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역도산> 미리 보기 [3] - 주요 장면 코멘터리 ①
2004-12-09
글 : 이영진
송해성 감독과 김형구 촬영감독이 말하는 <역도산>의 아홉 장면

잊지못할 롱테이크 액션의 고통

송해성 감독과 김형구 촬영감독은 <역도산> 촬영을 이끈 쌍두마차. “드라마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촬영감독”, “통솔력이 대단한 연출자”라고 서로를 인정하는 이들은 <역도산>이 첫 공동 작업이지만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뜻을 읽을 수 있을 만큼 현장에서 호흡이 좋았다고 한다. 개봉을 앞두고 긴장과 흥분이 교차한다는 두 사람으로부터 <역도산>의 주요 장면 코멘터리와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다.

# 1 죽음의 위기를 맞이한 역도산

36시간 연속촬영, 미리 자둘까?

송해성 l 당시 일본에서 가장 잘 나가던 클럽 라틴 쿼터에서 역도산은 칼을 맞습니다. 영화의 도입부와 마지막에 배치될 이 장면 촬영은 신주쿠의 한 클럽에서 진행됐습니다. 60년대 클럽 분위기가 나는 곳을 찾아다녔는데 대부분이 연신내 카바레처럼 생겼더라고요.

김형구 l 저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장면이네요. 천장이 스펀지로 만든 흡음장치로 덮여 있어서 라이트를 달 곳이 없었거든요. 라이팅이 충분히 안 돼서 채도를 낮추려고 일부러 스모그를 많이 뿌려야 했습니다. 영화를 보면 나이트클럽 분위기 내려고 스모그 뿌렸구나 생각하시겠지만.

송해성 l 스탭들의 표정이 죽을상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이날부터 13회 촬영이 연달아 잡혀 있었거든요. 게다가 이 장면의 콜 시트(촬영 개시 및 종료시간 등의 사항들이 적힌 종이)엔 36시간 연속촬영이라고 되어 있었으니 스탭들 중엔 미리 쓰러져서 자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김형구 l 36시간 촬영은 저도 반대했죠. 졸면서 찍을지 모를 일이니. (웃음)

송해성 l 설경구가 일본말을 유창하게 구사하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컷을 나누지 않고 갔는데 스테디캠을 든 일본 기사가 초보라서 12번이나 테이크를 반복해야 했고 그 때문에 모두들 힘들어했죠. 그래도 결국 때깔 좋은 그림을 얻어냈습니다.

김형구 l 화장실 장면도 빼놓을 수 없죠. 칼로 찌른 야쿠자 역의 배우도 일본에서 유명한 배우인데 설경구한테 많이 맞았죠.

송해성 l 연기라기보다 폭행이죠. 애초에 아사노 다다노부를 캐스팅하려고 했는데. (웃음) 결국 야마모토 다로가 출연하게 됐죠. 경구가 봐주지 않고 진짜로 때릴 것은 분명하고 그래서 리허설 없이 찍은 장면인데 뺨을 날린 다음부터는 정신없더군요. 정두홍 무술감독이 옆에서 사람 패는 연기, 설경구가 최고라고 하던데 정말이에요. (웃음)

김형구 l 한번에 끝나진 않았죠. 저 장면.

송해성 l 야마모토 다로와 인사하라고 했더니 ‘쟤 나한테 X나 맞을 건데 친해지면 인정 생겨’라며 경구가 싫다고 하더군요. 얼굴이 이만큼 부은 걸 보면서도 미안하지만 야마모토상에게 한번만 더 가자고 했습니다. 착한 일본 배우들인지라 순순히 그러겠다고 하더군요. 근데 사람 아닙니까. 막상 촬영 들어가니 본능적으로 주먹을 피하더라고요.

# 2 역도산, 꿈과 시련의 시기

눈물은 안 흘리고 침만 흘리데

송해성 l 히로시마에서 촬영했죠. 실제 경기장은 아니고 세트입니다. 일본은 스모 도장을 굉장히 신성시합니다. 그 안에 여자는 들어가지 못할 정도입니다. 남자들도 소리를 지르지 못합니다. 대여는 더욱 힘들죠. 국기관이라는 스모 경기장을 한번 구경하려고 했는데 그것조차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산속에 세트를 만들어야 했죠. 이 장면을 찍을 때는 비가 왔는데 개인적으로 역도산이 요코즈나가 되어서 맘껏 웃으면 살겠다고 말하는 걸 보면서 처음으로 가슴이 아팠습니다. 아, 설경구도 고생 많이 했습니다. 선배들한테 구타당하는 장면에서 상대배우가 연기가 어설퍼서 테이크를 여러 번 갔거든요. 우리 영화는 역도산이라는 인물에게 과도할 정도로 카메라가 들어가는데 이 장면도 빅 클로즈업으로 마무리됩니다. 눈물 흘리는 걸 잡으려고 했는데 모니터 보니 침만 흘리더라고요. (웃음)

김형구 l 이 스모장면은 역도산이 시련을 당하는 시기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꿈이 남아 있었던 시기죠. 그래서 다양한 컬러의 느낌을 살리려고 했습니다. 역도산이 죽음을 맞게 되는 순간을 현재라고 치면 전체 영화의 전개를 현재-과거-대과거-과거-현재의 흐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종의 유턴 구조의 설계죠. 현재는 탈색된 느낌으로, 과거는 풍부한 컬러를 주려고 했습니다. 편집과정에서 다소 흐트러지긴 했지만 그런 느낌이 남아 있을 겁니다.

# 3 역도산과 연인 아야와의 첫 만남

게이샤의 춤, 꼭 찍고 말 테야

송해성 l 역도산이 대부인 칸노 회장과 연인인 아야를 처음으로 조우하는 장면입니다. 아야 역을 맡은 나카타니 미키가 게이샤를 연기하려면 진짜 요정을 가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촬영 전에 제의해서 알아봤더니 쉽지가 않더군요. 최고급 요정에 가려면 2시간에 2천만원이라는 비용을 감당해야 하고, 돈을 낸다고 하더라도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나카타니 미키가 6, 7년 동안 광고 모델로 나섰던 녹차 회사의 사장이 전화를 해줘서 갈 수 있었는데 게이샤들의 춤을 보는 순간 무모하다고 욕먹더라도 이 장면을 영화에서 재연해야겠구나 싶었습니다. 결국 대여료만 1200만원을 주고 요정 하나를 빌릴 수 있었습니다.

김형구 l 송해성 l 감독이 굉장히 집착한 장면이죠. (웃음) 저기 사진 뒤편에 보시면 소나무 그려진 발이 있는데 실제로는 저게 스르르 올라가면 공연이 시작된다고 하죠. 무대가 미리부터 보이면 안 된다고 감독은 생각하고 있었고, 그래서 저게 꼭 있어야 한다고 해서, 스탭들이 만들어서 매단 것입니다. 이 신에서 아야는 화려하게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프로미스트라는 조금 판타스틱한 느낌이 나는 필터를 썼습니다. 이 필터는 <박봉곤 가출사건> 때 쓰고 그뒤론 촌스럽다고 해서 안 쓰다가 첸카이거와 작업할 때 한번 쓴 적 있습니다. 사진으로 봐도 게이샤들만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죠.

송해성 l 나카타니 미키가 연주하는 사미센이라고 불리는 일본 악기는 소리가 굉장히 시끄러운데 촬영 때 계속 들어야 하니까 짜증이 나더군요. (웃음) 자정 넘어서 게이샤 부분을 죽어라고 찍고 있는데 일본 제작부들이 새벽 4시까지 요정을 비워줘야 한다고 하기에 충격을 받았죠. 그때부터 있는 자식 없는 자식 다 불러내서 욕해가며 찍기 시작했는데 김형구 l 촬영감독님이 저보고 ‘천천히 찍어, 천천히. 걱정말고’ 그러시더라고요.

김형구 l 전 그 다음 촬영장면을 간단히 처리할 수 있을 거라고 봤거든요. 요정에서 서너명의 인물들이 앉아 있는 거니까 심플하게 라이트 하나만 달아놓으면 되겠다 싶었는데 감독으로선 아마도 대화장면 이전에 이들 일행이 긴 복도를 지나는 장면을 찍을 생각을 했을 테고 그러려면 라이팅에 시간이 꽤 많이 들어갈 것이라고 판단했을 겁니다. 그랬으니 뜻밖의 통보에 과민할 수밖에 없었겠죠. 김선아 프로듀서는 그런 감독 보고서 놀라서 다음날에라도 추가촬영을 할 수 있는지 허둥지둥 스케줄을 알아보러 다녀야 했죠. (웃음)

# 4 역도산과 아야의 행복했던 한때

가짜 벚꽃에, 강풍기는 돌고, 그림은 예쁜데…

김형구 l 독특한 신사입니다. 붉은색이 좀 튀어서 걱정했는데 극중 역도산과 아야의 행복했던 시절이라 돋보여도 괜찮겠다 싶어서 촬영을 결정했죠. 한여름이라 벚꽃이 있을 리 없습니다. 뒤에 있는 건 그러니까 가짜 사쿠라예요.

송해성 l 라스트신이고, 애초에 이 영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였던 역도산의 사진에서 힌트를 얻어 만든 장면입니다. 벚꽃은 직접 손으로 일일이 잘라서 만든 것인데 한 조각에 우리 돈으로 1천원이라서 한번 날리고 다시 쓸어담아서 또 날리고 그랬습니다. 이날 촬영 때 설경구가 화가 많이 났었죠. 가슴 아프지만 그래도 귀엽고 깜찍한, 역도산의 가장 선한 웃음을 보여달라고 좀 복잡한 주문을 했었는데 벚꽃 날리느라 강풍기를 돌려야 했고 결국 설경구가 제게 그러더라고요. 씨발, 영화가 감정을 잡아야지, 예쁜 그림만 담으려고 한다고. 대사도 많은 장면인데 강풍기를 틀어대니 감정 잡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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