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아시아 영화 기행: 타이 [7] - 위시트 사사타니앙 인터뷰
2005-05-10
글 : 이영진

“우스꽝스러운 도시 방콕을 보여주고 싶었다”

<시티즌 독>의 위시트 사사타니앙 감독

부산국제영화제 김지석 프로그래머의 말에 따르면, 위시트 사사나티앙(41)은 ‘올림픽 감독’이다. 4년 만에 한번씩 신작을 내놓기 때문이다. 타이 최대의 광고회사 필름팩토리의 주력 감독으로 일하고 있는(코카콜라, 나이키 등 유명 브랜드의 광고를 도맡고 있다) 그는 “영화로는 밥먹고 살기 어려울 것 같아서” 광고 일을 놓지 못하고 가끔 취미로 영화를 만든다고 말하지만, 최근작 <시티즌 독>(Citizen Dog)을 본 이들이라면 지독할 정도로 완벽성을 기하는 성미 탓에 과작의 감독이 됐을 것이라고 쉽사리 추측할 수 있다. 6개월 이상 후반작업을 했다는 <시티즌 독>(타이에선 지난해 12월 개봉했다)은 데뷔작 <검은 호랑이의 눈물>과는 또 다른 판타지의 세계로 보는 이를 안내하는 영화. 타이 고유의 의상, 건축물 등의 색감에서 뽑아낸 화려한 비주얼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침이 나온다. 잇단 회의 때문에 1시간이나 기다리게 했던 것이 미안했는지 그는 인터뷰를 마친 뒤 선물이라며 칸에서 뿌렸던 <검은 호랑이의 눈물> 홍보용 티슈와 엽서를 손에 쥐어줬다.

-광고와 영화를 어떻게 병행하나.

=<검은 호랑이의 눈물> 만들 때 회사를 그만뒀다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나고 들고 그런 꼴 보기 싫었는지 하려면 해라, 뭐 그렇게 봐준 것 같다.

-<시티즌 독>을 떠올린 계기는.

=동화나 우화를 만들고 싶었는데. 일단 시골에서 공장을 다니던 한 청년이 잘린 손가락을 찾기 위해 방콕에 오게 된다는 설정을 끼적여놨었다. 그런데 소설가인 아내가 보고서 러브스토리를 집어넣고 인물들과 에피소드들을 늘려 먼저 출판했다.

-아이템을 도용당한 것 아닌가. 보상은 받았나.

=못 받았다. 나중에 편집본 보고서 진행이 너무 빠르다, 두 인물의 사랑 감정이 전해지지 않는다, 이 부분에서 음악을 써라, 뭐 그런 참견만 했다. (웃음)

-포드가 방콕에 와서 통조림 공장에 취직한 뒤 일하는 장면은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에서 따왔는데.

=기계 앞에서 왜소한 사람의 모습을 그만큼 잘 대비해서 보여준 장면은 없지 않나. 꿈이라곤 없는 포드나 꿈만 먹고사는 진이나 모두 찰리 채플린의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인물들이다. 처음엔 영화제목을 아예 <모던 독>이라고 붙이려 했었다.

-포드와 진 외에 등장하는 엉뚱한 캐릭터들이 많다.

=방콕이라는 도시가 우스꽝스러운 곳이다. 갑자기 도시가 팽창하면서 근대와 전근대가 기형적으로 몸을 섞고 있다. 창녀촌 옆에 절이 있고, 부촌과 빈촌이 맞붙어 있다. 그런 도시에 사는 사람들 중엔 이상한 사람들이 자연스레 많다. 포드처럼 몸은 컸지만 나이를 먹지 않은 이들이 있고, 진처럼 마트에 가면 물건은 사지도 않고 종일 물건을 반듯이 진열하는 데 열중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풍경을 보여주고 싶었다.

-<시티즌 독>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도시에 솟은 거대한 쓰레기 산이다.

=언눗이라는 곳에 대규모 쓰레기 매립장이 있다. 어느 날 그곳에서 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는 걸 봤다. 무척이나 예뻤다. 영화 속의 쓰레기 산은 그런 느낌이다. 그런 희망이 없다면 이 나쁜 세상에서 누가 살 수 있겠냐. 꿈을 좇아봤자 행복이 없는데 왜 달려야만 하느냐, 행복은 곁에 있는데 말이다, 뭐 그런 이야길 전하고 싶었다.

-잘린 손가락이 자신의 주인을 알아보고, 포드의 할머니가 도마뱀으로 환생하고, 하늘에서 헬멧이 쏟아지고. 당신의 영화 중간중간에는 생뚱맞은 판타지 장면들이 수시로 등장한다.

<시티즌 독>
<시티즌 독>

=머릿속에 떠오른 공상들을 그대로 보여준 것뿐이다.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에선 비일비재하게 일어나지 않나. 좀 과장해서 그런 걸 표현하고 싶었다.

-영화를 볼 때 포드(Pod)와 진(Jin), 철자는 다르지만 두 주인공들의 이름에서 느닷없이 ‘Ford’와 ‘Jean’이 떠올랐다. 두 사람 모두 대량생산 체제 아래 부속품 같은 존재로 살아가는 인물들 아닌가.

=하하. 가수 두명의 이름을 그냥 따온 것이다. 처음엔 실제 가수 두 사람을 출연시키려고 했는데 무산됐다. 영어로 써서 그렇지 포드의 타이 이름은 뽓이다.

-<검은 호랑이의 눈물>은 당신이 유년 시절 보고 다녔을 1950년대 타이 서부극에서 비롯된 것이다.

=톤부리라는 강가에서 자랐는데, 어렸을 적에 극장에 가보지 못했다. 극장도 많지 않았고, 돈도 없었다. 행사나 축제 때 천막 이동극장에서 보여주는 무료영화들이 전부였는데, 타이 서부극뿐만 아니라 홍콩영화, 할리우드영화도 심심찮게 틀어줬다. 변사의 설명으로 <카사블랑카> 같은 영화도 거기서 봤고, 쇼브러더스의 외팔이 시리즈도 거기서 봤다.

-당신의 영화들에서 보이는 색들은 좀처럼 볼 수 없는 것들이다.

=타이적인 인물, 타이적인 의상, 타이적인 무늬, 타이적인 색감이 뭔지 고민했다. 우리에게도 소중한 것들이 남아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이 사용했던 물건들에 쓰였던 색들을 가져왔다. 지금도 지방에 가면 광고판 하나에 20가지 색을 쓰기도 한다. 유행 좋아하는 요즘 관객이 내 영화를 보면 모두 촌스럽다고 한다. (웃음) 텔레시네 작업을 거쳐 광고에서 많이 쓰는 다빈치 프로그램을 갖고서 색감을 일일이 지정하고 조절한 결과다. <시티즌 독>은 CG 분량도 많은 편이라 전작보다 후반작업 기간이 배가 됐다.

-당신의 영화에서 색은 인물들의 감정을 전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맞다. 꿈많은 진은 푸른색 옷만 입고 다니고, 꿈없는 포드는 밤색 옷만 입고 다닌다. 단 어떤 장면에선 그런 도식을 비틀기도 했다. 블루는 우울함을 나타낸다는 도식 대신 핑크로 그 느낌을 전달하기도 했다. 폐기물로 가득 찬 진의 집은 그래서 핑크로 도배되어 있다. 배우들에게도 그래서 움직임을 크게 하지 말라고 했다. 깜짝 놀라더라도 일반적인 표정을 짓지 말고 눈만 두번 깜박여라 하는 식으로 주문했다. 신인배우가 아니었다면 답답해 했을 거다. 다행히 극중 인물들처럼 움직임이 크지 않고 말수도 굉장히 적은 배우들이었다.

-다음 영화는 언제쯤 만들 예정인가.

=부산영화제 PPP에 냈던 <핫 칠리(남플리) 소스>이긴 한데. 타이 민담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온 영화로, 대규모 예산이 필요해서 7년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모르겠다.

통역 이지은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