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픽사의 여섯 번째 장편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에 대한 모든 것 [2]
2004-12-16
글 : 김혜리

실사 영화에 뒤지지 않는 정교한 액션 신

사실 <인크레더블>은 브래드 버드가 <아이언 자이언트>의 제작사 워너에 제안했다 거절당한 아이템이다. 말 안 통하는 상사를 벽에 메다꽂는 미스터 인크레더블처럼 할리우드에서 좌절을 거듭한 브래드 버드는 칼아츠 동기 존 래스터가 이끄는 픽사에서 12년 묵은 아이디어를 실현하게 되자 의욕과 조바심으로 꽤나 불타올랐던 모양이다. 늘어난 물량과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픽사의 전작과 비슷한 예산 1억4500만달러를 맞추겠다고 세밀한 준비에 몰두한 버드는, 연신 불안해했다. “그건 그렇고 높은 사람들은 내 아이디어 뜯어고치러 언제쯤 오나?”라고 묻는 경계 태세였던 그를 존 래스터는 이렇게 묘사한다. “버드는 무거운 쟁기에 묶인 경주마 같았다. 우리는 그를 풀어 언덕을 달리게 했는데 그는 자유인 줄 모르고 자꾸 쟁기 옆으로 가더라. 그러나 얼마 뒤 그는 어느 때보다 빨리 달리기 시작했다.” 브래드 버드 감독의 열의에 호응한 픽사의 스탭들은 다시 놀라운 스트레칭을 해냈다.

우선, <인크레더블>은 인간을 주인공으로 한 픽사의 첫 작품이다. 흙과 식물로 둘러싸인 <벅’스 라이프>의 유기적 환경, <몬스터 주식회사>의 털, <니모를 찾아서>의 물에 이은 이 기술적 도전을 해결한 픽사의 방식은 픽사애니메이션을 아우르는 철학과 통한다. CG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과 달리 픽사는 결코 CG로 실사 같은 인간 이미지를 만드는 것을 궁극의 목표로 삼지 않는다. 한마디로 “25센트면 진짜 오렌지를 살 수 있는데 2천만달러를 들여 개똥으로 오렌지의 복제를 만들 필요가 어딨나?”라는 입장이다. <인크레더블>의 인간 캐릭터들은 <화이널 판타지>의 어색한 밀랍인형 같은 아키와 달리 모공이나 잡티가 없는 추상화된 피부와 외양을 갖고 있다. 그것은 이들이 비현실적인 세계에서 비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슈퍼히어로라는 설정과 어울린다. 픽사에 중요한 것은 애니메이션이 그리는 세계가 갖는 환상성과 추상화의 레벨에 호응하는 ‘그럼직함’이지 절대적 리얼리티가 아닌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인크레더블> 가족의 몸은 해부학적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자유롭게 늘어난다. 이는 캐릭터의 외양에 전통적 2D애니메이션에 가까운 그래픽한 디자인을 적용하고, 신체 부위를 따로 분리해 통제함으로써 몸의 일부를 순간적으로 과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크레더블>은 인체를 모방하는 동시에 왜곡하는 적정한 스타일을 발견하는 것이 애니메이션의 길이라는 픽사의 믿음을 정확히 보여준다.

슈퍼히어로에 대한 위트있는 해석 돋보여

한편 <인크레더블>은 액션 시퀀스에서 3D애니메이션의 스펙터클과 표현력이 실사 블록버스터에 꿀릴 것이 없다는 점을 힘주어 과시한다. 우선 장르의 패러디가 아니라 장르 안에서 제대로 된 액션영화를 만들어 정면 승부를 건다는 점에서 <인크레더블>은 <몬스터 주식회사>로 <슈렉>과 맞붙었던 픽사의 전통을 계승한다. 도심, 실내는 물론 물, 아열대의 섬까지 무대가 확장된 <인크레더블>에서 픽사가 만든 가상 세트는 전작의 세배. 예컨대 날쌘돌이 대쉬가 톱날처럼 날아드는 비행접시를 피해 시속 200마일로 달리는 장면에서 배경팀이 커버해야 할 땅의 넓이는 엄청났다. 결국 <인크레더블>은 픽사의 작업순서를 바꿔놓았다. 과거에는 가상 세트를 지은 다음 카메라의 위치를 정했지만, 동선이 크고 복잡한 <인크레더블>에서는 간단한 모델로 촬영부터 하고 카메라 움직임에 맞춰 세트를 지었다. 디지털 조명도 슈퍼히어로들의 활약장면에서는 통상 애니메이션보다 훨씬 명암대비를 강하게 한 스릴러의 조명설계를 따랐다. <매트릭스>나 <스타워즈>를 다시 보고 있는 듯한 <인크레더블>의 액션 시퀀스 배경은 역으로 실사영화들의 얼마나 큰 부분이 CG였는지 일깨워준다. 그렇다면, 실사영화로도 볼 수 있는 것을 애니메이션으로 굳이 표현할 때 얻을 수 있는 오락적 미학적 효과는 무엇일까? 드라마의 요구에 더욱 정밀하게 들어맞는 연기 타이밍과 장면 설계가 가능하다는 점일 것이다. 과연 0.1초를 다투며 설계한 <인크레더블>의 후반부 액션은 숨쉴 타이밍을 잡기 힘들다.

그러나 <인크레더블>이 가장 참신한 대목은 슈퍼히어로들이 활개치는 서론과 결론이 아니라 미국 중산층의 단조로운 일상에 갇힌 슈퍼히어로의 폐소공포증을 담은 영화의 제2장이다. 이는 액션을 애니메이션으로 그린 실사영화는 많았으나 교외의 일상을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한 실사영화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원색으로 요동하는 1부와 3부 사이에서 창백하게 가라앉아 있는 2장은 “범용함을 기념하는 오만 가지 방법을 발명하느라 바쁜” 사회에 대한 염증을 시각적으로 탁월하게 묘사한다. 1960년대에 상상한 미래를 청사진으로 삼았다는 세트디자인은 청결하고 병적이며 질감과 톤에 미세하게 층을 낸 흑과 백, 회색의 색채 설계와 디테일은 주류 애니메이션에서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캐릭터의 특징에서 파생된 농담과 긴장 넘치는 대화 등 픽사 고유의 장점이 가장 잘 보존된 곳도 2부다. 가족의 모험이 시작되는 시점까지 <인크레더블>의 2/3는 거의 나무랄 데가 없다. 만약 <엑스맨>과 <스파이더 맨> 시리즈가 없었다면 <인크레더블>은 대중문화가 창조한 존재 슈퍼히어로에 대한 영화 사상 가장 위트있고 사려 깊은 해석으로 기억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스토리의 개성과 캐릭터의 매력은 부족

그러나 <인크레더블>은 보는 내내 마음 한구석에서 ‘니모를 찾게’ 만든다. 픽사의 전작들보다 한층 외향적이고 행동반경이 넓으며, ‘중년의 위기’라는 원숙한 테마까지 건드린 <인크레더블>에 결여된 것은 무엇일까?

첫째 스토리의 개성이다. 어른의 고민을 다룬 것은 미덕이지만 소재가 스토리의 너비와 깊이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인크레더블>의 이야기는 냉전이 끝난 뒤 사회적 잉여집단이 된 첩보원이나 영웅들의 애환을 그린 많은 할리우드 액션물의 드라마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 실사영화를 벤치마킹하면서 그들의 설정에 내포된 정치적으로 조심스럽지 못한 태도도 <인크레더블>에 스며들었다. <인크레더블>에 쏟아진 현지의 호평들이, 세계평화를 관리하는 패밀리는 따로 있으며 인위적인 살상무기를 발명해 힘을 키우려는 자들은 가짜 영웅이고 악당이라는 상당히 불편한 전제를 무시한 것은 의외다. 픽사의 전작들은 모두 어리거나 순진한 존재가 주인공이었으나 그들의 심리적 여정은 <인크레더블>보다 복잡했다. <토이 스토리>는 사랑하다 버림받는 것과 아예 사랑을 모르는 삶의 무게를 저울질하게 했고 <니모를 찾아서>는 우리는 모두 위험을 겪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으며 그럼에도 계속 헤엄쳐야 한다는 철학을 속삭였다. 또,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강박은 한번도 픽사를 지배한 적이 없었으나 <토이 스토리> <벅’스 라이프> <니모를 찾아서>는 주인공들의 흥미진진한 모험담을 통해 인간이 작은 존재에 미칠 수 있는 폭력을 자연스럽게 가르쳤다.

<인크레더블>의 두 번째 결핍은 캐릭터의 매력이다. 물론 인크레더블 가족의 초능력은 그들의 사회적 역할이나 심리와 세심히 결부돼 있다. 자폐적인 사춘기 소녀 바이올렛은 보이지 않는 능력과 방어막을 가졌고 남편의 완력을 압도하는 주부 헬렌의 초능력은 유연성이다. 하지만 <인크레더블>의 캐릭터는 극중 역할과 기능에 연결될 뿐 퍼스낼리티까지는 이르지 못한다. 그래서 관객이 그들에게 진심으로 동화되고 연민하는 경지로 이끌지는 못한다. 이는 <인크레더블>의 또 다른 결핍인 슬픔의 부재로 통한다. 픽사의 전작은 모두 한번쯤 눈물을 떨구게 했다. <토이 스토리>의 버즈가 자신이 우주 정의의 수호자가 아니라 장난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나, 건망증 물고기 도리가 친구 말린을 잃고 그 사실까지 잊는 순간의 페이소스는 <인크레더블>에서 찾을 수 없다. 또, 애니메이션의 좋은 캐릭터는 실사영화가 결코 보여줄 수 없는 면모를 얼마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예컨대 아들 찾는 물고기나 회의하는 몬스터처럼). <인크레더블>이 내세운 슈퍼히어로는 이미 실사영화의 단골손님이 된 지 오래고, 무력한 샐러리맨과 불안한 주부는 많은 실사드라마에서 익숙한 캐릭터다. 직업과 사회적 역할을 넘어선 개성과 적당한 비현실성을 갖춘 에드나 E. 모드가 <인크레더블>에서 가장 매혹적인 캐릭터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물론 <인크레더블>의 색깔이, 자체 제작비를 감당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 성장한 픽사가 나아갈 길의 전조라고 보는 것은 속단이다. <인크레더블>에 붙여 공개된 픽사의 차기작 <자동차들>(The Cars)의 트레일러는, 픽사가 업그레이드된 기술과 연출력을 갖고 <토이 스토리> 시절의 천진한 상상력의 세계로 복귀하리라고 예고한다. 모든 사람이 첨단 무기로 무장하면 모두가 슈퍼히어로가 되고 종국에는 아무도 특별해지지 않을 거라는 <인크레더블>의 악당 신드롬의 주장은 극중에서 허튼소리로 취급된다. 픽사를 특별하게 만들었던 힘 역시 ‘무기’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는 정도는 픽사의 인재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사진제공 브에나비스타코리아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