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영화가 된 단편소설 [2]
2005-03-22
글 : 김혜리
글 : 박은영
글 : 김현정 (객원기자)

애니메이션이 된 리얼리즘 비극

단편집 <반딧불의 묘> 중 <반딧불의 묘> 노사카 아키유키 지음
영화 애니메이션 <반딧불의 묘> 다카하다 이사오 감독

전쟁 고아가 된 오누이의 슬픈 죽음을 그린 노사카 아키유키의 단편 <반딧불의 묘>는, 으레 ‘꿈과 희망’이 연상되는 애니메이션의 소재로는 어울리지 않을 법하지만, ‘리얼리즘’에 주력해온 다카하다 이사오에게는 거부하기 힘든 매혹이었던 듯싶다. “전쟁 전체를 다루는 리얼리즘이 아니라 오누이의 일상과 삶에 대한 리얼리즘”이라는 점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옮겨올 여지가 있었던 셈이다.

<반딧불의 묘>는 행려 소년 세이타가 죽음을 맞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투성이인 소년의 옷에선 조그만 ‘드롭스’ 깡통 하나가 발견되고, 역원은 그 깡통을 풀숲으로 던져버린다. “깡통은 바닥에 내팽개쳐지며 뚜껑이 열렸고, 하얀 가루와 함께 조그만 뼛조각 세개가 굴러나왔다. 그때 풀 속에 잠들었던 무수한 반딧불이들이 놀라서 어지러이 날아올랐고, 풀숲은 이내 고요해졌다. 깡통에서 쏟아진 하얀 뼈는 세이타의 동생 세츠코의 유골이었다.” 어린 오누이가 어떻게 죽었는지, 아니, 어떻게 살았는지, 이야기는 이어진다. 자신을 책임지기도 버거운 나이에, 세이타는 동생을 맡아 사랑으로 보살피지만, 세상은, 운명은 그들에게 관대하지 않다. 방공호에 머물던 오누이의 어두운 밤을 밝혀주던 반딧불이는, 그들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등불이 되어준다.

애니메이션은 원작 그대로 스토리보드를 삼은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상황의 디테일과 대사까지도 거의 그대로 옮겨 담았다. “참혹한 이 땅에 비한다면 하늘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는 표현을, 반딧불이와 닮은꼴인 오누이의 운명을 눈과 가슴으로 느끼게 해준다는 점에서 고마운 작업. 부모와 행복했던 한때를 회상하거나, 세츠코의 마지막 모습을 추억하는 장면처럼 감정의 파고를 일으키는 디테일이 추가됐고, ‘진혼곡’의 모양새로 원작과 약간의 차별을 두었다. “1945년 9월21일 밤, 나는 죽었다”는 내레이션으로 시작되는 애니메이션은 세이타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며, 이야기 속에 세이타의 영혼이 서성이게 만들기도 하고, 마지막엔 오누이의 영혼이 만나 안식을 취하게 해준다. “소설에 등장하는 오빠만큼 여동생을 사랑해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나는 그렇게 상냥하지는 못했다”며 죄스레 고백하는 원작자 노사카 아키유키도, 어깨를 기대고 앉은 오누이의 마지막 모습에서, 얼마간 위안을 얻었을 것이다.

미세한 틈새로 파고드는 파국

단편집 <너무나 많은 물이 집가까이에> <여자들에게 우리가 간다고 말해줘> <이웃사람> <목욕> 등 9편 레이먼드 카버 지음
영화 <숏컷> 로버트 알트먼 감독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에선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친구와 잠깐 드라이브를 하고, 언제나처럼 낚시 여행을 떠나고, 이웃에 사는 부부와 저녁을 먹을 뿐이다. 그런데도 파국은 천연덕스럽게 찾아온다. 작은 실수, 미세한 틈새를 노리고 있었다는 듯이 들이닥쳐 사막처럼 막막해진 인생을 뒤로하고 떠나버린다. 로버트 알트먼은 때로는 몇 시간에 불과한 드라마를 담고 있는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들을 비행기 안에서 읽고 ‘레이먼드 카버 영화’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플레이어>의 성공 덕분에 알크먼은 아홉개의 단편을 골라내어 가늘지만 탄탄한 실로 꿰매었다.

<숏컷>에서 비교적 드라마틱한 에피소드는 <너무나 많은 물이 집가까이에>에 바탕을 둔 것이다. 클레어는 남편 스튜어트와 세 친구가 산속 계곡으로 낚시 여행을 갔다가 알몸으로 물속에 버려진 젊은 여자의 시체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듣는다. 그들은 자동차가 있는 곳까지 돌아가려면 너무 멀고 여행 첫날이라는 핑계를 들어 시체를 곁에 둔 채 낚시를 한다. 그 물로 그릇을 씻고 커피를 끓인다. 가슴속에서 무언가 무너져내린 클레어는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가장 감상적인 에피소드는 <목욕>. 스코티는 여덟 살이 되는 생일에 교통사고를 당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털고 일어난 스코티는 그날 오후 혼수상태에 빠지고 깨어나지 못한 채 죽고 만다. 그 사이 주문받은 생일케이크를 완성한 제빵사는 집요하게 스코티의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케이크를 찾아가라고 독촉한다. 알트먼은 아홉 단위로 이루어진 인물들을 서로의 에피소드에 스쳐가게 만들거나 서로 관계를 맺어주었다. 카버의 소설을 그대로 영상으로 옮긴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좀더 감정이 많고 좀더 설명이 많다. 카버처럼 망연하게 내버려두진 않는다. 그럼에도 황무지를 돌아보는 듯한 느낌이 그대로 살아 있는 건 알트먼이 카버와는 다른 방식으로 카버의 정수에 다가갔기 때문일 것이다.


브룩클린에서 피어난 인생의 향기

단편집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폴 오스터 지음
영화 <스모크> 웨인왕 감독

완성되기까지 4년이 걸린 <스모크>는 감독 웨인왕과 작가 폴 오스터의 협주곡과도 같은 영화다. 신문에서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읽은 웨인왕은 폴 오스터를 찾아갔고, 브루클린을 걸어다니고 시가를 사면서, 함께 라시드라는 흑인 청년을 창조했다. 골목마다 널려 있는 사람들, 그렇고 그런 사연. 애향심이 남달랐던 폴 오스터는 그 조각들을 주워모아, 온기어린 시선으로 브루클린을 바라보는, 자신의 첫 번째 시나리오에 차곡차곡 채워넣었다. <스모크>는 아내를 잃은 뒤 글을 쓰지 못하고 있는 작가 폴과 15년 가까이 모퉁이 담배가게를 지켜온 오기를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을 배치한 영화다. 영화가 끝날 무렵 오기는 청탁받은 크리스마스용 단편을 쓰지 못해 고심 중인 폴에게 자신이 겪은, 어쩌면 겪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것이 <스모크>를 잉태한 단편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다.

청탁받고 소설을 써본 적이 없던 작가 폴은 처음으로 청탁에 응하지만 소재를 찾지 못한다. 그런 그에게 단골 담배가게 매니저 오기 렌이 점심을 사면 기가 막힌 이야기를 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그리고 이야기가 시작된다. 오기는 잡지를 훔치던 소년이 달아나다가 떨어뜨린 지갑을 주워 주인에게 돌려주려고 한다. 찾아간 집엔 눈먼 할머니가 혼자 살고 있다. 집나간 손자가 돌아온 줄 알고 반가워하는 할머니. 오기는 차마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그날 저녁 손자 노릇을 한다. 오기는 그날 벌어진 일 때문에 날마다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를 찍게 되었다고 말하는데, 그 사진첩은 <스모크>에도 등장해, 폴에게 아득해져버린 죽은 아내의 한순간을 되돌려주기도 한다. 웨인왕과 폴 오스터는 <스모크>를 찍으면서 의기투합해 배우들의 즉흥 연기에 많은 부분을 맡기는 “브루클린 영화” <블루 인 더 페이스>를 찍기로 했다. 폴 오스터는 마돈나와 미라 소비노, 루 리드, 릴리 톰린, 마이클 J. 폭스 등이 출연한 이 작고 유쾌한 영화에서 공동연출까지 맡았다.

영화의 큰 발명품은 조니 뎁의 캐릭터

단편집 워싱턴 어빙의 단편집 <스케치북> 중 <슬리피 할로우의 전설-목 없는 기사의 유령>

영화 <슬리피 할로우>(감독 팀 버튼)

<슬리피 할로우의 전설>을 고딕호러 소설의 범주에 넣으면, 유럽 혈통의 거만한 고딕호러들은 괴성을 지를지도 모른다. <립 밴 윙클>을 쓴 미국 작가 워싱턴 어빙의 <슬리피 할로우의 전설-목 없는 기사의 유령>은 자신의 이야기를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듯한 표정의 장난기 넘치는 단편 괴담이다. 아래와 같은 대목은 기괴한 고성과 전설이 풍족한 유럽에 대한 미국 호러 작가의 질투처럼 들린다. “미국 대부분 지역에서는 유령을 부추길 만한 것들이 없다. 유령들이 그들의 첫 번째 낮잠을 끝내고 무덤에서 몸을 뒤척이며 일어나기도 전에 살아 있는 사람들은 그 고장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고여 있는 웅덩이 같은 네덜란드계 이민의 음습한 마을 슬리피 할로우는 이 단편의 진정한 주인공으로 정성껏 묘사됐다.

슬리피 할로우에는 독립전쟁 때 잘린 머리를 찾아다니는 목 없는 기사의 괴담이 떠돈다. 별볼일 없는 가난한 교사 이카보드 크레인은 부농의 딸 카트리나 반 타셀의 재산과 미모에 눈독을 들이고 근육질의 청년 브룸과 연적이 된다. 그러나 희망도 잠깐. 파티가 있던 어느 밤 카트리나와 대화를 나눈 그는 축 처진 모습으로 귀갓길에 올랐다가 목 없는 기사의 습격을 받는다. 이튿날 주민들은 주인 잃은 말과 깨진 호박만 발견한다. 후일담은 혼비백산한 이카보드가 뉴욕으로 떠나 판사가 되었다고 전하지만, 카트리나를 차지한 브룸은 뭔가 더 안다는 투로 웃음을 흘린다.

팀 버튼 감독은 어빙의 원작에 이렇다 할 빚이 없다. 공간의 이미지와 인물의 이름, 독일 민담에서 따온 목 없는 기사 전설만 빌려다놓고, 이성을 숭상하는 겁쟁이 탐정 이카보드의 캐릭터와 마을의 어두운 비밀을 엮어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냈다. 원작은 이카보드가, 크레인이라는 성에 맞게 학처럼 건들거리는 체격에 흐리멍덩한 눈을 가진 그저 그런 교사였다고 묘사한다. 영화 <슬리피 할로우>의 가장 큰 발명품은 조니 뎁이 분한 이카보드 캐릭터의 매력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혹시 <슬리피 할로우>는 못난이 약골 이카보드를 위한 팀 버튼의 복수극? 그러고보니 틀림없다. 소설의 승리자였던 근육질 브룸이 영화에서는 용기를 뽐내다가 일찌감치 몸통이 두 동강나지 않았던가.

재창조된 안드로이드 소년의 운명

단편집 <슈퍼토이의 수명은 여름 내내 간다> 브라이언 앨디스 지음

영화 <A.I.>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그녀는 그를 사랑하려고 노력했었다. 장미가 흐드러진 여름 정원에 홀로 남겨진 스윈튼 부인의 이야기다. 어떤 이유에선지, 아들 데이빗은 그녀를 피한다. 데이빗은 ‘진짜’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에만 빠져 있다. 같은 날, 과학자인 남편은 신제품 개발 축하연을 열고 있다. 그가 개발한 인공 촌충 덕에 모델처럼 몸매가 늘씬해진 단골 고객들은, 인공 지능 컴퓨터 회로와 합성 피부를 가진 슈퍼토이가 소외와 고독을 달래주는 좋은 친구가 될 거라는 이야기에 솔깃해진다. 집으로 돌아온 남편에겐 뜻밖의 희소식이 들린다. 4년을 기다린 끝에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부모 복권에 당첨된 것이다. 창 너머 인공 정원에서는 데이빗이 환희에 찬 부모를 바라보고 서 있다. 거기까지다.

스윈튼 부부는 소설 말미에 이런 대화를 나눈다. “커뮤니케이션 기능에 문제가 있으니, 공장으로 보내야 할 거야.”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일단 두고 보기로 해요.” 자신에게 닥칠 운명을 알지 못하는 데이빗은 정원에 서서, 부드럽고 아름다운 장미를 보며 엄마를 생각한다. 엄마가 진짜이듯, 장미도 진짜, 자기도 진짜라고 믿지만, 그가 틀렸다. 데이빗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일찌감치 이 소설의 판권을 사들인 큐브릭과 그의 바통을 이어받은 스필버그는 이 가련한 안드로이드 소년의 운명에 어떤 책임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어느 하루의 ‘풍경’에 간결하게 담아낸 원작을 방대한 스크린으로 옮겨내는 과정에는, 전후의 상황을 비롯한 많은 이야기들이 덧대졌는데, 길 떠나는 데이빗에게 <피노키오>의 컨셉을 입히자는 큐브릭의 아이디어에 반발한 원작자 브라이언 앨디스는 제작 초기에 각색에서 손을 뗐다고 전해진다.

큐브릭이 아닌, 스필버그의 입김으로 보이는 변곡점은 역시 캐릭터의 감성이다. 그는 원작의 자폐적인 안드로이드 데이빗을 ‘사랑받기 위해’ 애쓰는 소년으로 설정해 눈물샘을 자극하고, ‘방황 끝에 귀향하는 소년’이라는 자신의 캐릭터 계보를 이어나갔다. 남다른 시각적 상상력으로 풍부한 서브 텍스트를 유려하게 풀어보인 스필버그의 영상 해석(재창조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도 탁월하지만, 건조하고 서늘한 공기, 신랄하고 명징한 어투, 양파처럼 꺼풀을 벗는 미스터리 구조의 이야기를 활자로 대하는 맛 또한 색다르다.

한 여자를 연민하는 감독의 시선

단편집 <정혜> 중 우애령 지음

영화 <여자, 정혜> 이윤기 감독

정혜는 43kg이다. 그녀의 삶도 중량감이 희박하다. 정혜는 우체국 출장소에서 누가 해도 상관없는 일을 처리하고 월급을 받는다. 공휴일이면 보내야 할 하루해가 너무 길어 당혹스럽다. 될 수 있는 한 몸을 구부려 남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한다. 아무에게도 신세지지 않고, 아무에게도 이용당하지 않으며 살기만 바란다. 아주 나쁜 기억을 지닌 정혜는 정신과 의사가 아닌 다른 남자가 괜찮아요, 하고 말해주는 소리를 듣고 싶다.

역설적이지만, 세상과 동떨어져 있는 듯한 정혜는 돌이켜보면 우리 소설이 그려온 여성의 한 전형이다. “그냥 나를 내버려만 두세요”라고 청하는 ‘그녀’는 신경숙과 전경린, 한강의 소설을 가로질러 걸어갔고 은희경의 단편 <열쇠>에서는 늘 물건을 잃어버리곤 했다. <정혜>와 같은 책에 묶인 우애령의 다른 단편에도 정혜의 ‘자매’들은 흔적을 남겼다. <가구>에서 사랑에 환멸을 느끼는 베키는, 애인 대신 마음에 드는 비싼 가구로 방을 하나씩 채운다. <외출>의 택시기사는, 옷가방을 들고 밑도 끝도 없이 올라타 어디든 가달라는 여자들에게 더이상 놀라지 않는다. 정혜의 희망은 <아직도 사랑하는가>에 나오는 5대호 지역의 상수리나무 속에 있다. 외피가 단단하고 뿌리가 깊은 그 나무들은 비록 죽은 채로 서 있으나, “그 안에 무언가 아직 다 죽지 않은 것이 남아 있기 때문”에 쓰러지지 않은 것이라고 작가는 쓴다.

<정혜>는 ‘사건’의 대부분이 마음속에서 터졌다 사그라지는 짧은 소설이다. 영화 <여자, 정혜>는 원작이 지닌 십자수 같은 디테일과 은유의 강점을 백분 활용하며 신중하게 상상한 일화들을 덧붙였다. “남자이기에 도리어 조심스러웠다”는 이윤기 감독에게 몹시 고민스러웠을 영화의 시점은 3인칭도 정혜의 눈도 아닌, 그녀를 연민하는 감독의 시선으로 낙착됐다. 어항 속에 가라앉은 듯 정혜의 생애는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핸드헬드 카메라와 다르덴 형제의 <아들>을 연상시키는 미스터리 구조를 빌려 윤곽을 드러낸다. 이윽고 영화가 선택한 결말은 정혜가 과거의 상처를 원작보다 더 확실히 극복하도록 해주려는 감독의 욕심을 짐작하게 한다. <정혜>가 실린 우애령의 단편집 역시 읽다보면 일종의 카운슬링을 받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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