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일본에서 만난 한국 독립영화 [1]
2005-03-22
글·사진 : 오정연
도쿄 이미지포럼에서 만난 한국 독립영화 감독 6인

독립영화의 미래는 어디 있는가?


40여편의 한국 독립영화가 일본 관객을 만났다. 3월5일에서 11일까지 도쿄 이미지포럼에서 ‘한국 독립영화 2005 뉴시네마 리로디드’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영화제를 통해서였다. 길이와 장르를 불문한 이들 상영작들은 한국 독립영화의 현재를 보여주는 작품들. 그간 드라마와 상업영화를 통해 이루어졌던 한·일 문화교류의 깊이를 더해준 이번 행사는, 새로운 한국영화를 만나고 싶어하는 일본 관객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한편 12명의 감독들이 자신의 최근작을 낯선 관객에게 선보이기 위해 일본을 찾았다. 이들을 아우를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은, “독립영화를, 주류영화로 진출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지 않았다는 점”. 자신이 옳다고 믿는 작업을 계속하기 위해 오랜 기간 최선을 다해온 주인공들이다. 그중에서도 이른바 독립영화판(?)에서 확고한 작업세계를 구축하여 안정적인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여섯명의 감독들을 만났다. 황철민, 이송희일, 채기, 김선, 신재인, 손광주. 경력이며 나이, 영화적 관심사가 판이한 탓에 웬만해선 한꺼번에 소개될 수 없었던 이들에게, 각자의 최근작에 담긴 새로운 시도와 앞으로의 계획을 묻기 위해서였다. 충무로에서 상업영화를 준비하고 있거나, 또 다른 장편영화를 촬영 중이거나, 다음 작품에 대한 고민을 이제 막 시작하는 등 서로 다른 상황에 놓인 이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아우를 수 있는 화두는 단 하나, ‘독립영화’라는 실체가 불분명한 대상을 둘러싼 현재진행형의 고민뿐이다. 저마다 다른 지점을 향하고 있는 이들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한국 독립영화의 현재와 미래가 있다.

양국의 교류의지는 진지했고, 관객의 반응은 뜨거웠다. 이는 ‘한국 독립영화 2005: 뉴시네마 리로디드’를 정리할 수 있는, 비교적 적당한 표현이다. 한국 독립영화가 일본에서 처음 소개된 것은 지난해 3월, 도쿄 시부야에 위치한 실험영화 전용관 이미지포럼에서 열린 ‘한국 독립영화 2004: 영화의 새롭고 예리한 목소리’를 통해서였다. 일본 정부기관(문화청)이 외국영화 상영회를 직접 후원한 최초의 행사였던 이 영화제가, ‘한·일 우정의 해 2005’를 맞이하여 한결 확장된 규모를 갖춰 두 번째로 개최됐다. 황철민, 김선, 채기, 손광주 등 독립영화 감독과 <이공>으로 초청된 박기용, 유영식, 김태용 감독은 물론이고, 한국영화진흥위원회 이충직 위원장, 부산영화제 김동호 위원장, 싸이더스 차승재 대표 등 다양한 초청 게스트 리스트는 이 행사에 기울인 양국의 정성을 짐작하게 만든다.

이번 행사는 그간 외국의 일반관객에게 소개될 만한 기회를 얻지 못했던 독립영화 감독들이 다양한 관객을 만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가장 큰 의의를 지닌다. 108석 규모의 상영관은 언제나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으로 넘쳐났고, 작품 상영 뒤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는 물론, 황철민, 신재인, 김선, 이송희일, 손광주 등 다양한 한국 독립영화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감독들이 한국 독립영화의 의미와 가능성을 이야기한 패널 디스커션 역시 진지한 관심 속에 진행됐다. 이는 한국의 새로운 영화를 갈망하는 일본 관객의 성원에 힘입은 것. “한국영화를 좋아해서 영화를 공부하기 시작”한 영화학도 시마노 치히로는 “일본에서 볼 수 있는 한국영화가 온통 상업영화 일색인 상황에서 이런 행사는 매우 반갑다”는 말을 들려줬다.

한편 독립영화라고 정의하기엔 다소 모호해 보이는 작품들이 포함됐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의 상영작들은 한국 독립영화의 현재라는 스펙트럼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지난해에 이어 프로그래밍을 맡은 영화평론가 토니 레인즈는 “좀더 다양한 양질의 작품을 선정하려 했다. ‘독립영화’라는 범주를 제기하기 위해 좀더 예리한(sharp) 기준을 적용했고, 여러 가지 의미의 급진성을 주시했다”고 설명했다.

행사를 마무리하면서 가장 주의를 기울이게 되는 것은 영화제의 지속성 여부. 이에 대해 프로그래머 토니 레인즈, 이미지포럼의 도미야마 가쓰메 사장, 문화청 데라와키 겐 문화부장, 영진위 이충직 위원장 등 관계자들은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지 이런 행사를 계속하기 위한 의지는 확고하다”는 한결같은 대답을 들려줬다. 작아도 꾸준히 이어지는 행사를 통해 동시대의 고민을 담은 이웃 나라의 독립영화를 만나고 싶다는 관객의 바람, 자신의 작품을 좀더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독립영화 감독들의 기대가 모종의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인지는 내년에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김홍준 감독의 <나의 한국영화-에피소드6: 춘몽/창조/복원>

어처구니 없던 시대의 복원

<춘몽>

이번 영화제의 상영작들은 모두, 지난 몇해에 걸쳐 다양한 국내외 영화제를 통해 소개됐던 작품들. 그러므로 상영시간표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깜짝 상영을 통해 선보인 김홍준 감독의 <나의 한국영화-에피소드6: 춘몽/창조/복원>(가제, 2005년/11분/DV 6mm)은, 유일한 프리미어(?) 상영작이 되겠다. 지난해 한국 독립영화 2004> 행사 때, <나의 한국영화>의 에피소드 다섯개가 상영되어 게스트로 초청받았던 김홍준 감독은 당시의 인연 때문에 다시 한번 자신을 초청해준 이미지포럼에 뭔가 도울 일이 없을까 생각했고, 부랴부랴 또 하나의 에피소드를 완성했던 것.

지난해 부천영화제에서 유현목 감독의 <춘몽>을 복원상영하게 된 과정을 기록한 10분짜리 영상물은 유현목 감독의 생생한 인터뷰와 <춘몽>의 이미지들, 복원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의 소감을 담고 있다. 유현목 감독은 당시 형사고발된 경험을 가감없이 털어놓는다. “음란물을 제작했기 때문이 아니라, 공공장소에서 여배우의 옷을 벗겼기 때문에” 문제가 될 만한 상황을 미리 삭제했음에도 벌어진 이 해프닝은, 당시의 어처구니없는 검열 상황과 영화를 둘러싼 사회 분위기를 그대로 드러내준다. 마침 <춘몽>은 일본영화 <백일몽>을 원작으로 한 영화였기 때문인지 열렬한 반응 속에 상영은 이루어졌다. 영화 상영 뒤에는, 지난해 행사에서 <나의 한국영화>를 재밌게 봤다면서 김홍준 감독에게 인사를 건네거나 영화에 관해 질문을 던지는 관객으로 극장 밖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김홍준 감독에 따르면 <나의 한국영화-에피소드6>은 앞으로 몇 가지 장면을 보강하여 20분 분량으로 늘어날 것이며, <나의 한국영화> 시리즈는 계속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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