시네마노보의 정신을 계승한 적자로서 자신이 이 영화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달은 살레스 감독은 그제야 확신을 가졌다. 그리고 꼼꼼한 시대 묘사보다는 길 위에서 마주칠 즉흥적 사건들에 더 많은 기대를 품고, 시나리오의 순서대로 촬영을 시작했다.

1952년 1월31일 산 마르틴 데 로스 안데스, 아르헨티나

“사랑하는 어머니께. (중략) 우리 얼굴이 점점 숯덩이를 닮아가네요. 지나치는 집들마다 전부 정원이 있는 이곳에서 우린 음식과 잘 곳과 뭐든 준다는 것들은 다 찾아다니고 있어요. 그러다 결국, 페론주의자의 목장에 가게 됐는데, 내가 그 사람 후두부에 수포가 발전해서 생긴 종양을 진단해줬어요.”

게바라의 여행일지와 함께 그라나도의 여행일지 <체와 함께한 남미 여행기>(Con El Che Por Sudamerica)를 균형있게 참고한 살레스의 영화는, 이 장면에 게바라와 그라나도가 종양 진단을 두고 말다툼을 벌이는 모습을 덧붙인다. 게바라가 가감없이 진단을 내린 것과 달리 그라나도는 행여나 주인의 기분을 망치면 숙식을 얻지 못하게 될까봐 그것이 낭종이라고 거짓말한다. 대비되는 두 사람의 성격이 불러오는 사소한 갈등과 시원스런 화해는 극 초반에 특히 자주 등장한다. 살레스는 이 영화가 두 젊은이의 살가운 우정으로 지속된 여정이라는 점도 놓치지 않고 있다. “두 사람의 일기 속에 살아 있는 유머를 살리려고 노력했다”는 감독은 친밀한 친구 사이에 오갈 수 있는 따뜻한 투닥거림을 너무 깊지 않으면서도 동떨어지지 않은 시선으로 지켜본다. 덕분에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인물 묘사에 있어서 보통의 전기영화들이 종종 보여주는 상투적인 과장을 슬기롭게 피해간다.

1952년 2월26일 로스 앙헬레스, 칠레

“조금 더 가서, 우리가 적당한 속도로 가파른 커브길에 들어섰을 때, 브레이크 나사가 빠져나갔다. 커브길을 돌자마자 소 머리가 하나 보이더니 곧 십수 마리의 소들이 나타났다. 핸드 브레이크를 급히 돌렸지만, 대강 붙어 있었던 모양인지 그마저 고장나버렸다. (중략) 첫 번째 가파른 언덕에서, 하고 많은 길 중에서도 하필 그곳에서, 포데로사는 마침내 자기 영혼을 포기해버렸다.”

친절한 독일인 정비사는 아르헨티나 청년들에게 포데로사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죽은 포데로사의 몸 위에 흰 천을 곱게 덮어 떠나보낸 그곳에서, 두 사람은 그들이 아르헨티나 출신임을 단번에 알아보는 밝고 예쁜 칠레인 자매를 만났다. “그걸 어떻게 아셨죠?” “말할 때마다 ‘체’를 붙이잖아요.” 이 만남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없지만, 이 무렵 게바라의 일기에는 ‘리틀 체와 빅 체(알베르토와 나)’라는 구절이 쓰여 있다. 게바라가 이 애칭을 본격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더 훗날의 일이다. 게바라를 연기한 멕시코 배우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은, 칠레인 학생들이었던 이 비전문배우들이 ‘체’가 섞인 자신의 말버릇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아르헨티나식 스페인어를 훈련받았다. 그리고 아르헨티나 연극배우 출신인 로드리고 드 라 세르나는 그라나도 역을 위해 코르도바 악센트를 배웠다. 오디션을 통해 그를 캐스팅한 살레스 감독도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로드리고 드 라 세르나는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 드 라 세르나의 팔촌뻘 되는 친척이다.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