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렉>은 초록괴물 슈렉이 동화책을 북! 찢어 대변을 닦는 것으로 시작한다. 동화의 고전적인 내러티브와 주제를 뒤집겠다는 의도를 처음부터 강력하게 시사한다. <슈렉>에는 아기돼지 삼형제, 세 마리의 곰 가족,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피노키오에 ‘진저브레드맨’까지 친숙한 동화 속 주인공들이 대거 등장한다. 원작과 달리 굳이 유명한 동화의 주인공들을 등장시킨 것은 디즈니가 정식화시킨 아름다움, 사랑의 고귀함, 가족주의 등의 가치를 되짚어보겠다는 것이다. 불쌍한 건 디즈니에서, 드림웍스에서 연일 혹사당하는 동화 속 주인공들.
마이크 마이어스가 연기하는 슈렉의 말을 잘 들어보면, 어디선가 이미 만났던 목소리 같다. 기억을 되살려보면 <오스틴 파워>의 팻 배스타드가 떠오른다. 엄청나게 뚱뚱한 몸집에 늘 먹어대기만 하던 악당 팻 배스타드는 복장과 말투 모두 스코틀랜드풍이었다. 더 거슬러올라가면 마이크 마이어스가 주연으로 나온 <그래서 난 도끼부인과 결혼했다>에서도 스코틀랜드계 아버지가 등장해서 투박한 사투리를 선보였다. 마이크 마이어스 왈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캐나다로 이주해 한 20년 정도 산 사람의 스코틀랜드 억양’을 선보였다고.
말하는 당나귀 덩키도 낯익다. 말많고 하는 일마다 엉망진창이 되지만 어쩐지 밉지 않은 참견꾼. 그건 <뮬란>의 빨간 용 무슈다. 무슈는 뮬란을 돕기는커녕 훼방만 놓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뮬란을 구해낸 말썽꾸러기. 마찬가지로 덩키도 마지막 순간 위기의 슈렉을 구해낸다. 천연덕스러운 무슈 역을 훌륭하게 연기한 에디 머피가 당연히 덩키도 이어받았다. 에디 머피는 이미 <베벌리 힐즈 캅> 등에서 리드미컬한 말재주로 사람들의 혼을 빼놓는 연기를 선보였다.
제프리 카첸버그는 ‘의도적으로 디즈니를 조롱하지 않았다’라고 말하지만, 아무래도 그건 거짓말 같다. 파콰드 성주가 살고 있는 성 둘락은 영락없는 ‘디즈니랜드’다. 슈렉과 덩키가 성문을 열고 들어가 ‘인포메이션’이라고 써 있는 박스의 단추를 누르자 인형들이 나오며 ‘It’s a Small World…’ 하며 노래를 부른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단골 주인공인 동화 속 인물들 조롱은 물론, 로빈 후드와 부하들이 을 부르는 장면은 디즈니 ‘뮤지컬’의 조롱이다. 잘 살펴보면 디즈니 패러디가 곳곳에 숨어 있다.
요즘 ‘코믹’한 영화에서 패러디가 등장하지 않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 <슈렉> 역시 온갖 영화와 TV를 패러디한다. 너무 많은 영화에 나와 이제는 식상한 <매트릭스>를 비롯하여 각종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와호장룡>, 드림웍스의 최고 히트작인 <글래디에이터>까지 패러디한다. 특히 <글래디에이터>의 검투장면은 미국에서 인기 절정인 프로레슬링까지 함께 패러디하며 흥을 돋운다. 레슬링 동작은 실제 레슬링 선수들의 장기를 그대로 실연하고 있다.
흉칙하게 생긴 슈렉이 엽기적인 행동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괴물이니까. 하지만 어여쁜 공주는 어떻게 봐야 할까. 이른 아침 강가로 나가 노래를 부르자 파랑새도 따라 부른다. 그런데 웬걸, 고음으로 따라가던 파랑새가 뻥 하고 터져버린다. 유유히 알들을 챙겨 프라이를 만드는 공주. 개구리와 뱀으로 만든 풍선, 들쥐 바비큐 등 <슈렉>의 엽기는 끝이 없다. <비비스와 버트헤드> <사우스 파크>의 영향이기도 하고,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아메리칸 파이>처럼 화장실 유머 정도는 일상생활에서 통하는 ‘가벼운’ 농담이 됐다는 방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