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체 게바라의 젊은 날,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미리보기 [2]
2004-10-13
글 : 박혜명

1952년 3월7일 발파라이소, 칠레

“깊은 불안함이 나를 엄습했다. 어떤 것도 느낄 수 없을 것 같았다. 난 내 자신에 대해 두려워지기 시작했고 눈물로 편지를 쓰기 시작했지만, 쓸 수 없었다. 해봐야 소용없는 일이었다. (중략) 난 이 순간까지도 내가 그녀를 사랑한다고 믿었다. 내가 아무런 존재도 아니란 걸 깨닫는 이 순간까지도. 내 맘을 다해 그녀를 다시 불러와야만 했다. 그녀를 다시 얻기 위해 싸워야만 했다. 그녀는 내 거야, 내 거야….”

게바라는, 자신의 첫사랑이었던 치치나로부터 이별을 고함받았다. 영화는 이 순간을 아주 적막하게 표현한다. 게바라의 말 한마디나 몸짓 대신 감독은 그의 어깨 너머로 그림자가 드리워진 옆얼굴을, 그의 등 너머로 그 등보다 넓은 바다를 가깝지만 먼 듯 비춘다. 이 대목과 관련해 <사이트 앤 사운드>는 “만약 게바라가 치치나로부터 버림받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라는 우문을 던졌다. 살레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게바라가 오늘날 울림을 주는 건 그의 모험이 결코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삶의 매 순간, 미지의 것을 밝히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었다. 16살에 그는 작은 엔진을 사서 자전거에 달고 아르헨티나 북부로 여행을 떠났다. 23살엔 그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이 유럽에 더 관심을 가질 때 남미로 여행을 했다. 체 게바라는, 시니컬함에 눈이 가려 사람들이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시대에 우리가 가진 진정한 이상주의자다.”

1952년 4월2일 쿠스코, 페루

“쿠스코를 가장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환기’(喚起)다. (중략) 슬프게도,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무식한 정복자들의 손에 파괴당한 요새로부터, 거칠게 무너져내린 신전들로부터, 약탈당한 성들로부터, 야만족의 얼굴로부터 쿠스코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것이 쿠스코다. 쿠스코는 당신이 전사가 되어, 잉카의 생명과 자유를 수호하길 요구하는 것이다.”

본 적도 없는 문명 잉카에 대해 게바라가 한없는 노스탤지어와 긍지를 경험한 고대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를 떠나려는데, 키 작은 원주민 소년이 살레스 감독 일행에게 다가왔다. 잉카 유적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래, 좋아. 하지만 카메라를 들고 가도 괜찮지?” “아무 거나 들고 오세요.”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서 게바라와 그라나도가 ‘세월을 아는 안내인’이라고 소개하는 돈 네스토는 그렇게 영화 속에 담겼다. 살레스 감독은 “우리가 그를 발견한 것이 아니라, 그가 우리를 발견해준 것”이라고 표현했다. 같은 날, 살레스 일행은 퀘차어밖에 할 줄 모른다는 인디언 여자들도 우연히 만났다. 어쩌면 게바라와 그라나도가 50년 전 바로 그 자리에서 만났던 이들의 후손일지 모를 그녀들이 베르날과 로드리고에게 말을 걸었다. 두 배우는 캐릭터에 몰입돼 즉흥적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난 고정된 시나리오를 믿지 않는다. 특히 로드무비에 있어서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늘 문을 열어두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이 당신을 바꾸고 영화의 결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놔야 한다는 것이다.”

알베르토 그라나도 인터뷰

“마치 내가 지금 막 그 오토바이에서 내린 것만 같다”

올해로 여든세살인 알베르토 그라나도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가 영화화되는 데 있어 결정적일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다. 두 사람이 함께했던 여정에서 남은 이 한 사람은, 월터 살레스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 호세 리베라가 4년 전 쿠바 아바나로 날아가 처음 만났을 때 살레스의 표현에 따르면 “놀라울 만큼 건강했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좋은 기억력”을 갖고 있었다 한다. 알베르토 그라나도는 그들의 여행이 왜 중요했는지, 그들의 미래에 얼마나 결정적이었는지를 살레스와 리베라에게 이해시켰다. 예전의 사람들과 예전의 일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끔 눈물이 난다는,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의 남미여행 동반자 알베르토 그라나도와의 인터뷰를 싣는다.

-당신과 게바라와의 여행기가 영화로 만들어진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다소 놀랍다. 두 젊은이가 라틴아메리카를 발견하기 위해 떠났던 여행이 이런 결과를 낳을 줄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물론 에르네스토와 내가 우리의 신념에 따라 끊임없이 활동하고 살아왔다는 점은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우린 항상 우리가 해야 한다고 믿는 대로 행하고 살았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말이다. 이 영화가 왜 만들어져야 하는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결코 기대해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게바라와 함께 거쳐간 장소들을 되돌아보니 어떠한가.

=(웃음) 기쁘다. 그리고 내 삶에 대해 감사한다. 삶이 나에게 내려준 모든 것들에 대해 감사한다.

-이 영화에서 오토바이(영화에서는 게바라와 그라나도가 여행 당시 탄 것과 동일한 종류의 오토바이를 사용한다)를 보았을 때 어땠는지.

=(웃음) 물론 감동받았다. 정말 사랑스러웠다. 우리가 오토바이와 이별하는 장면을 감독이 정말 잘 찍었다고 생각한다. 마치 내가 지금 막 그 오토바이를 뒤로 하고 떠난 것처럼 감동적이었다. 그 가여운 오토바이를 천으로 덮어 씌우고 떠날 때의 느낌이 생생하다. 영화를 보다가 두 장면에서 울었다. 하나는 오토바이와 이별할 때였고, 또 하나는 에르네스토가 아마존 강을 건널 때였다.

-당신과 게바라의 여행이 이 영화 속 여행과 같거나 다른 점은 무엇인가.

=우리의 여행이 상징하는 것은 나와 체, 나와 쿠바혁명의 관계이다. 난 평생 그 여행을 기억했다. 비행기나 오토바이를 볼 때마다 그때가 떠오른다. 월터 살레스는 실제로 50년대에 내가 어땠는지를 아주 정확하게 이해한 듯하다.

-실제 여행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나.

=물론이다. 난 그 여행에서 많은 우연들을 경험했다. 이 영화 속에 나오는 장소들을 보면서 온갖 사소한 기억들과 내가 겪은 모험과 내가 만났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게다가 체 게바라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지 그의 연설과 정치적 삶만 알 게 아니라 그의 배경도 알 필요가 있다. 그가 어떻게 자랐는지, 그의 여행이 어떠했는지 하는 것들 말이다. 이 모든 것들에 힘입어 나는 아직도 그 여행을 잊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많다. 하지만 나에게 가장 감동적이었던 순간은 산 파블로의 나환자들이 우리를 배웅해줄 때였다. 그 순간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그들은 보트를 타고 의사와 간호사들이 있는 곳으로 건너왔다. 비가 오는 날이었다. 환자들은 우리를 위해 음악을 연주했고, 작별의 인사를 건넸고, 우리가 그들을 얼마나 보통 사람들처럼 대해줬는가에 대해 그리고 그들이 결코 그걸 잊을 수 없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린 너무 감동을 받아서 할말을 잃고 있었다. 조명이 나빠서 사진을 찍지 못했다는 게 유일한 후회다.

-아직도 오토바이를 탈수 있나.

=이제는 탈 수 없다. 일전에 가엘이 나를 오토바이에 태운 적이 있다. 같이 운전을 하긴 했지만 사실 내가 운전사는 아니었다. 오토바이를 타기에 여든 살은 너무 늙은 나이다. (웃음)

※이 인터뷰는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열린 기자회견 인터뷰와 해외 인터뷰 기사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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