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양동근과 기국서의 <관객모독> [3] - 기국서 인터뷰
2005-06-07
글 : 이종도
사진 : 정진환

“동근이 제대하면 또 같이 하고 싶다”

연출가 기국서가 말하는 배우 양동근 그리고 2005년 <관객모독>

객석에 둘이 앉아 있는 모습은 마치 <주먹이 운다>에서 류승범과 기주봉이 딴청부리며 함께 앉아 있는 것 같았다. 그보다 더 편해 보이는 부자 사이라고 하면 맞을까. 양동근이 맨발을 좌석 팔걸이에 올리고 나른한 표정을 짓자 기국서 연출가는 뭘 해도 편해 보인다며 양동근을 향해 웃음을 짓는다. 둘은 서로 무슨 말을 주고받아도 고개를 끄덕거릴 것 같이 보였다. 한국 연극의 원조급 반항아와 그에 걸맞은 제자였다. 플래시 라이트에 어색해하던 기국서는 가게 앞이나 길거리에서 사진을 찍는 게 더 편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기주봉, 정재진 등이 나온 공연에 비해 훨씬 가벼워지고 발랄해진 것 같다. 대사도 많이 수정하고 극중 내용도 고친 것 같은데.

=관객의 기호와 요새 감각에 맞추려고 했죠. 배우들이 나이가 있으면 무게가 생기고, 젊으면 그렇게 되는 셈이죠. 나이든 배우들에게 많은 디테일을 요구하면 힘이 들고 주책맞아 보이는데 젊은 배우는 더 많이 움직여도 되고. 새로 만든 건 그리 많지 않은데 아무래도 팀이 달라지면 분위기에 맞게 즉흥적으로 만들어내는 일이 많아지죠.

-그 변화 가운데 가장 큰 것이 양동근이 아닐까.

=그런 면도 있죠. 굉장히 창의적이라 많이 뽑아냈다고 할까요.

-양동근을 부른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흥행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거니와 그렇게 생각한다면 또래의 다른 누구보다 훌륭하고 호감이 갔어요. 주봉이가 같이 연기할 때 물어보니 연극을 하고 싶다는 얘기를 듣고 그게 연결이 된 거죠.

-양동근이 나와서 작업을 고치고 보강한 것도 많은 것 같다.

=역시 해보니 진지하고 속이 깊고 창의적이에요. 성실하고. 보통 젊은 배우에게 상황을 설명하면 금세 만들기 어려워요. 동근이는 상황을 주면 만들어와요. 다른 배우들과 했을 때 튀지 않게. 이를테면 골룸 흉내 같은 거죠. 걸음걸이라든가. 연출자로서는 작업하기가 재미있고 쉽죠.

-양동근의 연기를 본 적이 있나. 어떤 점이 훌륭하고 또 모자란다고 생각하나.

=<와일드카드> <바람의 파이터> 두편을 봤는데 TV도 많이 나오잖아요. 매끄럽지 않다는 게 장점이죠. 진솔한 느낌, 투박해 보이고. 연기를 많이 보면 그 배우의 속을 느낄 수 있어요. 진실한가 아닌가 또 품성도 느껴지고.

-이번 연기를 어떻게 평가하나. 발성이나 성량은 연극 배우들보다 나을 수 없는 것 아닌가. 첫 경험이니.

=이 작품 하나만 했으니. 셰익스피어나 자연주의 작품을 해보면 아는데 안 해봐서 모르겠지만, 제대하고 연극을 하고 싶다면 같이 하고 싶어요. 처음부터 주연하기는 어렵겠지만. 연극 주연이라는 게 오래 해야 가능하거든요. 연극적 카리스마라는 게 한 작품 해서 드러날 수 없죠. 동근이는 호흡이 되니까 또 어려서부터 연기를 해서. 사람들이 동근이의 대사를 지적하는데 인터뷰 끝나고 막 올라가기 전에 주의를 줘야겠어요. 오래 장기공연하다 보니 긴장이 떨어지는 건 당연해요. 관객 반응이 좋으면 집중력이 더 떨어져요. 배우들은 놀려는 성향이 있으니까.

-양동근에게 어떤 걸 주문했나.

=연습할 때 소리와 대사를 많이 얘기했어요. 동근이가 말이 느려요. 빠르게 하라고 하는데 워낙 느릿한 스타일이야.

-<관객모독> 초연을 한 지 27년이 되었는데 관객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하던가.

=극장구조가 다르면 관객의 반응도 다르다는 건데, 지난해에 했던 동숭소극장은 객석이 퍼지지 않고 모여 있어서 관객이 동일체를 만들어요. 여기는 객석이 퍼져 있어서 그렇게 동일체가 되기는 어렵죠.

-현실비판이 지난해보다 더 깊어지고 자극도 더 커졌다.

=현실적인 걸 더 건드리고 싶은데 균형을 잡으려고 했어요. 이번에 지난해보다 많이 하게 된 거 같은데 15년 전 공연 때는 더했어요. 내가 젊기도 하고 현실비판적인 걸 하고 싶으니까. 계속 공연을 하다보니까 살이 붙는 것도 있지. 한 거 또 하는 것만큼 스트레스가 없어. 지난해엔 동숭아트센터에서 멍석을 펴주고 초청을 해준 거니까 오리지널에 가깝게 한 거고. 내년이 창단 30주년이니 (이걸로 돈벌어서) 소극장도 만들고 해야죠.

-역사적인 극단이라 배출한 배우들이 많다. 지금 76단 소속 배우는 누구인가. 그리고 돈을 많이 벌어 연극을 같이 하겠다는 게 기주봉의 뜻이라고 들었는데.

=들어왔다 나갔다가 자유로워요. 고정은 10여명인데 다 따지면… 내년에 홈커밍데이를 하면 수십명이죠. 송승환이 초기 멤버고, 예전에 함께했던 이들이 오광록, 정준호, 성동일, 이창훈… 그렇죠 주봉이가 그렇게 말했죠.

(양동근을 만난 뒤에 다시 보자고 하고 헤어졌다. 휴대폰 배터리가 떨어져 있었는지 연락이 안 된다. 그가 있을 법한 술집을 찾아 들어갔더니, 아르바이트생이 인터뷰를 위해 그가 극장으로 떠났다고 말해주었다. 대학로라 가능한 일이다. 극장에서 함께 나와 다시 노천주점으로 옮겼더니 그의 말투가 더 편해졌다.)

-7월 재공연에 놀랄 만한 배우가 출연한다고 들었다

=논란이 많았어요. 개그맨 리마리오가 하고 싶다고 프로포즈가 왔어요. 극단 76단 내부뿐 아니라 연극인 사이에도 논란이 생긴 거지. TV 출연을 접고 연극에만 전념하겠다고 하는데, 진정성이 있어요. 원래 연극 배우니까. 그저께 결정했는데 비난을 받는다고 해도, 연극은 원래 민중적인 거니까 포용적인 거고. 개그맨들 하는 연극을 싫어하는 이유는 삐끼, 호객행위 때문인데 이건 다른 거지. 나로서는 실험인데 어떻게 될지는….

-양동근이 나오는 이 연극이야말로 대중영합적인 연극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개그콘서트> 같은 걸 전면 부정하려는 게 아녜요. 어떻게 만드느냐, 어떤 베이스가 있느냐가 더 중요한 거지. 채플린 코미디엔 휴머니즘이 있잖아요. 공허하지 않지. 출처도 불분명하고 공허하고 휴머니즘도 없으니 저급이라 취급이 되는 거지. 영합이라면 할말 없지. 내 연극 신념은 민중적이어야 한다는 거야. 그건 일관된 철학인데, 연극을 재미없게 만들면서 고급이라고 할 수 있나. 상업은 해야 하니까 상업연극이라면 할말은 없지. 연극인의 순수성을 내가 모르는 바 아니지. 그러나 그것만 생각해서도 효과는 없는 거고. 젊었을 때나 고결한 거지. 이제 흙탕물이 튀기기 시작하는구나. 나도 나이가 드니까 흙탕물 뒤집어써도 된다는 배짱이 생기는 거야.(웃음)

-만약 개런티를 걱정하지 않고 함께하고 싶은 배우를 부를 수 있다면 누구를 꼽겠나.

=최민식. 하려고는 안 하겠지만. 셰익스피어라면 <맥베스>를 하고 싶은데, 한석규. 맥베스는 연약한 느낌의 사람이야. 고독한 사람이지.

-오광록 같은 예전 멤버들과 함께 작업할 생각은 없나.

-내가 그런 개념으로는 작업을 안 해요. 몰라. 70 되면 꼰대들 연극 만들지.

-<주먹이 운다>의 기주봉은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던데. 함께 영화는 해볼 생각 없나.

=이제 시선이 나오더라고. 자기만의 컷이. 그게 참 어렵더군요. 이번엔 연기가 참 좋더라고. 그러고 싶어요. 할 수만 있다면. 주봉이가 휴머니즘이 있어요. 문예영화에 맞지. 주봉이를 위해 시나리오를 써볼 거예요.

-7월에 <관객모독> 재공연 말고 또 무엇을 준비하나.

=6월17일에 <표현의 자유>라는 작품을 올리는데, 30대 불륜 소재인데 현대적이야. 연말엔 <새벽부인>이라는 작품이 올라가고. 올해 우리 극단 레퍼토리가 화려하다니까.

-그렇게 많은 작품을 만들면 언제 돈벌어서 소극장 짓나.

=<관객모독>이 있잖아. 가장 하고 싶은 건 코미디하고 거리극이야. 앞으로 거리극에 전념하고파. 남사당패처럼 돌아다니듯이. 원래 연극이 유랑하는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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