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양동근과 기국서의 <관객모독> [1]
2005-06-07
글 : 이종도
사진 : 정진환
<관객모독>으로 만난 초짜 연극배우 양동근과 반항의 연출가 기국서

아주 특별하고 도발적인 만남


지난해 3월 기국서 연출의 <관객모독>에 대해 어떤 기자는 ‘부드럽고 지성적인 모독’이라고 썼다. 기국서의 동생인 기주봉과 최근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휘몰아치는 대사로 무대를 뒤흔든 럭키 역의 정재진, 그리고 주진모와 고수민 네명이 만든 <관객모독>은 말의 4중주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음악적 울림과 지적으로 통제한 연기가 공연장의 온도를 높인 공연이었다. 기국서가 이끄는 극단 76단은 1978년 <관객모독> 초연 이후 배우와 대사를 바꿔가며 시대와 공감하는 <관객모독>을 만들어왔다. 양동근을 내세우고 지난해 출연진보다 젊은 배우들로 꾸린 2005년판 <관객모독>은 래퍼 양동근의 매력이 두드러지고, 대사의 전압이 더 높아지고, 배우가 관객을 모독하는 방법이 더 잔인해진 자극적인 버전이다.

토요일 낮 공연이어서일까. 1, 2층 300석은 일찌감치 사람들로 꽉 찼고 자리를 얻지 못한 관객이 보조의자를 들고 통로를 메웠다. 디지털카메라와 휴대폰카메라를 열고 기다리는 모습은 영화시사회나 공연장에서 봤을 법한 풍경이다. 진행요원이 나와 퀴즈를 내자 비로소 객석이 진정을 한다. 왜 극단 이름이 76단일까요.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관객모독>의 연출가는 누구일까요. 단 두명이 손을 든다. 기국서, 지난 몇 십년 동안 한국 연극을 자극하고 도발해온 모험적인 반항아의 이름 아닌가. 그러고보니 관객은 모두 양동근보다 어려 보인다. 양동근이 태어나기도 전인 1978년 <관객모독>, 그리고 1980년대 <기국서의 햄릿>을 비롯한 햄릿 시리즈로 전위적 연극의 선두에 나섰던 기국서다. 그러나 요즘 관객이 기국서를 소비하는 양태는 독재시대의 숨막히던 날들과 많이 다르다. <관객모독>은 지난해 연극열전 프로젝트에서 관객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받았다. 공연장을 바꾸고 배우를 바꾸고 대본을 바꿔 만든 새 버전은 관객을 무대 위로 끌어올려 연기를 시키고 배우가 객석 통로로 들어가 관객과 호흡을 같이 하며 젊은 세대의 마음을 건드리려는 노력이 뚜렷해 보였다. 양동근은 브레이크 댄스와 힙합과 랩으로 1966년 피터 한트케가 뒤흔든 연극의 지형을 대중적인 판본으로 다시 선보였다. 양동근은 함께 공연하는 세 배우와 견주어봤을 때 발성도 다르고 성량도 다르고 입은 양복의 폼도 달랐다. 양동근은 그저 움직이고 입만 열어도 관객의 눈길을 독점했다.

그리고 관객은 ‘극장에 가면 말없이 앉아 있어야 한다는 선입견’을 부수자는 한트케의 선동에 홀려 발을 구르고 자신만의 플롯을 제시하고(살인의 방법이 채택되는 관객은 무대에 올라가 시연을 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 즐겁게 물세례와 욕세례를 받고 무대에 올라가 배우를 괴롭혔다. 이 새로운 <관객모독>은 연극은 진지해야 한다는 편견과 싸우고 있는 것일까. 극중 대사처럼 관객은 ‘<웃음을 찾는 사람들>과 <개그콘서트>를 보라는 벌떼 같은 삐끼의 손길을 뿌리치고’, ‘고급 허영예술의 극치’를 보러온 보람을 느꼈을까.

서로 어울려 보이지 않는 영화배우 겸 가수와 연출가를 맺어준 것은 <와일드카드>의 강력반장 기주봉이었다. 연극과를 다녔지만 연극 공연 경험 한번 없는 양동근은 어떻게 소속사를 설득해서 돈이 되지 않는 연극을 한다고 했을까. 독특하고 자연스런 연기야 인정한다지만 어떻게 기국서는 초짜배우를 주연으로 내세울 생각을 했을까. 둘을 따로 만났다. 함께 만났을 때 나올 진부한 칭찬을 사절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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