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아시아 영화 기행: 타이 [4] - 타이 영화 연표
2005-05-10
글 : 이영진

타이영화 연표(1897∼1995)

활동사진에서 시작, 영화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1897

산바사트라 왕자, 출라롱컨 왕 유럽 여행 중에 유럽 여행길에 촬영장비 들여옴(그가 찍은 단편기록들은 1900년 이후 것만 발견됨). <멋진 파리풍의 촬영: 살아 움직이는 그림> 맘 차오 알랑칸 극장에서 상영.

1904∼05

일본 흥행사들, 방콕의 왓턱에 거대한 텐트 설치하고 러일전쟁 영상 등을 보여줌. 1905년에 일본 영화관 건립. 타이 최초의 영화관.

1904∼22

유럽과 할리우드에서 수입된 무성영화 상영. 캄베안베르 왕자, 정부 활동 소개 위해 시사영화제작소 설치(1922)

1923

미국 감독 헨리 멕레, 타이인들로 출연진을 구성한 35mm 무성영화 <샴국의 미스 수완> 제작.

1927

방콕영화사, 타이인이 제작한 최초의 영화 <두배의 행운> 만듦. 잇따라 최초의 영화사인 샴영화사의 <뜻밖의 사건> 완성.

1930

시암 정부, 모든 영화는 사전에 공식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법안 발표. 사진은 최초의 검열위원회에 속한 귀족들.

1932

방콕영화사, 스리 크룽 유성영화사로 개명하고 타이 최초의 유성영화 <타락의 길> 개봉.

1932∼42

타이영화의 황금시대. 스리 크룽 유성영화사, 뮤지컬 중심의 유성영화 25편 제작. 사진은 타이영화 최초의 스타라 할 수 있는 잠라드 수와콘과 마니 수몬누스가 출연, 크게 흥행한 <그 남자의 달콤한 멜로디>(1937) 포스터.

1941

재무장관 프리디 바노명, <흰 코끼리의 왕> 타이영화사와 함께 제작.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는 최고(最古) 영화.

1949

2차 세계대전 이후 물자 부족으로 35mm 대신 16mm 영화 제작 성행. <신사적인 무법자>(1949)의 성공은 제작편수가 한해 10편에서 50편으로 늘어난 시발점.

1954

R. D. 페스톤지, 국제규격에 맞는 35mm 장편영화 <산티-위나> 제작해 제1회 동남아시아영화제에서 최우수 촬영상 수상. 미국영화협회로부터 미첼 카메라상 수상.

1962

1960년대 최고 스타 미트르 차이반챠(오른쪽)와 페차라 챠오와레이. <핌챠위의 사랑일기>(1962)를 시작으로 두 사람이 찍은 영화만 150여편.

1970

16mm 영화 스타였던 미트르 차이반챠가 <황금독수리> 촬영 중 액션 연기를 하다 헬리콥터에서 떨어져 사망. 사진은 미트르의 유작 스틸. 35mm 영화 제작 증가.

1974

차트리찰레름 유콘 왕자의 <천사들> 완성. 1973년 군부정권에 항거하는 학생혁명의 영향으로 피아트 포스터, 처드 송스리, 페름폴 체야룬 등 초기 사회파 감독들 대거 등장.

1977

정부, 외국영화 수입세금을 150배 올림. 타이영화 연간 제작편수 100편에서 배로 증가.

1981

비디오 보급 시작. 우돔뎃 마노프, 농촌지도자들의 암살사건을 비롯해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는 데뷔작 <사회의 주변> 발표.

1984

유다나 묵다사니트, 마약에 빠져 결국 죽음에 이르는 청년의 불우한 삶을 다룬 <남푸>로 역대 최고 흥행기록.

1988

TV와 비디오의 보급으로 영화산업 위기 봉착. 사진은 반디트 리타콘 감독이 연출한 틴에이저영화 <번추>(1988)와 <번추8>(1995)의 포스터. 속편이 7편이나 나온 대표적인 10대 학원물.

※위 연표는 단행본 <A century of Thai Cinema>를 비롯해 부산국제영화제가 펴낸 <타이영화의 힘-타이영화와 그 미래>, 타이 영화평론가 안찰리 차이워라폰이 작성한 <Chronology of Cinema in Thailand>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통역 이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