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순은 조용한 남자다. <가족>에 독하고 독한 깡패 창원으로 출연했던 그는 동정이라고는 모르는 사나운 눈빛과 마음속까지 칼날을 박는 야비한 말투를 걷어내고선 말없이 땅만 보고 있었다. <보스상륙작전> <가족> <귀여워>가 하나같이 깡패 역할만 내밀었던 배우, 그러면서도 인터뷰를 위해 모여 거친 호르몬을 내뿜는 배우들 틈에서 홀로 연못처럼 고요하던 배우. “어릴 적부터 내성적이었고, 양면성이 있다”고 말하는 박희순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수많은 반사각 중에서 지금껏 아주 작은 부분만 내비쳤는지도 모르겠다.
눈이 나빠 군대 면제 판정을 받은 박희순은 남들보다 어린 나이에 극단 목화에 들어가 몇년을 줄줄이 선배들만 맞았다. 덕분에 유독 오랫동안 마루를 닦아야 했고, 걸레질하는 손길에 맞추어 “두고 보자, 두고 보자”고 이를 악물어야 했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끝끝내 버티게 해준 의지를 얻었다. 건달 특유의 두꺼운 근육과는 한참 거리가 먼 박희순이 독오른 맹수처럼도 보이는 건 그 세월 탓이었을까. 약물치료 부작용으로 머리가 빠진 아버지뻘 남자를 그 딸의 눈앞에 패대기치는 창원은 속도를 늦추고 숨을 죽인 카메라 앞에서 보는 이를 베어낼 듯한 살기를 내비친다. 그러나 출신 성분이 비슷한 <귀여워>의 ‘막내’는 어떠한가. 인정을 봐주지 않는 조폭이면서도, 차마 선배인 ‘머시기’를 때릴 수 없어 대신 맞고 마는, 나름대로는 순박한 전라도 건달 막내. <귀여워> <가족>을 모두 배급한 회사 대표마저 같은 배우라는 걸 알아보지 못했을 정도로 그는 달랐다. 연극 한편에서 1인8역까지 감당했던 고단한 시절을 쌓아올려, 같은 물에서 노는 깡패이되 근본이 다른 캐릭터를 창조한 박희순은, 아직도 한참을 더 보아야 할 미지의 배우인 것이다.
얼마 전 연극 <클로저>에서 떠난 연인을 돌려달라며 그녀의 전남편에게 징징거리는 “가오가 너무 안 사는” 연기를 해보였던 박희순은 “<남극일기>에서도 나를 못 알아볼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두꺼운 안경을 쓰는, 지적이고 다소 이기적인 탐험대 부대장 역을 해야 했기에, 협찬 들어온 라식수술마저 미루었다. 시간과 공간이 사라지는 막막한 남극점을 향해 걷는 여섯 대원. 굳이 안경을 쓰지 않았더라도 그 대열 속의 박희순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아니었을까 싶다.
나, 이렇게 알려졌다
아무래도 <가족>에서 진짜 나쁜 놈을 했던 게 컸어요. 어떤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전부 나쁘기만 했으니까. 영화가 개봉하고나서 인터넷에 들어가봤더니 “걔, 원래 그런 놈이지.” “그런 인간성 가지고 어떻게 연기하냐, 때려쳐라.” 이런 평들이 올라와 있더라고요. 난 지금까지 주먹질하면서 싸워본 적도 없는데. 글쎄, 왜 깡패 역만 들어왔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연극배우가 영화로 옮겨가면서 자연스럽게 거치는 과정인 것도 같고. 독특한 영화를 좋아해서 <귀여워>를 했거든요. 그런데 이정철 감독이 <귀여워> 가편집본을 보고 미팅을 하자고 하더라고요. 동수(엄태웅) 대사를 읽어달라고 해서 그건 잘 읽고, 창원 대사도 한번 해보라고 해서 대충 했는데, 대충 읽은 게 더 낫다고 하더라고. <가족>은 진짜 독하게 해서 더이상 할 게 없을 정도로 해보자, 그러면 더이상 깡패하라고 안 하겠지, 그런 마음으로 연기했어요.
나, 이렇게 살아왔다
막연하게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었는데도 학예회 같은 데서 연극을 하면 곧잘 나섰고요. 그렇게 막연히 꿈만 꾸다가 대학을 선택해야 할 시기가 왔고, 남들이 배우가 되려면 연극을 해야 한다고 하기에, 서울예대에 갔죠. 전기대에 떨어져서. (웃음) 한번도 내 고집을 내세워본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하고 싶은 게 있다고 하니까 부모님도 말리지 않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전기대 시험에 실패한 게 잘된 일인 것 같아요. 서울예대는 실기 위주여서 2년 동안 여덟 작품을 했으니까. 학교에 안 간 날이 며칠 안 될 거예요. 극단 목화에도 정은표 선배가 스카우트를 했고. 사실은 꼬셨다고 해야 하나. 여기 들어오면 무지 고생하거든, 그래도 들어오면 좋을 거야, 그런데 너무 고생이 심하니까 싫으면 말고, 뭐 이런 식으로. 몇년을 마룻바닥 청소하고 포스터 붙이고 세트 만들고, 그러다가도 내가 출연하는 장면이 있으면 연습하러 들어가고, 그렇게 보냈어요. 목화의 오태석 선생은 배우가 노는 꼴을 못 보는 사람이에요. 자주 하는 말이 배우는 레미콘이다, 쉬지 않고 돌아야 한다, 는 거예요. <백마강 달밤에>를 할 때는 굿을 구경하러 나온 동네 사람인데 약간 모자라고 동네일 여기저기 다 끼어드는 인물이라고만 설명하곤 끝이었어요. 나더러 만들라는 거지. 결국엔 구경하러 나왔다가 무당따라 저승까지 갈 정도로 비중이 커졌어요. 행간에서 캐릭터를 만드는 트레이닝을 받을 수 있었던 거죠.
나, 이렇게 울고 웃었다
목화에 같이 들어간 여자 동기가 있었어요. 그 친구는 주인공인데 나는 대사가 세 마디밖에 없는 거야. 그 친구는 자꾸 실수를 하고, 나는 같은 말만 되풀이해야 하고, 그러다가 타이밍을 놓쳤어요. 오태석 선생이 나한테 그때까지 쌓인 화살을 다 퍼붓더라고. 너무 화가 나서 밖으로 뛰쳐나갔더니 그때 유행하던 컴퓨터 점치는 버스가 있더라고요. 씩씩거리면서 점을 보는데 첫 문장이 “예술적인 기질이 풍부하다”였어. 아, 나는 이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구나, 그냥 열심히 하자, 다짐하면서 연습실로 돌아갔죠. 하지만 힘든 일은 다 잊고 사는 편이에요. 열달 동안 <남극일기>를 찍으면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두루 힘들었는데도 지금은 좋은 기억만 남아 있어요. 촬영 끝나고 술을 마시다보면 내가 정말 이 영화를 찍고 있는 건가, 내가 송강호하고 술을 마시고 있는 건가, 이런 생각도 들었고.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야 백번도 넘게 했죠. 그런데 연기 아니면 할 줄 아는 게 있어야지. 슬럼프에 빠지더라도 무대에선 도망갈 구석이 없잖아요. 어느 순간 무대 위에서 다 해소가 되더라고요.
나, 이런 모습도 있다
어릴 적엔 같은 동네에 사는 여학생을 봐도 어느 학교 학생인지를 몰랐어요. 배지를 가슴에 달고 있으니까 쳐다볼 수가 있어야지. 왜, 공부 못하는 모범생 있잖아요. 그런 아이였어요. 방에 처박혀서 기타치고, 작곡하고, 가사쓰고. 그래도 가오, 제대로 말하면 자존심은 강했어요. 누굴 이기고 싶다는 마음보단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아야겠다는 고집이 있죠. 뭐든 하면 최고가 되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서 지금까지 연기를 할 수 있었나봐요.
Filmography
<보스상륙작전>(2002)
<가족>(2004)
<귀여워>(2004)
<남극일기>(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