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찾아오던 원혼의 살풀이가 잊을세라 올해도 찾아온다. 엉성한 슬래셔영화들이 관객을 희롱했던 2000년이 한국에서 호러장르가 가능한지를 실험하는 원년이었다면, <장화, 홍련>과 <4인용 식탁>이라는 귀기 서린 두 작품을 건져낸 2003년은 호러영화와 작가영화의 결합을 시도한 해였다. 지난해 초 <씨네21>은 ‘2004년 호러영화 특집’을 통해 한국 호러영화의 새로운 재능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비교적 호평을 받은 <알포인트>를 제외한 대부분은 여름 한철을 노리고 어설프게 만들어진 기획영화였고, 장르의 관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영화들이었다. 사정이 이러니, 장르영화로서 부분적인 성공을 거둔 작품들은 서로 약속이나 한 듯 ‘나는 호러영화가 아니다’라며 슬그머니 발을 뺐다.
그러나 2005년에도 한국 호러영화의 도전은 계속된다. <와니와 준하>의 섬세한 감수성으로 차기작을 기대하게 만들었던 김용균 감독의 신작 <분홍신>은 ‘여성의 욕망’을 분홍신이라는 대상에 담아 일제시대와 현재를 잇는 원혼의 지속성을 풀어내는 작품이다. <올>(가제)은 해직 노동자의 에피소드를 그린 <빵과 우유>로 크게 주목받은 감독 원신연의 작품으로 ‘가발’이라는 대상 속에 공포와 여운을 그려내려 한다. 두 작품 모두 주목받는 감독들의 예기치 않은 장르영화 도전작이며, 관습적인 호러영화의 컨벤션을 따르면서도 그것을 넘어서는 시도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박진성, 박진석 형제 감독의 <병원기담>은 기승전결의 구조를 따르지 않는 독특한 시나리오 속에서 축제와도 같은 순수한 장르적 재미를 추구하는 기대작. 또한 3편의 실패로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넌 듯했던 프랜차이즈 <여고괴담>은 드물게도 ‘목소리’를 소재로 4번째 이야기를 다시 시작한다. 그리고 이 모든 시작을 알릴 2005년의 첫 호러영화는 2월4일 개봉예정인 <레드 아이>다. 99년 <링>의 리메이크작으로 실패를 맛본 김동빈 감독은 “장르적으로도 두 번째 시도”라는 자신감과 함께, 사고로 점철된 시대의 원혼들을 ‘유령열차’에 싣고 2005년 첫 번째 살풀이를 위해 달릴 준비를 하고 있다.
한국 호러영화의 거듭되는 도전이 행복하게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을까. 많은 작품들이 현재 프리프로덕션과 캐스팅 단계이거나 본격적인 촬영 초기에 돌입한 상태지만, 한국 장르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조심스럽게 품어볼 수 있을 만큼 식단은 풍성하다. <씨네21>의 지면을 빌려 포부를 이야기하는 감독들이 “상상력이 없는 곳에는 공포도 없다”는 코난 도일의 잠언과 “호러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언제나 좋은 스토리”라는 스튜어트 고든의 조언을 깊이 새긴다면, 그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