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종래의 DVD 뒷담화 - DVD 제작사에 판권이 없다고?
2005-04-28
글 : 김종래 (파파DVD 대표)

DVD를 보고 모으던 취미 생활을 즐기다가 우연한 기회에 아예 인터넷 DVD쇼핑몰까지 차리고 운영하게 됐다. 단순히 DVD를 보는 재미를 넘어서 업계 속의 알콩달콩한 이야기에도 자연스럽게 귀를 기울이게 됐다. 덕분에 DVD 마니아라고 해도 알기 힘든 DVD업계의 습성을 알게 됐고 일부는 필자의 몸에도 이미 배어있다.

두 군데 제작사에서 동시에 나왔던 <이블데드 2>

업계에 입문해 처음에 선뜻 이해하지 못한 것이 바로 DVD 판권이다. DVD가 정상적인 제품임을 증명하는 것은 판권 유무로 결정된다. 종종 가짜 판권이나 서류를 조작한 판권을 파는 사기 사건도 일어났다. 겁 없이 외국에서 발매된 DVD을 그대로 복제해 정상품인 양 팔고 사라지는 간 큰 사기꾼들도 여럿 목격했다. 심지어 동일한 판권을 두 업체가 다른 경로로 동시에 구매해 어떤 것이 진짜인가를 경찰서까지 오가며 가려야만 했던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모 영화사 사장은 DVD 판권을 여러 업체들에게 판매한 뒤에 해외로 잠적해 영화가 개봉한지 무려 2년이 지나서야 겨우 DVD로 나온 적도 있었다. 어쩌면 이들은 <매치스틱맨>의 주인공보다 더 능수능란한 솜씨로 DVD와 영화업계를 신출귀몰 누비며 정말 영화처럼(?) 사는 이들일지도 모른다.

더 흥미로운 것은 DVD 제작업체에서 자신들이 제작한 DVD의 판권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무슨 뚱딴지같은 얘기라고 하겠지만 이는 엄연한 추세다. <태극기 휘날리며> <친구>같은 대작 DVD 타이틀을 만든 제작사인 KD미디어나 엔터원에 가도 이들 영화의 DVD 판권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럼 아까 말한 것처럼 사기인가? 그렇지 않다. 예전에는 영화사로부터 목돈을 들여 DVD 판권을 사왔지만 실패할 위험도 크기 때문에 DVD 제작업체들이 판권은 영화사에 그대로 두고, 두 회사가 DVD 제작과 판매에 관한 수익배분 계약을 한 뒤에 DVD를 발매하기 때문. DVD 매출에 따라 서로 이익만 나누는 방식인 셈이다. 한국영화가 외화에 비해서 이런 수익분배 방식으로 DVD를 제작하는 경우가 월등히 많다.

엔터원에서 발매한 <친구>

이러한 공동제작으로 판권이 없는 DVD 제작업체가 잡지 번들이나 할인행사를 단독으로 결정할 수는 없는 법. 영화사와 사안별로 번거로운 협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공동제작된 DVD는 절품이 될망정 무분별한 할인행사나 잡지 번들이 되기 어려운 것이다.

한편으론 그동안 국내 DVD시장 성장이 더딘 것도 업체들이 공동제작 방식을 더 선호하게 만든 원인일 수도 있다. 그래서 한때 DVD 제작업체 사이에서는 애니메이션 DVD 판권이 많은 회사일수록 곧 망한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시리즈물이 많은 애니메이션의 판권료가 비싼 편이라 DVD 판매가 부진하면 큰 손실을 봤던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