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 55회 베를린영화제 중간결산 [2] - 이종도 기자의 중간점검 ②
2005-02-23
글 : 이종도
사진 : 이혜정

2월12일 토요일

바이링, 팬서비스 한 번 확실하네

아침부터 비가 흩뿌린다. 프레스센터에서 메일박스를 열어봤더니 게이 시티 가이드 표지모델이 벌거벗은 채 내게 웃음을 던진다. 영화제의 섬세한 배려일까 아니면 베를린 게이 공동체의 압력일까. 베를린은 담배를 피우고, 음악을 사랑하며, 거기에 게이이기까지 한 사람에게는 천국과도 같은 도시다. 구멍가게와 패스트푸드점에도 재떨이가 있으며,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20유로 안팎에 즐길 수 있고, 1992년 이후 훌륭한 게이영화에 대해 베를린영화제는 금곰상은 아니라 하더라도 테디베어상을 수여해왔다. 허겁지겁 극장으로 달려가 만난 스테파노 모르디니 감독의 <소도시, 이탈리아>는 시사회장 곳곳이 빈자리다.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가려는 젊은 부부를 늙은 사회가 훼방놓는다는 이야기는 뼈대가 앙상하다. 상영시간 절반이 지나도 이야기가 진척이 없자 성마른 기자들이 사방에서 벌떡 일어선다. 앙드레 테시네 감독의 <세월>을 기대하며 남는 시간 동안 영문판 <스크린>과 독일 잡지며 신문의 영화란을 훑는다. <쓰리2>의 <만두>편에서 주인공을 맡은 바이링이 개막식에서 보여준 야릇한 무대 매너가 단연 화제다. <만두>가 장편으로 확대되어 파노라마 부문에 진출한 덕에 붉은 카펫을 밟게 된 바이링은 베를린 시민의 오리엔탈리즘적 섹스 판타지를 만족시켜주는 배우다. 가슴을 어찌나 대담하게 파냈는지 유두가 보일 정도의 사진이 각 지면을 연일 도배했다. 바이링은 비 때문에 우울해진 베를린 시민의 마음을 다독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앙드레 테시네 감독의 <세월>은 세월이 흐를수록 아름다워지는 게 인간이라고 말한다. 연인이었던 제라르 드파르디외와 카트린 드뇌브가 30년 만에 재회한다. 맑은 날이면 스페인이 보이는 아프리카 북부의 해안 도시 탕지에. 공기가 늦어지자 공사 현장을 독촉하러 나온 드파르디외는 지하 웅덩이에 들어가 지반을 탄탄하게 다졌는지를 확인하다가 흙 속에 파묻힌다. 테시네 감독은 흙 속에 파묻힌 한 남자의 기억으로 거슬러올라간다. 30년8개월20일 동안 오직 옛사랑을 기다려온 드파르디외. 어렵게 부임지를 드뇌브가 사는 곳으로 옮겼다. 사랑 고백이 혹시 어색할까봐 녹음까지 해보고, 드뇌브의 집 앞에서 물 한잔 마실 수 없겠느냐고 발을 들여놓고는 물에 위스키 좀 타달라고 한발 더 나아가는 드파르디외의 사랑법이 인상적이다. 드뇌브 부부가 쓰는 침대 밑에 몰래 예전에 드뇌브와 찍은 사진을 끼워넣는 대목에서는 웃음을 참기 어렵게 된다. 세월이 사람을 바꿔놓는 걸까. 아니면 사랑이 사람을 바꿔놓는 걸까. 질문은 깊이 있되 그 답은 경쾌하고 즐거운 영화. 기자회견장에서 기자들은 카트린 드뇌브에게(드파르디외는 불참) 반가움과 건재를 축하하는 박수를 보냈다.

스페인의 데포르티보 팀과 터키의 갈라타사라이 팀이 모스크바에서 챔피언 결정전을 벌이는 날, 유럽 각 도시에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 <유럽에서의 어느 하루>(감독 한네스 슈퇴르)는 축구를 매개로 유럽의 사회학 내지는 유럽 각국의 편견을 코믹하게 그리려했다. 사건처리에 한없이 늑장인 모스크바 경찰, 경찰이 게으름을 피우자 직접 범인을 찾아나서며 ‘이러면 유엔 가입이 안 된다’고 되뇌는 터키 택시기사, 근무시간에 바람을 피우고 다니는 스페인 경찰이 웃음을 준다. 이 모두를 엮어내는 건 축구에 대한 열렬한 사랑. 그러나 축구는 맥거핀이고 ‘터키 사람은 다혈질, 스페인 사람은 바람둥이, 헝가리 사람은 느리다’ 따위의 편견을 조급하게 코미디로 얽어맸다. 2006년 독일월드컵 개최가 아니었다면 경쟁부문 본선 진출이 어려웠을 영화. 비가 그칠 줄 모르고 내렸다.

2월13일 일요일

문제적 영화 <쇼피 숄의 마지막 날들>

<카르멘>

<사랑의 블랙홀>에 나오는 빌 머레이가 된 기분이다. 7시에 일어나서 잠들기 전까지 한치의 오차없이 일상이 반복된다. 흐린 날씨부터 자극없는 밋밋한 영화까지 모두가 똑같다. 기자회견 사이에 잠깐 나는 짬도 5분 내외로 똑같고, 그 짧은 순간 위장이 얻을 수 있는 선택지가 기껏 맥도널드밖에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 미쳐버릴 것 같다. 여기엔 시간의 표지가 없다. 오늘은 그래도 일요일 아침인데.

빌 머레이가 사랑의 의미를 깨닫고 무의미한 반복에서 벗어났듯이, 두 영화가 준 감동을 받고 영화제의 지루함에서 벗어났다. <카르멘>(감독 마크 도른포드-메이)은 왜 우리가 아프리카를 주목해야 하는지를 말해줬다. 피카소의 그림이 그랬고, 뮤지컬 역사상 가장 인기를 끈 작품 가운데 하나인 <라이온 킹>이 그랬다. 아프리카는 20세기 예술의 새로운 좌표를 가리키는 이정표다. 삶을 긍정하는 저 찬란한 원색의 디자인과 신명의 리듬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현대예술에 구원으로 다가온다. 뚱뚱하고 못생긴 평범한 주인공들이 기이한 활력과 아이러니를 선사하는 <카르멘>은 아프리카 토속어로 만들어진 희귀한 뮤지컬영화이며 비제의 오페라 선율과 메리메의 대본을 남아공 슬럼가로 옮겨 펼치는 애증과 질투의 드라마다.

담배공장 아가씨들과 경찰들의 남녀상열지사는 원초적인 아프리카 타악기와 맞물리면서 꿈틀거리는 생의 약동을 들려준다. ‘사랑은 아무도 길들일 수 없는 새, 가두면 날아가버리네’ 또는 ‘네가 나를 원하지 않을 때 넌 나를 가질 수 있어’ 같은 통찰이 날것 그대로의 리듬 속에서 빛을 발한다. 카르멘(폴린 말페인)이 종기(안딜 쇼니)의 칼에 찔려 한 송이 붉은 꽃처럼 질 때, 카메라는 멀리 뒤로 빠져 슬럼가의 전경을 잡아낸다. 세련된 감정 처리 대신 뚝심있게 밀어붙이는 힘이 돋보인다.

<소피 숄의 마지막 날들>

<소피 숄의 마지막 날들>(감독 마크 로드문트)은 개인의 용기가 어떻게 역사를 바꿀 수 있는지를 웅변하는 작품이었다. 아직 초반부지만 별 네개를 받은 영화는 <소피 숄…>이 유일하다. 경쟁부문 중 상영된 10개 작품 중 기자들의 집중도가 가장 높다. 숨소리조차 방해될까봐 몰입해 영화를 보는 기자들의 표정이 또 다른 감동을 준다. ‘백장미단’ 이야기로 잘 알려진 나치 시절 반체제 대학생의 마지막 엿새를 담고 있다. 1943년 2월17일, 몇명의 대학생들이 반전 메시지를 담은 유인물을 대학 안에서 돌리다가 붙잡힌다. 소피 숄(율리아 옌치)과 한스 숄(파비안 힌리히) 남매는 당국에 끌려가 심문을 당한 뒤 22일 아침 10시에 재판을 받고 그날 오후 5시에 단두대에서 사라진다. 감독은 냉정한 태도로 심문부터 재판과 처형 과정을 차례로 보도한다. 소피가 슈베르트의 음악에서 풀잎의 속삭임을 듣는 아주 작은 틈새로 우리는 소피의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처형 직전 소피의 엄마가 “이제 네가 집 대문을 두드리고 들어오는 일이 없겠구나”라고 말할 때, 남매가 마지막 담배 한 모금을 나누어 피울 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고함을 지르며 날뛰는 재판장에게 “우리가 오늘은 목 매달리지만 내일은 너희가 목 매달릴 것”이라고 한스가 의연하게 대꾸할 때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소피는 죽음과도 같은 마지막 시간 속에서도 창 틈으로 구름을 보며 “오늘 날씨는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중얼거린다. <엘리펀트>의 구름과 맞먹는 서늘하고도 아름다운 장면이다. <스크린>은 김기덕 감독의 신작 <활>이 <빈 집>처럼 대사 한마디 없는 영화라고 보도했다. <소피 숄…>은 말과 행동이 적을수록 그 말과 행동이 크게 다가올 수 있음을 증명했다. “주인공 율리아 옌치는 시대를 초월하는 소피 숄로 신세대를 대표하는 얼굴이 될 수 있을 것이다.”(<벨트>)

26살 먹은 카터(토퍼 그레이스)에게 책상을 빼앗기던 날, 50 넘은 중역 댄(데니스 퀘이드)은 아내가 임신을 했고 큰딸 알렉스(스칼렛 요한슨)가 등록금도 비싼 뉴욕대에 입학했음을 알게 된다는 <인 굿 컴퍼니>(<어바웃 어 보이>를 공동 감독한 폴 웨이츠 연출)는 앞의 두 작품에 비하면 조촐하다. 수십년간 지켜온 자리를 새파란 젊은이에게 빼앗긴 뒤 뒤늦게 삶에 눈뜨는 잭 니콜슨의 이야기(<어바웃 슈미트>)가 될 수 있던 영화는 그만그만한 할리우드 로맨틱코미디로 낙착을 보고야 만다. 하루 만에 정든 직장에서 잘려 나가는 비참한 신자유주의 시대의 풍속화는 할리우드식 해피엔드 강박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러니 우리의 우아한 스칼렛 요한슨도 어쩔 도리가 없다. <소피 숄…> 시사 뒤 기자들의 박수소리로 가득했던 기자회견장은 절반이 비어 있다. 영화제 기자들이 영화를 평가하는 방식이다. 물론 <소피 숄…> 기자회견장 자리를 메운 기자들은 거개가 독일어권 기자였지만. 극장을 나오니 어느새 어둑어둑해진 밤하늘은 까마귀떼의 울음소리와 우박으로 뒤덮여 있다.

<티켓> 켄 로치 감독 인터뷰

혼자 연출할 때보다 즐겁게 만들었다

켄 로치, 에르만노 올미,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왼쪽부터).

-세명의 감독이 함께 하나의 주제로 작업한다는 게 어떠했는지.

=서로 가까워지고 가족처럼 함께 만들었다는 점에서 혼자 만들 때보다 더 즐거웠다. 그러나 무엇을 같이 이야기할까를 제한해야 한다는 점은 어려웠다. 좁은 기차 안에서 사람들이 내리고 타고 뒤섞이면서 때로 오해하고 때로 갈등하는 이야기이다.

-스코틀랜드 소년의 발음이 독특했다.

=소년들의 악센트가 굉장히 난리법석 같은 분위기가 난다. 세 소년은 영화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세 감독이 캐릭터를 각각 어떻게 설정했는지 궁금하다.

=파티 게임 같은 재미도 있었지만 한계에도 부딪혔다. 세명의 감독이 공통적으로 접근하려고 했던 건 일상에서 발견하는 드라마의 즐거움이었고, 관계에 대한 성찰이었다.

-서로 다른 기질을 보여주는데 켄 로치 감독은 <스위트 식스틴>처럼 스코틀랜드인의 다혈질적인 정서를 전달하고 있다.

=스코틀랜드인만 그런 건 아니고 많은 나라 사람들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노동계급 출신이며 축구에 열광하고 서로의 우정을 중시하며 자신이 응원하는 셀틱스팀에 대해 자랑스러워 한다. 순수한 소년들이 상황이 꼬이고 복잡해지자 폭발 직전까지 이른다는 이야기인데, 이들은 연대의 중요함을 깨닫게 되고 로마 축구팬들의 도움을 받아 어려움에서 벗어난다.

-함께 작업한 결과를 어떻게 보았는지.

=기차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찍는다는 게 집중력을 요구했다. 누구나의 삶에서 결정적일 수 있는 지점을 다루고 있다. 그 지점은 제대로 된 관계가 더이상 불가능한 지점인데, 소년 축구팬들은 자신들이 몰랐던 세계의 경제학에 대해 알게 된다. 영화를 만들며 흥분되었던 것은 새롭게 각자의 영역을 개척했다는 것이며, 서로 존경하게 되고 애정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작품을 참조하고 반영하여 완결된 작품을 만들려고 했다.

자료정리 및 도움 진화영 베를린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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