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
달콤한 인생과 쓰디쓴 지옥 사이의 통로
<달콤한 인생>에서 유난히 강조되는 공간은 복도 또는 통로다. 이 좁은 길의 이미지는 공간에서 공간으로 이동하는 순간마다 등장한다. 초반부 스카이라운지에서 지하 룸살롱으로 향하는 선우의 모습을 따라가보자. 룸살롱에서 빠져나오면 차갑고 도회적인 느낌의 하얀 형광빛 복도가 등장한다(①). 선우는 익숙하다는 듯 이 형광빛을 즐기며 빠져나간다. 후반부에 그는 이 복도를 다시 이용하지만 그때가 되면 복도의 색조도 노란빛을 띠게 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쪽으로 와 식당 주방을 지나면 아주 낮은 천장의 복도가 나타난다(②). 드문드문 매달려 있는 형광등 불빛에 선우의 얼굴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이곳을 빠져나가면 룸살롱의 뒷문으로 이어지는 어둡고 음습한 분위기의 통로가 있다(③). 등불이 거의 없는 탓에 선우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④). 영화 전편의 이야기를 응축해서 보여주는 이 시퀀스는 선우가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갈 것을 누아르적 화면으로 암시한다. 이 좁은 길의 이미지는 선우에게 주어진 운명이라는 것이 선택의 여지가 없고, 하나의 방향일 뿐이며, 심리적으로 갑갑할 것이라는 사실 또한 예고한다.
복도는 다른 층위의 공간과 공간을 잇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감금돼 지옥행을 기다리고 있던 선우가 탈출을 시도하는 공간도 좁은 통로(53쪽 ⑨)이고, 총을 쥔 채 밀매 사무실에서 빠져나오는 공간 또한 눅눅한 느낌의 복도(53쪽 ⑫)다.
극단적 표현
어둠에 얼굴을 묻다
아무리 ‘우아르’라 하지만, 이 영화에는 필름누아르의 고전들이 보여줬던 극단적인 표현도 존재한다. 착잡한 마음의 강 사장이 자동차에 올라타 전화를 하는 장면(⑤)에서 차 안에 부착된 조명은 손목만을 비춘다. 스포일러라 설명할 수는 없지만, 관객은 그가 지을 표정이 궁금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도무지 짐작할 길이 없다. 그가 간간이 담배를 빨아올릴 때 그 빛에 의해 희미한 윤곽만이 드러날 뿐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퍼지는 담배연기가 얼굴을 가로막는다. 이 지독한 어둠은 강 사장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하며 관객의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얼굴에 드리운 어둠은 <달콤한 인생>의 곳곳에 등장한다. 강 사장으로부터 희수를 감시하라는 명령을 받은 선우가 무언가 심각한 상황을 발견하고 뒤돌아 나오는 장면에서도 김지용 촬영감독은 의도적으로 형광등 불빛을 꺼 선우의 얼굴을 어둠 속에 집어넣는다.
강 사장이 희수의 집을 찾아가 만나는 장면(⑥)은 흑백화면의 빛과 그림자를 통해 어두운 인물의 심리상태를 표현했던 고전 누아르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그동안 밝게만 묘사됐던 희수의 집은 강 사장의 출현으로 짙은 그림자가 가득한 공간이 된다. 이전까지만 해도 밝은 햇살을 예쁘게 가르기만 하던 창틀은 이 장면에서 강 사장과 희수에게 촘촘한 그림자를 덧씌워 내면의 불안과 심각함을 드러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