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김기덕 신작 <활> 이야기 [1]
2005-05-10
글 : 이종도
12개의 키워드로 풀어본 김기덕의 12번째 작품 <활> 제작기

바다와 하늘 사이, 심원한 사랑의 구원을 찾아서

김기덕 감독의 12번째 작품 <활>이 시위를 당겼다. 5월12일 강남의 씨너스G극장과 부산의 부산극장 두 군데서 비밀리에 찍은 <활>을 공개한다. 시사회나 프리뷰 기사 하나없이 바로 관객과 만나는 것이다. 개봉 2주차엔 스크린 수가 6개로 늘어난다고 한다. 영화는 훨씬 더 깊고 부드러워졌으며 단순한 이야기를 끌고 나아가는 힘이 대단하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칼바람 부는 1월 서해에서 20일도 안 돼 완성한 <활>의 제작과정을 스탭들에게 들어보았다. 그리고 리어왕으로 잘 알려진 뛰어난 연극배우 출신으로 <활>의 60대 노인 역을 맡은 전성환을 만났다. 김기덕 감독은 인터뷰를 사양했다(당분간 국내언론과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김 감독이 ‘이미지의 과다 노출’을 꺼리는 바람에 우리가 쓸 수 있는 것은 단 한장의 스틸과 포스터가 전부였다.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대받은 김 감독은 칸에서의 5월12일 상영 일정에 맞추어 10일께 배우와 함께 출국할 예정이다.

추위

영화 속 바다는 딱히 겨울이 배경이 아니라고 한다. 소녀 역의 한여름이 엷은 치마를 입고 갑판에서 햇살을 즐기는(척 하는) 장면도 있었으니 한겨울에 여름을 찍는 일은 얼마나 어려웠을까. 최연장자이자 주인공인 전성환은 다섯겹의 옷을 껴입었다. 장성백 촬영감독은 바람이 불어치면 참을 수 없는 콧물이 흘러나와 날아다녔노라고 증언했다.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을 때는 모두 콧구멍을 화장지로 막았다. 배우들은 슛 들어가겠다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휴지를 빼고 카메라 앞에 섰다. 노출된 신체는 모두 다 얼어버렸다. 핫팩과 발전기를 돌려 얻은 따뜻한 물과 가스 난로는 1월 중순에 부는 서해안의 칼바람을 막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나마 배 밑에 선실이 있어서 추위를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는 게 다행이었다.

바다

영화는 온통 바다다. 숫제 뭍이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호수를 무대로 했던 <섬>이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그리고 강을 무대로 했던 <악어>보다 더 많은 물, 스크린이 차고 넘칠 정도로 푸른 바닷물로 가득한 것이다. <마스터 앤드 커맨더: 위대한 정복자> 같은 해양영화에서도 육지는 나오게 마련이건만, 활에는 오로지 바다와 하늘만 보일 뿐이다. 그러나 이 물은 예전처럼 불안과 공포와 불만을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가 아니라, 심원한 사랑의 이미지다. 을왕리 선녀바위 앞바다가 주촬영무대였고, 망망대해로 멀리 나가 찍기도 했다.

파도

조수간만의 차가 있다는 것을 교과서에서 배우기는 했지만 하루에 물이 두번 들어오고 두번 나가는 것을 몸소 겪기는 처음이었다. 그래도 스탭들은 처음 시놉시스를 받아봤을 때는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원래 무대는 바다에 떠 있는 배가 아니라 섬이었기 때문이다. 장훈 조감독은 노인(전성환)이 섬 앞에 띄운 배에서 생활하고, 작은 배로 뭍을 왔다갔다 하는 설정인 만큼 큰 어려움이 없을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바다 한가운데라는 설정으로 바뀌면서 고난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해안에 선착장을 지어 배장면의 촬영이 끝나면 배를 몰고 들어오려고 했다. 그러나 주민들이 보기엔 스탭들은 너무 어설프고 바다의 생리를 잘 몰랐다. 주민들은 거센 파도가 들어오면 선착장이 다 부서진다는 충고를 했지만 스탭들은 들은 체 만 체 했다. 제작진은 파도의 진면목을 모르고 선착장을 세번 지었다가 모두 다 파도에 떠내려가는 실패를 맛봤다. 선착장의 강도를 점점 높이고 나중엔 에이치 빔으로 기둥까지 박았지만 허사였다.

배멀미

촬영을 마치고 뭍으로 돌아오면 촬영 스탭은 모두 자기 몸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마치 자기 몸이 바다 위에 떠 있는 것처럼 흔들렸다고 한다. 몇몇은 촬영을 마치자마자 먹은 것을 죄다 토하기도 했다. 대부분은 여관으로 들어와 앉기만 하면 배 위에 있는 듯 몸이 흔들렸다고 했다. 오로지 바다 위에서만 촬영하니 배멀미약은 필수였다. 조감독의 일과는 매일 아침 스탭에게 배멀미 약을 먹이는 것으로 시작했다. 배멀미가 심한 사람은 귀밑에 붙이는 약까지 챙겼다. 김기덕 감독은 유독 배멀미가 심했다. 배 한구석에서 토하고 다시 와서 촬영한 적도 있다고 한다. 배멀미뿐 아니라 생리현상도 이들을 괴롭혔다. 전날 과음이라도 했다면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촬영 틈틈이 주어진 잠깐의 휴식시간에 생리현상을 몰아서 해결했다. “잠깐, 10분만 쉬기로 해요.” 안타까운 고함을 지른 뒤 날랜 걸음으로 배와 펄과 뭍을 연결한 철근다리(밑에는 합판을 깔아 철근이 개펄로 미끄러지지 않게 했다)를 왕복해 뭍에서 해결하기도 했지만 촬영이 한창일 때는 이것도 불가능했다. 가히 도하작전이라 부를 만한 이런 해결책이 아니면, 대개는 가리개로 가려주고 배 위에서 바다쪽으로 해결을 했다. 그러나 이 방법을 택하면 소리가 나서 부끄럽고, 그 소리가 또한 촬영까지 방해하니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여자 스탭 10명은 그저 참고 또 참으면서 촬영이 어서 끝나기를 기도했다. 또 하나의 방법은 촬영 중간에 들어오는 바지선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바지선을 타고 육지로 나가서 해결하고 들어오는 것이다.

일러스트레이션 이은설 도움말 | 강영구 PD, 장훈 조감독, 장성백 촬영감독, 최은영 제작 회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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