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한국영화 명장면의 비밀 [2] - <거미숲> <달콤한 인생>
2005-04-19
글 : 김수경
글 : 이종도

<거미숲> - 최 형사가 산장에 들어가는 장면

김철주 촬영감독: 조명기를 밖에 한대만 설치, 빛의 강약으로 긴장 고조

<거미숲>은 망각과 왜곡의 숲이다. 강민(감우성)이 살인을 저지른 숲속 산장은, 그의 왜곡된 기억이 똬리를 틀고 있는 거처라 할 만한 곳이다. 이 산장으로 강민의 친구인 최 형사(장현성)가 들어가는 장면. 실내는 강민의 기억만큼이나 어두컴컴하지만, 훤히 드러나는 창으로는 늦가을의 울창한 삼나무 숲이 보인다. 명료한 바깥의 풍경과 대조되어 나타나는 검은 실내가 인상적이다. 강민의 뒤틀린 기억을 따라가던 관객은 처음으로 객관적인 시선으로 거미숲을 바라보게 된다. 숲으로 난 통유리창이 주는 아늑함과 부패한 시체에 걸린 거미줄을 보여주며 거미숲의 고통스런 과거를 대조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다.

김철주 촬영감독은 이 장면에 거미숲의 촬영과 조명의 컨셉이 잘 드러나 있다고 설명한다. 스릴러엔 주관적인 트랙인이나 트랙아웃 등 카메라워크가 많게 마련이지만, 김 감독과 송일곤 감독은 인물이 움직일 때만 카메라를 움직이자는 원칙을 세웠다. 정적인 영화 속에서 유독 이 장면은 움직임이 많은 편이다. 전남 선암사 숲의 경사진 언덕에서 지은 세트로 최 형사가 들어오면 카메라가 최 형사를 따라 오른쪽으로 회전(팬)한다. 실내의 거미줄은 음습하고, 창가에 보이는 휘어진 등걸은 낭만적이기까지 한데 이런 극적인 대조와 교차가 긴장을 자아낸다. 여기선 32mm 카메라를 써서 좀더 와이드한 느낌으로 가고자 했다. 스릴러 특유의 과장이나 강조보다는 건조하고 사실적인 묘사를 하려 한 것이다. 대신 빛의 운용과 컬러 대비를 강하게 가기로 했다. 조명기는 세트 밖에 한대만 세웠다. 천장에도 라이트를 설치하지 않았고 보조 조명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최 형사가 어두운 곳으로 이동하면 최 형사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둑한 느낌이 두드러지게 되었다. 최 형사가 발견하게 될 시체의 발은 50mm 렌즈로 찍었다. 주위가 포커스 아웃되고 발의 거미줄이 더 강조된다. 발 위로 햇살이라도 쏟아질 듯한 밝은 분위기가 캄캄한 실내와 교차하는 리듬이 작은 충격을 만들어낸다.

늦가을 느낌을 살려내려 했지만 때는 벌써 2003년 12월 무렵이었다. 다행히 눈이 많이 오지 않아 장면 연결은 어렵지 않았다. 알려진 예산(13억원)보다 체감이 낮은 저예산을 절감하며 하루에 다 찍어버린 장면이다. 광양에 아파트를 빌려 합숙하면서 승주, 선암사 등 일대에서 몰아서 찍는 방식으로 강행군했다. 저예산임을 알아차리기 어려운 고급스러운 느낌은 이들 스탭의 피와 땀으로 얻어낸 것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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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화면 왼쪽으로 와인 병쪽에서 흐릿하게 가로지른 거미줄이 내려와 있고 오른쪽으로는 큼직한 통유리창으로 삼나무 등걸이 보인다. 급히 지은 세트라 실내엔 사람이 산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최 형사는 뭘 보았기에 이렇게 놀랄까? 카메라는 팬(수평회전)하며 최 형사의 동선을 따라 움직인다.

2. 울창한 삼나무 숲은 밝게 드러나고, 최 형사의 얼굴은 어둠 속에 파묻힌다. 창틀의 거미줄과 모서리에 장식된 데드마스크는 사건 해결이 쉽지 않음을 암시한다.

3. 최 형사의 시점숏. 카메라는 최 형사의 눈이 되어 거미줄에 갇혀 부패하고 있는 최종필 국장의 발을 내려다본다(카메라 틸트 다운). 발이 중심이 되고 뒷배경은 포커스 아웃되고 있다. 이제 트랙을 따라 최 형사가 들어오는 장면이 잡힐 것이다.



<달콤한 인생> - 스카이라운지에서 선우와 강 사장의 대결 장면

김지용 촬영감독: 반반씩 나눈 동선과 녹색 필터로 ‘긴장감과 몽롱함’ 자극

<달콤한 인생>은 미로다. 끝없이 희수(신민아)를 따라다닐 때도 스카이라운지와 지하 룸살롱을 오가는 일상에서도 선우(이병헌)의 발걸음은 미노타우로스가 기다리는 미로를 헤매는 테세우스의 그림자다. 안타깝게도 희수는 선우의 아리아드네가 될 수 없다. 김지용 촬영감독에 따르면, 스카이라운지에서 룸살롱으로 이르는 길은 매우 흥미로운 로케이션으로 이루어진다. 서울 프리마호텔, 양수리 세트, 부산 크라운호텔을 거쳐서야 선우는 지상에서 지하에 도달할 수 있다. 판타지로 느껴질 만한 화려한 후반부를 지탱하는 영화 전반부의 디테일한 설정에 주목하라고 그는 덧붙인다. 희수를 따라다니는 선우와 함께 등장하는 서울 야경. 한국의 저녁 야경은 대체로 형광조명이 많아서 눈으로 볼 때는 하얗지만 영화로 보면 파랗다고 한다. 일반 한국영화의 푸르스름한 톤을 싹 빼고, 노란색과 녹색을 후반작업에서 강조했다. 로케이션은 서울이지만 시간이 탈색된 무국적 공간으로 보여야 하기 때문에 선택한 색감. 관객이 살아가는 서울이라는 현실적 공감이 아니라 영화 속 그들이 살아가는 서울이라는 영화적 공감이 필요했다. 한편 야경에서 카메라가 선우를 향하면 일반적인 설정숏보다 훨씬 넓은 앵글로 잡힌다. 그의 외로움이 빈 옆자리와 보닛 위로 울려퍼진다.

정확히 공간의 절반씩을 차지하고 스카이라운지 한가운데에 선 선우와 강 사장. 인물뿐 아니라 기둥과 테이블을 비롯한 소품마저도 철저하게 균형을 이룬다. 빈틈없이 분할된 구도는 누군가 한 발짝만 움직여도 순식간에 무너져내릴 듯한 위태로운 느낌이다.

이렇게 쌓인 긴장감은 영화의 절정인 스카이라운지에서 둘이 마주서는 장면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달콤한 인생>에서 세 차례 등장하는 주무대인 스카이라운지는 매번 조금씩 톤을 다르게 가져갔다. 그에 따라 빈번하게 등장하는 복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른 길을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러한 미세한 색감의 조정에서 비롯한다. 가장 감정이 격하게 상승하는 마지막 조우장면에는 시각적 강조를 위해 눈물이 흐르면 사람이 뿌옇게 보이는 느낌을 극대화했다. 테스트 중 우연히 발견한 더러운 녹색 조명용 필터를 거친 검은색은 화면에 촉촉하게 젖어든다. 하레이션(피사체보다 밝은 물체 때문에 피사체의 둘레가 희미해지는 광학적 현상)이 일고 바 부근의 하이라이트 조명에 번지는 몽롱함은 인물의 몸통을 뚫는 총성과 함께 바람처럼 날아가버린다. 두 사람이 정확히 공간 절반으로 분할된 위치에 서야 하는 블로킹(배우가 상대를 고려하여 위치를 선정하는 행위)도 배우들에게는 만만치 않았을 터. 덤으로 빈번한 오버숄더 숏(어깨 너머로 인물을 잡는 앵글, 대화장면에 주로 사용된다)마다 촬영감독은 배우들에게 아래로, 위로 어깨 위치 조정을 계속 요구했다. 선우와 강 사장(김영철)은 동선은 물론 시선 처리 한번 틀리지 않는 노련미를 선보였다. 자신들 주위에 좌우대칭으로 깔끔하게 놓인 테이블처럼. 그러나 테이블의 모서리가 조금이라도 비틀어지는 순간 잘 닦인 유리알 같던 스카이라운지는 활화산 같은 싸움터로 변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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